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기 연주를 배우는 것처럼’이라는 말은 정도련이 과거 근무했던 워커아트센터의 관장이 자주 사용하던 표현이라고 한다. 2005년 증축을 마친 미술관은 시각적으로는 훌륭한 건축물이었으나 실제로 그 공간을 전시장으로 사용할 때는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다.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는 스태프들의 불만에 관장은 “새 건물은 새 악기처럼 길들이고 소리를 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참으로 단순한 비유이지만 큐레이터로서 막 성숙기를 거쳐 가고 있던 그에게는 기억에 남은 말이었다고 한다. 또한 워커아트센터와 MoMA를 악기에 비유한다면 자유분방한 아코디언과 화려하고 다소 고압적이기까지 한 그랜드피아노를 꼽으면서 “이제 새로운 악기를 손에 넣었으니 제대로 배워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MoMA라는 중압감과 경직성을 탈피하고 싶다”
강연을 마친 소감에 대해 물었다. “막상 강연을 하고 보니까, 사람들이 MoMA에 대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중압감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있는 위치가 어쩔 수 없이 단순화되고 상품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거리감도 들었구요.” 현대미술의 도시 뉴욕, 그리고 그 뉴욕의 중심에 있는 미술관 MoMA. 1929년 창립되어, 현재까지 15만 여점의 소장품을 가지고 있는 이 미술관은 현대미술을 모르는 이도 뉴욕 여행을 가면 꼭 찾는 랜드마크다. (연 관람객수가 200만 명을 상회하고, 흥미롭게도 외국인 관람객 중에서 한국이 3위를 차지한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MoMA로 옮긴 것을 두고 승진 혹은 출세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저는 MoMA가 가진 경직된 인상 때문에 그쪽에서 제게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그 기회에 확 달려들지 못했었습니다.”
MoMA의 학예팀 구성은 회화와 조각, 드로잉, 판화와 삽화, 사진, 건축과 디자인, 미디어와 퍼포먼스까지 총 7개의 부서로 나뉘어 있고, 정도련은 가장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회화조각 부서에 소속되어 있다. “특히 회화조각 부서라는 점이 더욱 경직된 인상을 가장 많이 주었어요. 그러나 막상 안에 들어와 보니 그 구조가 매우 유연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MoMA 내부에서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일한 지 100일이 좀 지났는데요, 지금은 그 모든 일에 익숙해지는 단계인 것 같아요.”
그가 요즘에 MoMA에서 하는 일은 비서구 국가의 전후 미술을 연구하는 것이다. 일본의 영화와 미술 분야를 시작으로 중요한 마니페스토나 평론 문서들을 분석하며 연구자료집을 출판해 내는 것이 1차 목표. 뿐만 아니라 MoMA가 어떻게 하면 글로벌하게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비전과 대안을 세우는 것도 그의 몫이다. MoMA의 수장고는 서구 모더니즘 미술품으로만 점철되어 있을 듯하지만, 사실 MoMA는 오래 전부터 아시아, 동유럽, 남미 등 비서구의 미술에 대한 연구와 수집을 진행해 왔다고 한다. 다시 말해, MoMA는 다른 지역에 분점을 세우는 방식이 아닌 컨텐츠의 교류를 통한 ‘내적인 글로벌화’에 미래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MoMA가 정도련을 영입한 이유도 아마 미술관의 이런 특징 때문일 것이다.
정도련은 이미 워커아트센터에서 한국, 중국, 일본 출신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기획한 바 있다. 가장 최근의 전시부터 언급하자면, 이번 서울 강연을 마치자마자 뉴욕이 아닌 미네아폴리스로 날아가야 했던 이유이자, 워커아트센터에서 마지막으로 기획한 전시 <양혜규: 온전한 내부자>이다. 사실 양혜규가 워커아트센터에서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역시 정도련이 기획했던 <Brave New Worlds>전은 17개국 24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대규모 전시로, 한국 작가로는 양혜규와 김홍석이 참가했었다. 또한 지난 해 열렸던 <쿠도 테츠미 회고전: 메타모르포시스의 정원>은 1935년에 태어나 1999년에 사망한 일본 작가의 미국에서의 첫 개인전이자 회고전이었다. 한편 2005년에 기획했던 <황용핑 회고전: 신탁의 방>은 미국, 캐나다 등지를 순회하고 2008년 올림픽에 맞춰 베이징에서 다시 열리기도 했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아시아를 넘어 선 큐레이터
“MoMA에서 아시아 미술의 스페셜리스트로서 저를 영입한 것은 맞을 겁니다. 그러나 제가 현대미술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과 능력을 키우지 않고 오로지 아시아 미술에만 집중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에요.” 정도련이 워커아트센터에서 소개했던 한국, 중국, 일본 출신의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비서구 출신, 즉 ‘타자’로서 아시아 작가들은 서구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의 장구한 흐름 속에서 ‘특수성’과 ‘보편성’이라는 두 끈을 쥐고 그들의 예술적 신념을 단련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정도련은 큐레이팅을 통해 그들의 존재 방식과 태도를 자연스럽게 배웠을 것이다.
사실 ‘특수성’과 ‘보편성’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큐레이터의 기본 조건이다. ‘진행자이면서 번역가이고, 역사가이면서 편집자’라는 정도련의 정의처럼, 큐레이터는 전문성을 주장할 수 있으면서도 보편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사람이다. 특히 독립 큐레이터가 아닌 미술관에 소속된 큐레이터라면 더욱 그러하다. “큐레이터는 보물을 찾는 사냥꾼이 아닙니다. 작가의 커리어를 만들고 작품의 가격을 올리는 딜러나 경매상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큐레이터가 하는 역할은 담론을 개발하고 포장하기 위한 매개자입니다. 저는 미술관을 장애물로 생각하지 않고, 그렇다고 이용만 하는 악기로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미술관도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도구로 생각하고 제 역할에 임하고 있습니다.”
큐레이터에 대해 확고한 철학이 있는 정도련에게는 비슷한 일을 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함께 꿈을 키워가는 친구들이 있다. 뉴욕 뉴뮤지엄의 주은지와 LA 레드캣의 클라라킴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이들과는 대학, 대학원 시절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고, 첫 전시를 함께 기획하기도 했었다고. 이제는 각자 다른 성격의 기관에서 경력을 쌓으며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중한 친구들과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실체화시킬 수도 있는 지금의 상황이 참으로 감동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한편 정도련은 1년에 한두 번 한국에 방문하면 작가들을 만나곤 하는데, 오랜 시간동안 만나지 못해 매번 아쉽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역시 시간과 경험이 축적되면 ‘조우’를 넘어선 ‘기회’로 발전되곤 한다. 내년 LA레드캣에서 클라라킴과 공동 기획하는 <박찬경, 션 스나이더 2인전>이 좋은 예이다. 리서치를 기반으로 냉전에 대한 작업을 해온 두 작가를 처음 미국에 소개하는 전시다. “이런 주제의 전시를 해야겠으니, 당장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면 어떤 작가를 물어와야겠다, 라는 식의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네트워크를 넓혀나가면서 관심 있는 작가들과 ‘일’로써 친해질 기회를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트인컬처 2009년 10월호 <핫피플> 원문
기사보기 http://www.artinculture.kr/content/view/595/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