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양아치를 인터뷰하러 작업실을 찾아 갔을 때 동행한 사진기자가 물었다. “작가 이름이 원래 양아치에요?” 세상에 어느 부모님이 애 이름을 그렇게 지을까. 이름 덕분에 재미난 에피소드가 참 많다. 2004년 국립현대미술관에서 개최됐던 <젊은 모색>전의 개막식에서 사회자가 작가들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OOO 선생님, XXX 선생님이라면서 참여 작가를 한 명씩 호명하다가 잠깐 멈칫한다. “양아치…서, 선생님?”
실제로 작가를 만나면, 예상과 달리 모범생 같은 느낌을 받는다. 옷차림부터 ‘동네 양아치’ 같이 시시껄렁해 보이지 않는다. 말도 또박또박 잘한다. 이야기의 내용은 더욱 진지하다. 그러다가도 그 주변을 살펴보면, 다분히 ‘양아치’스럽기도 하다. 우선 그는 오토바이를 주된 이동수단으로 이용하고, 가끔 사이클을 타기도 한다. 작업실 안은 더 가관이다. 전자기타도 있고 가야금도 있다. 또 한 켠에는 최근에 나온 닌텐도도 있고 예전에 장만했을 법한 구형 플레이스테이션 게임기도 있다. 속으로 ‘역시 양아치 XX였군’하고 넘길 무렵, 또 다른 쪽을 바라보니 책도 무지 많다. 혹시나 해서 물어 보니 “폭탄주 4잔에 병원행”이란다.
하필이면 왜 이름을 양아치라고 지었는지 궁금했다. “여러분들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그렇게 깊은 뜻은 없어요. 특별히 삐뚤어 보이거나 반항적으로 보이고 싶었던 것도 아니구요. 그냥 ‘루저(Loser)’의 느낌 정도?” 미술가 중에서 가명을 쓰는 경우는 적지 않다. 박모, 박불똥, 최민화(民畵) 등 이미 중견, 원로 작가들의 선례가 많다. 그들의 가명은 지극히 예술적이고 개념적이다. 그러나 양아치라는 이름은 예술가의 아우라를 확 무너뜨린다. 오히려 작가의 이름보다는 온라인 상에 떠도는 아이디나 대화명 같다.
특히 작가가 데뷔할 당시 ‘웹’을 이용했던 점에서 그런 인상이 더욱 강하다. 그래서인지 작가 양아치는 ‘웹 아티스트’라고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양아치는 웹아티스트나 미디어아티스트와 달리 만지면 작동하거나 번쩍거리는 플래시 같은 미디어 장치를 고안하기 보다는 미디어의 속성과 그 파급 원리에 대해서 이론적으로 탐구하는 데 시간을 많이 들였다. 개인전을 열기 전부터 몇몇 사람들과 함께 진행했던 〈China Robot〉이나, 그 이후 〈해킹을 통한 미술행위〉, 택티컬(전략적) 미디어 아트를 연구했던 〈Parasite - tmn〉, <blog art.org> 등의 프로젝트가 그 증거다. 활동 초기에는 실제로 웹사이트를 만드는 것은 물론, 심지어 해킹하는 방법도 배웠다. “해킹이 꼭 범죄 행위로만 치부되는데, 긍정적인 면도 있습니다. 현상의 질서와 그것의 프로세스에 관심 있다는 점에서 예술가와도 닮아있기도 해요. 해커도 온라인에서의 양아치인거죠.”
인터넷뿐만 아니라, 음악, 영화, 애니메이션 등 모든 미디어에 탐닉하는 작가 양아치. “예전에 비하면 덜 파고들지만 미디어에 대한 기본적인 관심은 늘 유지하고 있죠. 얼마 전 네이버에서도 오픈 소스를 하기 시작했잖아요? 그것도 틈틈이 보고 있어요. 그냥 알아두면 좋을 것 같아서요.(웃음)”
“미대를 마치고 미국 유학길을 나섰는데, 거기 친구들한테 JAVA나 html 언어 등을 처음 배웠습니다. IMF 때문에 가세가 기울어서 학업을 마치지 못하고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지만요. 미국에서 한국에 돌아와서도 여전히 경제 사정이 좋지 않아, 처음엔 PC방을 전전하며 작업을 했었죠.” 그러다 첫 개인전을 연 것은 2002년이었다. ‘양아치 조합’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의 정치적 사회적 풍경을 인터넷 홈쇼핑으로 비유, 풍자했던 작업을 선보였다. 이듬해 작가는 ‘전자정부’라는 제목으로 두 번째 개인전을 열었다. 판옵티콘에 갇힌 듯 정부와 자본의 결합이 시작하는 당시의 인터넷 상황을 반영하려고 한 것이다. “생각해보세요. 인터넷 실명제, 감시 카메라, 전자 도청, 전자 팔찌 등으로 디지털 시대의 정부가 국민의 개인 인터넷 정보를 갖고 있고,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그거야 말로 완벽한 ‘감시 통제 시스템’이죠.”
뉴밀레니엄의 부푼 꿈을 안고 모두가 디지털 파라다이스를 그리던 사회적 분위기를 타고 ‘미디어아트’ 혹은 ‘웹아트’가 현대미술의 총아로 떠올랐던 시기에 오히려 찬물을 끼얹은 격이다. “전 제 작업을 두고 처음부터 ‘웹아트’라고 생각하진 않았어요. 웹보다는 네트워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온라인 상의 네트워크보다 그 이전의 휴먼네트워크, 다시 말해 사람과 사람의 관계성 같은 거 말이에요.”
두 번째 개인전을 열고난 후, 5년 만인 2008년에 개인전을 열었다. 물론 그 동안 작업을 쉰 것은 아니다. CCTV를 이용한 <감시드라마>와 <감시오페라> 등의 연작을 제작했고, 미디어 아트 보존 문제를 제기한 <404 object not found>, 저작권 문제를 지적한 <the C-boat attack> 등도 발표했다. 슈투트가르트, 마드리드 등 해외에서 열린 대규모 기획전에 초대되기도 했다. 그 동안 쌓아둔 것이 많았던지 한 해 동안 두 번씩이나 1월에 인사미술공간에서, 8월에 갤러리상상마당에서 각각 전시를 열었다. 두 개인전은 어찌 보면 하나의 전시이기도 하다. 왜냐하면 ‘미들 코리아: 양아치 에피소드’라는 주제로 각각 I과 II로 열렸기 때문이다.
미들 코리아. 다소 의미심장해 보이는 이 말은 남한(South Korea)과 북한(North Korea) 사이의 국가를 의미한다. 그 국가는 통일이나 화합의 초석을 다지는 ‘중간 나라’가 아니다. 이름하야 ‘미들 코리아’는 기존의 국가, 정부, 경제 등의 시스템을 파괴하려고 만들어진 국가다. 도무지 가당키나 한 이야기냐고 할지도 모르지만, 미들 코리아의 시놉시스를 들어보면 제법 그럴싸하다.
미들 코리아에는 김씨 가족이 산다. 김일수와 그의 두 아들 김이수와 김두수, 딸 김영이 그 구성원이다. 이 가족은 미들 코리아 내에 ‘김씨 공장’을 세워 50년째 바이크(오토바이)를 생산하면서 살고 있다. 그런데 김씨 가족은 좀 특별한 바이크를 만든다. ‘할리 데이비슨’을 훨씬 넘어설 만큼 정교한 수공 작업이 요구되는 최상급의 바이크를 소량씩 생산한다. 이 바이크에는 인공위성을 탑재할 수도 있고, 미사일을 장착할 수도 있다. 앞서 열린 <미들코리아: 양아치 에피소드I>에서는 김씨 공장에서 생산한 ‘가미가제 바이크’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흐른다. 미들 코리아에 국적을 ‘등록(신청)’한 가미가제 라이더들이 각자 파괴하고픈 시스템을 향해 전속력으로 달린다는 줄거리다.
다음으로 갤러리상상마당에서 열린 <미들코리아: 양아치 에피소드II>에서는 가미가제 바이크 대신 ‘루머 건(rumor gun)’이라는 오브제를 중심으로 ‘저격수 차지량’ 등의 새로운 인물이 등장해 또 다른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특히 이때는 <양아치 에피소드II>의 작가가 직접 쓴 대본을 책으로 펴냈다. 다음은 그 중 일부다.
김일수: 루머는 환각적이야. 그래서 다들 미쳐버리지.
박래품(舶來品) (ID): 킬킬킬
김일수: ‘루머 건’을 만들어봐.
박래품(舶來品) (ID): M-1 Garand를 기본 모델로 하려고 합니다.
김일수: 그렇지.
박래품(舶來品) (ID): 음..계급이 낮았던 자들은 ‘혀의 기술’에 능하죠. 아마 그것을 이용해야겠죠.
김일수: 그것을 ‘루머 탄환’으로 제작해봐.
박래품(舶來品) (ID): 네?
김일수: ‘루머 탄환-7’은 계급이 낮았던 그들의 심장에 적절히 반응해. 일단 그 탄환에 맞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분노가 생기고 자신의 삶으로부터 획득한 모든 지식들을 결집시키게 되지. 그리고 14분 후에 다른 사람들에게 루머를 퍼트려.
짧은 대화임에도 불구하고, 내용 파악이 쉽지는 않다. 어떤 독자는 온라인 게임을 떠올리기도 할 것이고, 또 어떤 독자는 최진실이나 최민수 사건들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글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시각적인 이미지로 다가온다. 작가는 이야기 속에 군데군데 숨어 있는 상징적인 아이콘들을 오브제, 사진, 음악 등으로 만들어 관객(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5년이라는 시간만큼이나 양아치의 작업에는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우선 과거에 비해 상당히 화려해졌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러나 가장 큰 변화는 무엇보다도 ‘이야기’가 생겼다는 점이다. “웹 2.0과 더불어 기존의 웹아트의 역할은 종료된 것 같아요. 이제는 대중들이 웹을 너무나 잘 사용하기 때문에, 웹아티스트들이 이전의 것을 반복한다면, 분명 한계에 다다를 것이 자명합니다. 중요한 것은 웹 자체가 아니라는 생각이 점점 들었어요.” 작가는 과거 작업하는 태도를 두고 ‘작가적 사춘기’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이제 성인이 된 양아치는 어떤 모습으로 성장했고, 그 배경은 무엇일까? 그러한 이슈를 둘러싸고 <양아치 에피소드II>가 열리던 작년 여름, 진중권과 대담이 열렸다. 그 중 일부를 발췌해 소개한다.
진중권: 웹아트 나아가 뉴미디어 아트가 그런 한계에 봉착했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대안은 무엇인가?
양: 나는 스토리텔링을 본격적으로 도입하는 데 길이 있다고 생각한다. 포털 사이트가 웹을 장악한 이후, 많은 예술가들이 웹을 떠났다. 그것은 웹이 보장해주리라 믿었던 ‘가상성에 대한 믿음’을 잃었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 대중들이 웹에 올리는 컨텐츠들은 너무나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경향이 있다. 촛불집회만 하더라도, 올라오는 대부분의 영상들이 현실을 그대로 복제한 게 아닌가. 그래서 이야기는 중요하다.
진중권: ‘미들 코리아’의 스토리텔링은 바로 그런 스토리텔링의 예인가?
양: 그렇다. 남한도 그렇고 북한도 그렇고, 현실은 상상력으로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내가 남한과 북한 사이에 상상의 영토인 ‘미들 코리아’를 상정한 것은 그 때문이다. 그 나라는 가상성이 풍부하고, 따라서 상상력을 통한 개입의 여지도 많다.
진중권: 어떻게 보면 현실로부터 도피가 아닌가?
양: 부정하지 않는다. 홍길동은 현실에서 자신의 꿈을 실현하는 게 불가능함을 깨닫고 멀리 떨어진 곳에서 율도국을 건설했다. 마찬가지 이유에서 내게도 ‘미들 코리아’라는 공간이 필요하다. 앞으로 진행할 미들코리아 III에서는 기존의 시스템을 파괴하는 차원을 넘어 대안적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싶다. 이제까지 모든 정부나 국가는 영토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그 영토를 떠난 새로운 국가를 기획하는 것이다.
진중권: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앞으로 지금의 정권 하에서 어떻게 살겠는가? 그래서 인터넷을 통해 네티즌들과 더불어 사이버 망명정부를 구성한다는 생각이었다.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가 픽션을 구상하고, 오브제를 만드는 것은 과거와 일견 달라 보이지만 기저에 깔린 미디어에 대한 관심과 자본과 계급 등의 사회비판적인 시각은 그대로다. “이런 것은 틀렸으니 꼭 고치자, 라는 식의 ‘피드백’에 가까운 작품 보다는 제가 직접 딛고 있는 상황에서 출발하고 싶어요. 현실세계의 질서에 대한 작가적 개입이 요즘 제 작업에서 일종의 엔진(원동력)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이후, 다양성을 확 열어 놓은 현대미술에서조차 양아치 작업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비주류로서 그의 작업 영역은 한국 미술계의 ‘쌩 양아치 XX' 인 셈이다. 미술을 그림이나 조각만으로 생각하던 독자나, 이 글을 정독해도 양아치의 작업이 여전히 낯설다면 작가의 홈페이지(www.yangachi.org)에 필수적으로 방문하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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