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적으로 레지던시 ‘배틀’을 벌이듯, 레지던시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 미술계에서 미술창작스튜디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작가 이강소가 미국 뉴욕의 P.S.1국제레지던시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부터다. 그 이후 국내에는 1990년 후반부터 폐교를 활용한 창작스튜디오가 설립되기 시작했고, 10여년 동안 다양한 형태의 레지던시가 등장하고 있다. 2000년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생겨난 레지던시들은 규모만 다를 뿐 일종의 ‘한국형 레지던시 모델’이 존재하는 듯 전반적으로 동일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단순한 작업실의 개념을 넘어 각종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마련, 작가 재교육은 물론 시민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특히 2009년 여름,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에 개관한 경기창작센터는 국내 최대 면적의 부지에 스튜디오와 주거공간은 물론 작품 창고, 전시실 등을 구비하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네트워크 활동을 선보이며 국내 레지던시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개관과 함께 전세계 레지던시의 연합체인 2009 레즈 아티스 컨퍼런스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는 경기창작센터는 이번에는 국내 레지던시의 관계자들과 함께 진행하는 포럼을 열었다. 2010년 경기문화포럼의 일환으로 <창작스튜디오 네트워크 포럼-창작지원의 패러다임 변화>가 지난 7월 21일 1박 2일간 개최된 것이다. 이번 포럼에는 전국 각 지역의 창작스튜디오 관계자, 사립 미술관 및 대안공간이 운영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운영자, 프로젝트형 레지던시 및 재래시장 레지던시 관계자는 물론 평론가, 작가 등이 참석하여 어떻게 레지던시가 예술가들을 프로모션 할 수 있는지, 지역적 컨텍스트는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한 문제를 고찰하고 그 대안을 모색했다.
기조발제로는 정헌이(한성대 교수)의 ‘창작의 과정으로부터 새로운 대안 찾기’와 이영욱(전주대 교수)의 ‘새로운 공공미술과 지역 레지던시’가 발표해, 포럼의 시작을 알렸다. 정 교수는 한국 현대미술의 환경을 1990년대는 ‘대안공간의 시대’, 2000년대는 ‘레지던시의 시대’로 정의하면서,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우리시대의 새로운 유목민-노마드로서의 작가의 초상을 설명했다. “글로컬리즘 시대의 예술가들은 경계선을 넘어 이 레지던시에서 저 레지던시로, 이 비엔날레에서 저 비엔날레로,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여기서 저리고, 거기서 이리로 떠돈다”는 정 교수의 말은 레지던시가 노마드 작가들의 ‘오아시스’의 기능을 충족시켜 주는 곳이지만, 체류 기간이 제한되었다는 점과 입주작가의 상당수가 40대 미만이라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오아시스”임을 역설하는 것이다. 또한 정 교수는 대안이라는 화두 아래 ‘활동하는 예술’ ‘연구하는 예술’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예술’이 내세우는 지역이라는 새로운 문제의식은 어떤 의미에서든 세계화된 자본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과 고찰을 요구했다. 한편 이 교수는 지역 레지던시의 성립과 역할을 공공미술의 컨텍스트에서 이해시키고자 할 포스터와 수잔 레이시의 비평적 관점을 인용했다. 또한 이 교수는 최근 1년 이내 국내 레지던시에 관련한 신문기사들을 임의적으로 발췌 및 소개함으로써 문화를 통한 지역과 도시를 활성화시키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에서 노출된 전문성과 지역적 소통의 부재를 지적하기도 했지만, 다소 현장감이 떨어지는 내용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기조 발제 이후, 라운드테이블 1과 2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먼저 라운드테이블 1에서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있어서 ‘지역적’ 컨텍스트의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김희진(대안공간풀 디렉터), 박찬응(안양 스톤앤워터 관장). 유승덕(안산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대표), 박성현(광주대인시장 레지던시 디렉터)가 발제를 했으며, 이명훈(순천 돈키호테 디렉터), 백종옥(목포 대안공간 알렙 디렉터), 윤제(포천 아트밸리 총감독), 이정원(인천아트플랫폼 총괄팀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또한 “어떻게 레지던시가 예술가를 프로모션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한 라운드테이블 2에서는 김화용(안국동 가옥 레지던시), 유진상(계원예술대학 교수), 심상용(동덕여대 교수)가 발제했고, 김윤환(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추진단장), 서상호(오픈스페이스배 디렉터), 이윤숙(대안공간 눈/내건너 창작촌 대표), 김월식(작가), 김복수(충주미술창작스튜디오 매니저)가 토론했다.
한편 다음 날 개최된 라운드테이블 3과 4에서는 각각 “다양한 예술실험과의 만남-국제교류 네트워크”와 “학제적+크로스 장르적 실험을 위한 지원”에서는 레지던시의 기능이 이제는 더 이상 ‘작업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트씬을 만들어 내고 전지구적 예술적 담론을 발신하는 거점으로 확대되었다는 지점을 짚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을 것이다. 특히 라운드테이블 3에서 발제한 김홍희(경기도미술관장)의 “국제 네트워킹과 교류 프로그램 공유를 위한 소고: 아트레지던시와 국제 네트워크”에 관한 내용은 경기도미술관과 경기창작센터의 파트너십의 시너지 효과는 물론, 경기도미술관이 표방하는 ‘포스트 뮤지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구체화할 때 경기창작센터의 효율적 운영 방식을 주를 이뤘다. 특히 최근 진행됐던 프랑스 팔레드도쿄 부설 레지던시 ‘르 파비용’과 경기창작센터의 교류 프로젝트 <우리시대의 다문화>에서는 이주 근로자들이 모여 사는 안산 원곡동을 부대 사이트로 선정해, 지역적 특성을 살리면서도 국제적 이슈로 발전시킨 좋은 모델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각각의 라운드테이블에는 각각 명시되어 있던 주제가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발제자와 토론자의 역할 분담도 무색하게 패널들이 저마다 운영/경험한 레지던시나 동시대 아트씬에 대한 입장을 펼치는 데에 급급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각 레지던시마다 처한 상황과 설립 배경이 제각각이다보니 패널마다 안고 있는 문제의식의 결과 깊이에 차이가 클뿐 더러, 이번 포럼의 주요 키워드였던 ‘지역석’ ‘프로모션’ ‘국제교류’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정의도 각기 달라 보였다. 어쨌든 이 땅에서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주체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 자체도 큰 의의가 있기는 하지만, 국공립 레지던시의 ‘예술가 복지에 대한 소명의식’과 사립 레지던시의 ‘행동주의 예술적 취향’이 교묘히 엇갈리는 가운데, 다음 기회에는 좀더 현실에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논의가 오갔으면 하는 마음을 안고 선감도를 떠났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웹진 기사보기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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