미디어 시대에 맞서는 능동적 네트워커
양 옆에 커다란 검은 별이 새겨진 헬멧을 쓰고 신나게 오토바이를 타는 그의 모습은 영낙 없는 동네 ‘양아치’다. 오토바이를 타고 쌩∼달릴 때 헬멧 너머로 보이는, 휙휙 지나가버리는 길거리 풍경은 어떨까? 양아치라는 삐딱한 이름으로 살아가는 그에게 세상은 어떻게 보이는 것일까?
양아치 - 이 사회가 만들어낸 아이콘
가명에 자신의 정체성을 대입시켜 스스로 ‘B급’을 자처하고 있는 그는, 부적절한 상황이나 시스템과 마주할 때면 안타깝게도 오토바이를 타고 달릴 때처럼 휙휙 지나쳐 보내지를 못한다. 언제나 그렇듯 세상은 소수의 A급 중심으로 돌아가고, ‘트인 눈’을 가진 B급에게 세상은 탐탁치않은 것 투성일 테지만 과연 미술로 무엇을 바꾸고, 쌓인 불만을 제대로 토로할 수나 있을지. 양아치는 중심을 향하는 권력의 독점과 그 경로에 대해 경계의 눈빛을 세우고, 어릴 때부터 쥔 ‘미술’이라는 끈을 놓지 못한 채, 끝없는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 싸움이 더욱 힘겹고 피곤한 것은 그가 활동하고 있는 여기 이곳, 미술계에서조차 그의 작업과 관심사에 대해 낯설게만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네트워크, 오픈 소스, 핵티비즘(Hacktivism), 택티컬 미디어(Tactical media)….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몇 번씩 양아치의 입에 오르는 용어다. 기자 역시 이 말들이 낯설기는 마찬가지다. 네트워크 원리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사이트를 만들고 해킹을 하는 프론트 유저(front user)로서의 양아치와, 태그 언어 하나도 제대로 모른 채 싸이월드의 도토리로 미니홈피를 꾸미는 것이 전부인 철저한 ‘엔드 유저(end user)’로서의 기자. 앞서 나열한 용어들에 대한 직역으로 그 개념을 어림짐작하면서 그들의 대화는 겨우 이어진다. 곧이어 인터넷 실명제 반대, NEIS 반대, 정보 트러스트 운동 등 요즘 인터넷 상에서 이루어지는 말초적인 논란의 예를 들어서야 그가 던진 낯선 화두에 대해 조금씩 수긍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래서 그게 어떻다는 건데, 미술로 뭘 어떻게 해결하자는 건데?”라는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시스템의 틈새를 꿈틀꿈틀 비집고 다니다
한스 하케는 〈정보〉(뉴욕현대미술관 1970)와 〈시스템〉(뉴욕 구겐하임미술관 1971) 등 일련의 작업을 통해 록펠러 재단과 샤폴스키 등 당시 미술관 재정을 책임졌던 재력가들을 물먹였었다. ‘실시간 사회체계’라는 컨셉트로, ‘주위 환경에 대해 전형적이고 일반적이며 간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예술’을 제창했던 하케처럼 양아치도 미술계는 물론 그를 둘러싼 국가·사회 등 복잡한 관계들로 얽힌 구조 속의 틈새를 비집고 다닌다.
그동안 〈양아치 조합〉과 〈전자정부〉라는 주제로 열었던 두 번의 개인전에서는 전시와 함께 각각의 프로젝트 사이트를 오픈했다. 양아치는 개인적인 작업 외에도, 같은 관심 분야를 가진 작가는 물론 이론가들과 함께 집단을 조직해서 활동해 왔다. 〈China Robot〉을 시작으로 〈해킹을 통한 미술행위〉, 그리고 최근에 아카이브 전시를 열었던 〈Parasite - tmn〉까지. 단지 인터넷 창을 통해 볼 수 있다고 해서 그의 작업을 웹아트 혹은 넷아트(정확한 용어는 넷아트·웹아트를 합한 ‘넷 닷 아트’라고 한다)라고 분류부터 하고 본다면 현란한 동영상이나 플래시도 없는 양아치의 사이트는 ‘볼 것’이 없다. 인터넷 창에서의 사이트건, 전시장에서의 설치물이건 혹은 단독 작업이건 집단 작업이건 간에 스펙터클 없이 썰렁하고 건조해 보이는 그의 결과물들은 모두 같은 목소리로 “No!”를 외치고 있다.
‘볼 것’ 즉 ‘비주얼’에 대한 부담을 덜은 동시대 미술에 있어서, 그는 영감과 감성에 의존해온 전통적인 작가의 개념도 죽었음을 알고 있다. 개인이 아닌 집단으로, 주로 세미나의 형태를 띤 작업 방식에 대해 양아치는 “네트워크 원리에 관심을 가지고 나면, 곧 작가도 집단 혹은 커뮤니티 안의 하나의 노드, 혹은 유저인 네트워커임을 인식하게 된다”라고 설명한다. 작가의 위치와 형태를 변화시킴으로써 네트워크의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남을 수 있는 예술을 증명해 보이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양아치는 그가 주목하는 온라인 환경 안에서 미디어의 일방적인 침투와 정복에 맞설 때, 미디어를 부정해버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이용하면서도 능동적인 태도를 취하는 미술 행위를 제시한다. 지금까지 그는 다소 경직된 자세로 자신의 입장을 밝혀왔다. 그렇다면 이제는 경직된 어깨에 힘을 빼고 즐거운 말투로 건네올 양아치의 구체적이고도 논리적인 제안들을 하나씩 지켜볼 차례다.
|호경윤 기자
아트인컬처 2004년 6월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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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양아치 씨는 오토바이와 헬멧(맨 까만)을 새로 장만하셨습니다. 별헬멧이 그리워요.
2004/11/25 14:42 2004/11/25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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