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된 글쓰기라고 생각했던 영아티스트 꼭지.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가장 애착있는 꼭지이기도 하다. 처음 썼던 영아티스트는 영화감독 민병천 씨였다. "처음"은 늘 서투르고 짜증나는 법이다. 이때 역시 공교롭게도 또 11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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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츄럴 시티, 영상언어의 그라운드
얼마 전 개봉했던 영화 〈내츄럴 시티〉는 시나리오 쓰기 2년, 촬영 1년, 후반 편집작업 2년 등 총 5년이라는 시간이 걸렸던 영화다. 지난 달,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나의 소감은 ‘화면은 멋지네, 그런데 무슨 내용인지 헷갈림’이었다. 미래 도시에서 인간과 사이보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다루는 영화 〈내츄럴 시티〉는 내용의 서술에 있어서 조금은 불친절한 인상을 줬다. 이 영화에서 과연 감독이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 감독은 물론 시나리오까지 직접 쓴 민병천은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영상언어’로서 영화가 인식되길 바라고 있다.
비주얼 스타일리스트가 되기까지
민병천은 1999년 영화 〈유령〉을 통해 본격적인 영화감독으로 데뷔하기 이전에도, 뮤직비디오·CF·TV 음악영상 프로그램 등에서 영상에 대한 그만의 감각을 키워 왔다. 어린 시절부터 감독을 꿈꿔왔던 그는 늘 한국 영화와 외국 영화의 영상의 차이에 불만을 느껴왔고, 감독이 된다면 제일 먼저 그 점을 개선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전공도 영화학이 아닌 시각디자인을 택했고, 특히 영상디자인 수업에 열심이었다고 한다.
그는 영화에 있어서 스토리도 물론 중요하지만, 영상과 음악이 만나면서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분위기를 더욱 중요하게 생각한다. 내용 전개에 있어서는 관객이 나름대로 유추하고 풀이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두고, 대신 좀더 좋은 이미지를 보여줌으로써 지친 현대인으로 하여금 일상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한다.
분명 지난 몇 년 간 한국영화계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다. 재미있는 내용과 구성, 스타, 홍보마케팅까지 영화에 있어 모든 요소들이 전반적으로 비슷한 속도를 내며 열심히 성장하고 있다. 그런데 유독 극장의 넓은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영상’만 느림보 걸음이다. 여전히 한국 영화에서는 ‘영상미’란 부차적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민감독은 “컨셉트 디자인·미니어처·세트·의상·소품·조명 등 모든 시각적인 요소들의 부분과 그것들의 조합까지 처음부터 염두에두면서 촬영을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좀 더 자연스럽게, 내츄럴시티!
영화 〈내츄럴시티〉의 배경을 채우는 2080년 서울의 모습은 사이버펑크 영화의 대표작 〈블레이드 러너〉 (리들리 스콧 감독, 필립 K 딕 원작)의 설정과 닮아 있다. 폐허가 되어버린 도시, 사이보그의 무단 이탈 등, 우울함으로 찌든 미래의 모습이 그러하다. 〈블레이드 러너〉가 영화계에 센세이션을 일으킨 지 벌써 21년이 지난 오늘, 할리우드에서 제작되는 SF영화들은 미래 도시를 설정할 때 미래학자의 자문을 받을 정도로 발전한 상태다. 할리우드에 비한다면 예산과 기술에 있어서 턱없이 부족한 한국 영화계의 현실. 이 점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민감독은 아예 처음부터 〈내츄럴시티〉가 〈블레이드 러너〉의 오마주라고 인정, 한국 영화계에서는 ‘꿈의 장르’라고 불린다는 SF영화의 첫 걸음마를 떼는 데 의미를 두고 싶었다고 한다.
80억원이라는 제작비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한 저예산이지만 특수효과와 컴퓨터그래픽를 효율적으로 사용, 최대한 자연스러운 영상을 만들고자 했다. 또한 할리우드의 것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세트·의상·색조 등 ‘동양적 느낌’이 영화 전체에 묻어나도록 했다.
영화가 진행되는 장소들은 주로 세트장이다. 주인공 R의 집, 빈민들의 공간인 수상가옥 등 크고 작은 7∼8곳의 세트장이 등장한다. 특히 MP(특수경찰)와 사이보그의 격투가 벌어지는 뉴컴사(사이보그를 생산하는 거대 기업)가 가장 대표적인 공간이다. 주조정실은 디지털의 느낌을 주기 위해 전체적으로 은빛이 감돌도록 색을 지정했고, 조명의 강약을 이용해 보완했다. 또한 총 240미터의 거대한 Y자형 복도는, 단조로운 공간적 특성을 극복하기 위해 5천여 개의 형광등을 달았다.
세트장과 별도로, 도시 전경이라든가 우주선이 날아가는 장면은 미니어처가 필요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었으나 여전히 이순신 장군 동상은 남아있는 광화문 거리 장면의 경우, 여기에 소요된 미니어처 건물은 약 1300채다. 그러나 부족한 예산을 아끼기 위해서 이미 존재하는 건물이나 장소 중 적합한 곳을 찾아서 활용해야만 했다. 예를 들어 R과 리아가 가상체험 시스템을 이용하는 장면은 기본적으로 둥근 건축 형태를 갖춘 부산무역센터(BEXCO)에서 촬영한 것으로, 여기에 수많은 사람들과 조형물을 컴퓨터그래픽으로 합성시켜 우주여행선 무요가를 타는 장면으로 변화시킨 것이다. 영화를 준비해온 몇 년 동안 민감독의 머릿속에서만 상상되어 왔던 광경은 아트디렉터, 컨셉트 디자이너, 비주얼 슈퍼바이저 등 90명에 이르는 미술전문 스텝진에 의해 구체화되었으며, 미니어처·세트·컴퓨터그래픽이라는 특수효과를 통해 좀더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실현되었다.
다음은 역사극이다
〈내츄럴 시티〉가 극장에서 내려오기가 무섭게, 민병천 감독은 이미 차기작을 구상하고 있다. 다음 작품은 의외로 역사극이었다. 3부작으로 나뉘어 개봉할 예정인 〈한산도가〉는 이순신과 그의 애첩 ‘여진’의 이야기다. 여진은 《난중일기》에 실제로 등장하는 인물로,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그릴 테지만, 역시 평범한 사랑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특히 임진왜란이 일어나 해상에서 대규모로 벌어질 격투신을 위해 거북선과 당시의 무기, 의상 등을 완벽하게 고증해내겠다는 계획이다. 할리우드로부터 자유로운 한국만의 SFX(Special Effects)영화를 차기작 〈한산도가〉가 실현해내기를 내심 기대한다.

아트인컬처 2003년 11월호 中
ㅣ호경윤 웹진기자
2004/11/25 02:32 2004/11/25 0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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