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참 좋아졌다. 미술가도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오는 세상이다. 영화 <팩토리걸> 덕분에 ‘앤디 워홀’ 쯤은 “아, 그 미국에서 마약하고 ‘팩토리걸’이랑 이용해 먹은 현대미술가” 정도는 대답할 수 있다. 미술이 대중화된 요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무엇일까?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원더풀 픽쳐스>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 ‘화가’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174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보면, 자연스럽게 유행과 유형이 파악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술이라는 영역은 참으로 고독했다. 음악이나 무용은 노래나 춤 같은 인간 고유의 유희적 본능 때문에라도 비교적 친근한 예술 분야다. 그러나 미술은 굳이 붓을 들어야 하는 부수적이고도 지적인 특성 때문에 무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래서 미술가들은 대중들과 친해지기 위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스스로를 변모시키고 어필하려고 노력해왔다. 설치미술, 공공미술, 환경미술, 미디어아트 등 새로운 매체와 기술을 동원해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림은 미술의 바탕이다. 조각을 할 때도 에스키스를 그려야 하고, 영상이나 사진을 다루려 할 때도 기본적으로 이미지(그림)에 대한 감각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특히 관객 입장에서는 ‘미술’이란 곧 ‘그림’으로 등식을 깨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림이란 무엇일까? <플란다스의 개>에서 주인공 네로는 삶의 마지막에 꿈에 그리던 루벤스의 그림을 보면서 행복한 죽음을 맞는다. 일반적으로 ‘그림’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절한 대상은 못 될지라도 그림은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어렸을 적 엄마 아빠를 그려 보이거나, 좀 더 커서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낼 때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종이 한켠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새 아파트를 장만하면 빈 거실 벽면을 보면 ‘그림 하나 놓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그림은 보관과 이동이 간편하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미술 작품을 사 모으는 사람들에게 그림은 소유물 혹은 재산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전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미술의 ‘원형’을 찾아내려고 한다. 미술의 다양한 얼굴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표현 방식이고, 친근한 영역인 ‘그림’의 매력을 되짚어 보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다. 1, 2층으로 된 전시장에 들어가면 빈 벽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그림이 걸려 있어 그 전시 전경 자체가 놀라움이다. 낯설기만 한 디스플레이는 사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미술관 ‘원형’의 모습이다. 르네상스 시대, 진귀해 보이는 물건(박제, 민속품, 그림)을 한 방 안에 몽땅 몰아 놓아 구경하던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이 오늘날 미술관의 시초였다.
대개 작가 한 명의 작품 세계를 찬찬히 보여주거나, 특정한 주제를 정하고 그에 걸맞은 작가들을 초대하는 것이 요즘 전시를 만드는 일반적 방식이지만, 이번에는 미술관의 역할이 좀 다르다. 그저 멍석을 깔아줄 뿐이다. 사실 174명의 작가를 한두 가지의 가늠자를 두고 보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전시를 위해 미술관 학예팀에서는 국내 20~40대 작가들을 성실하게 리서치하면서 1차적으로 800명을 확보했고, 그 중에서 어렵게 선별한 작가가 현재 참여 작가들이다. 출품작의 수만큼이나, 그림의 스타일도 각양각색이다. 인물화와 풍경화, 추상화와 구상화, 유화와 수채화, 동양화와 서양화 등으로 무궁무진하다. 또한 전시장 입구에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는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 불리며 무시 당했던 삼각지 지역의 화랑(표구사)에서 사온 작품들도 걸려 있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 당신의 눈을 사로잡는, ‘원더풀 픽쳐스’는 무엇인가? 화려한 꽃이 그려진 그림, 앙증맞은 캐릭터들을 그린 그림, 예쁜 여자를 그린 그림…. 미술관에서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르는 앙케트를 실시, ‘그림’을 매개로 관람객과 소통을 시도한다.
-<주간동아> 711호 CULTURE 기고 원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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