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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널 리스트
김선정: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대림미술관 객원 디렉터

김정헌:공주대 교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회원
최정화:작가
임근준:본지 편집위원

진행_호경윤 수석기자






art: 패널분들의 일정을 맞추다 보니, 부산비엔날레 현장에서 라운드 테이블을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불가피한 선택이었는데, 오히려 기분이 나는군요. 어제, 오늘 부산비엔날레 프레스오픈에서 여러분들의 이야기로는 전체적으로 광주보다 부산이 정돈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고 하시는데요. 다만, 주제와 작품이 따로 논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비엔날레와 같은 대규모 전시에서 주제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비엔날레 준비하는 과정에서 감독 선임만큼 중요하게 내세우는 것이 주제 발표인데, 전시에서 주제가 정말 중요하긴 한건가요?

김선정: 우선 부산 비엔날레의 경우, 두 도시라는 점을 강조했는데 "Cafe 1"에서 en 도시에 대한 이야기가 전시로 나타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 같습니다. 박찬경씨의 비디오 작업 외에는 두 도시의 연계성이나 차이를 이야기하는 작품이 없는 것 같았습니다. 광주의 열풍 변주곡 역시 아시아의 열풍을 만드는 것인지, 서양인이 만든 아시아를 다시 재차 강조하는 것인지 알 수가 없는 것 같아요.

art: 부산비엔날레의 경우 서울에서의 프로젝트가 무산되면서 ‘두 도시’의 이야기는 사실 상 무너졌죠. 광주의 경우 ‘열풍 변주곡’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있는데, 이 주제에 관한 생각들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기자 설명회에서 듣기로는,  ‘열풍 변주곡’의 ‘열풍’이 ‘한류열풍’에서 따온 단어이며, 이는 아시아성을 우리의 눈으로 재해석 해보자는 의도가 담겨있다고 들었습니다.

이정우: 광주의 경우, 애초엔 아시아의 문화적 당대성을 점검해보자는 차원에서 ‘이상 열기’ ‘열풍’ ‘광기’ 등의 단어가 등장했던 걸로 압니다. 기본 취지야… 아시아의 현대미술이란 게 서구의 현대미술에 비해 역사가 일천해서 도무지 종잡기 어려운 모양새다 보니 그것을 어떻게 좀 종횡으로 점검하고 정당성을 추인해보자는 것이었겠죠. 그런데 그게 이상하게 ‘한류’와 연결되더니 결국 ‘열풍 변주곡’이라는 신파조의 이름으로 낙착됐어요.
작명 센스야 좀 ‘뽕짝’스러워도 취지엔 공감이 갔습니다. 표피적으로야 아시아의 현대미술이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는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실제론 그렇지 않으니까요. 1993년과 1995년의 베니스비엔날레 ― 그러니까 정확히는 제45회 때의 <Passage to the Orient> <The Other Face: Three Chinese Artists at venice>, 제46회 때의 <TransCulture> <Asiana> 등의 전시를 통해서 아시아현대미술은 공식적은 국제현대미술계의 일원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 에서 시작된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현대미술의 붐은 상당히 인위적인 것이었습니다. (1993년에 백남준이 황금사자상을 타고, 1995년에 한국관의 전수천이 특별상을 타고, 이어 1997년에 강익중, 1999년에 이불이 특별상을 수상한 것은 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제대로 이해 가능한 꽤 정치적인 결과입니다.)
현재 아시아 현대미술의 역사를 앞장서서 정리하고 일정한 발언권을 행사하고 있는 게 알렉산드라 먼로나 존 클락 같은 다소 만족스럽지 못한 인물들인데, 그 역사적 해석이란 게 결국은 그들의 패러다임에 맞춰서 동양을 바라본 것이기 때문에… 아시아인들이 스스로 자신들이 진행해온 현대미술의 역사를 정리하고 평가하는 일이 꽤 시급한 과제거든요. 그런 면에서 광주가 중국고대미술사 연구에 있어서 상당한 권위자인 우훙을 수석큐레이터로 영입한 것은 꽤 흥미로운 카드였어요. 최근 그는 중국의 전통 화론을 현대미술의 해석에 도입하고 있는데, 거기엔 상당한 논란의 여지가 있거든요. 어떤 면에서 우훙은 한국의 도올 김용옥과 비슷한 캐릭터기도 하고… 아무튼 의도했던 결과를 얻진 못했지만, 시도는 높이 살만해요.

art: 그런데 애초의 취지에서도 좀 불안했던 것은, 결국 전시관 여건과 보존의 문제 때문에 결국 이루어지지는 못했지만, 다른 아시아 국가들의 국보들을 가져오려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이정우: ‘모리미술관 식’으로 전시가 꾸며질 뻔 했던 거죠. (웃음) 시대를 넘나드는 병치란 게, ‘먹물’ 큐레이터들의 상상과는 달리 늘 결과는 좋지 않아서… 근데 구현하/되지 않아서 참 다행인 건 또 있어요. 김홍희 총감독이 이번 광주 비엔날레를 기획하면서 자신이 주력해온 분야인 페미니스트 아트에 특별한 방점을 찍지 않은 것이 또 다른 ‘다행’이지요. 그리고 뉴미디어아트 분야의 수석큐레이터를 섭외하는 데 실패한 것도 참 다행이에요. 아니면 전시가 중구남방이었을 거예요. 제1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정보예술>전을 큐레이팅했던 그로서는 뉴미디어아트란 장르를 포기하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김선정: 아시아를 예전과 현대를 섞어서 보여주는 건 아무래도 서양식의 linear한 형태인 것 같은데, 이런 방법 말고 아시아를 재고해보는 우리 식의 방법은 정말 없는 것 같아요.

art: 어쨌든 ‘아시아성’을 주제로 하다 보니 아무래도 오리엔탈리즘에 빠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전시 준비 초기부터 있었는데, 주최 측에서는 절대로 그럴 리 없다 했었지요. 

최정화: 절대로 그 안에서 못 헤어났죠.

이정우: 오리엔탈리즘은 비판하거나 폭로한다고 해서 쉽게 약화되거나 해체되는 게 아닙니다. 전 종종 “오리엔탈리즘은 우리 아시아인에게 신이 내린 축복이야-”라고 농담을 뱉곤 합니다. ‘정치적으로 올바른’ 방식으로 오리엔탈리즘을 벗어나고자 노력하기보다 현존하는 오리엔탈리즘을 노골적으로 악용하면서 그것을 웃어넘기는 태도가 중요한데, 그런 작업을 보기가 어려웠어요. 예를 들어 미국의 매드TV에서 아시아 남성에 대한 편견을 소재로 아주 ‘쎈’ 인종적인 농담을 구사하고 있는 한국계 인기 코미디언 바비 리 같은 그런 작가가 좀 보고 싶어요. 탈식민주의 작업이 너무 진지한 태도로 (촌스러운 형식에) 메시지를 담는 경우, 때론 꼭 징징대는 애들을 보는 것 같아서 아주 짜증이 난단 말이죠.    

김선정: 서양에서 전시를 하고, 전시는 관람객이 볼 때와, 아시아에서 전시를 할 때와는 문맥을 생각하고 전시를 해야 할 거 같아요. 우리는 우리 자신을 정리하는 일을 제대로 한 적이 없어서 이런 시도가 해볼만한 시도라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우리 문화가 가진 폐쇄성으로 ‘아시아’라는 여러 요소를 우리가 잘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속에서 아시아를 끄집어내면 재미없어 보이는 것 같아요.

art: 입구의 황인기 작가의 작품부터 일관적으로 그런 느낌이 강해서, 그런 평을 많이 받게 된 것 같습니다.

이정우: (최정화를 바라보며) 어디 우리 ‘오리엔탈리즘 대표 작가’께서 주제에 대해 한 말씀을 좀….

최정화: 미술관에서 안 놀고 밖에서 혼자 노는데 어떻게 이야기를 해요?

김선정: 그래도 참여 작가로서 주제를 어떻게 해석해서 작품을 내셨는지 알려주세요.

최정화: 저는 주제에 대한 해석이 전혀 없이 참가했는데…. 아마 제가 참여한 섹션이 ‘신화와 환상’이었을걸요?
   
김선정: 그래요? 어울리는 주제네요.

이정우: ‘사이비 교주’니까 잘 어울리죠.

김선정: 진짜 어울린다. 제일 잘 선택한 작가 같은데요.

art: 이제 부산비엔날레의 주제 ‘어디서나’ ‘두 도시 이야기’에 대해서 이야기해볼까요?

김정헌: 내 경우 이번 부산 비엔날레도 그렇지만 제 1회 광주비에날레 ‘경계를 넘어’에 참여할 때도 그렇게 주제에 신경을 쓰고 작품을 만든 건 아닌 거 같아요. 이번 부산 비엔날레의 주제 ‘두 도시 이야기’는 특히 지역성에 대한 정치적 의미가 담겨진 주제가 아닌가하는 생각입니다. 뭐든지 또는 모든 것이 ‘서울’ 중심이라는 중앙 권력에 대해 맞먹으려는 제2의 도시 부산을 은근히 내세운 게 아닌지. 그렇게 보면 광주의 주제 열풍 변주곡도 아시아의 문화의 중심지로서의 광주를 은근히 부각시키려는 정치적인 함의가 있는 주제처럼 보입니다.    
이정우: 그런가하면, 부산 비엔날레의 ‘홍보용 껍데기’ 그 자체는 아주 재밌는 것 같아요. 서울에 대립각을 세우면서 부산의 문화적 지형을 도드라지게 한다는 취지는 참 좋아요. 우리나라는 모든 문화 활동의 중심이 서울이라서 ― 그런 면에선 참 파리에 모든 게 다 몰리는 프랑스랑 비슷해요 ― 문제라면 문제인데… 지금 미술계의 상황은 비엔날레만 놓고 보면, 서울이 맥을 못 추고 있는 아주 예외적인 삼각구도란 말예요? 미디어시티서울은 1회 때 관객동원에 실패한 이후 규모가 오그라들어서 지금은 비엔날레인지 미술관의 대형 기획전인지 구별이 잘 안갈 정도고, 크고 작은 정치적 잡음을 한 번도 그쳐본 적이 없는 광주는 방만한 운영으로 신선함을 잃은 상태인데 반해, 부산은 그간 작은 규모로 꽤 볼만한 전시를 만들어왔다는 상대적 호평을 누려왔어요. 그런 상황에서 부산이 서울을 걸고넘어지면서 국내 제1의 항구도시로서 문화적 힘을 보여주려 한 것은 꽤 그럴듯한 시도였어요. 문제는, 그게 전시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는 거죠. 주제는 완전히 ‘보도자료용’인 것인지.

art: 박만우 선생님께서 처음에 하셨던 것은, 서울을 직접적으로 이용하시려고 했던 거잖아요. 원래 분당에서 카페3를 하려고 했던거죠.

김선정: 청계천에서 하는 게 아니었어요? 제가 듣기로는 청계천에 비디오 프로젝션과 여러 설치가 놓일거라고 들었었는데, 실현이 안 되는 건가요?

art: 분당이 잘 안 되서 청계천으로 옮기려고 했는데, 서울문화재단이랑 어긋나서 최종적으로 8월초 쯤 취소가 되었죠.

김선정: 아, 잘 안됐어요?

art: 그래서 청계천에서 하려고 했던 작가들을 그대로 지금의 온천천으로 데리고 온 거라고 들었습니다. 그 후로 청계미술제가 열렸잔항요.

최정화: 그런데 ‘어디서나’라고 안 해도 될 뻔 했어요. 굳이 밖에 나가서 할 이유가 없는데 왜 괜히 밖에 나가서 뭐하고 있는 건지…. 미술관 안에서 보여줘도 될 작가들이잖아요. 그게 제일 큰 문제지요.

이정우: 전 그렇게 미술관 밖으로 안 나가도 되는 작품들을 밖에 내놓은 걸 보면, 신문에 광고라도 내고 싶어요. “엄마 팬티 줄여 놨다. 제발 집에 돌아와라.”

art: 그래도, 서문에서도 언급하셨다 시피 박만우 감독께서 가장 신경 썼던 것이 ‘공공 영역의 확장’이라니까요. 그래서 밖에서도 하고, 케이블TV로도 쏘고, 라디오로도 내보내고요.

이정우: 아 참, 그 “공공”이…

김선정: 다들 ‘공공’이라는 단어를 너무 남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밖으로 나오면 무조건 공공인건지?모뉴멘트가 공공인지, 밖으로 무조건 나오면 공공인지, 미술관 밖이 공공인건지.

이정우: 저도 그 의견에 한 표 던집니다. 옳소!

김선정: 다들 ‘공공’이라는 단어를 너무 남용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밖으로 나오면 무조건 공공인건지?모뉴멘트가 공공인지, 밖으로 무조건 나오면 공공인지, 미술관 밖이 공공인건지.

김정헌: 쉽게 이야기하면 최정화 씨 작품 같은 거 아닌가. 이 번 월간지에 최정화씨 특집을 보았는데 보는 순간 이거야말로 ‘공공미술’이다라고 생각했죠. 길거리나 건물 근처 공공공간에는 늘 비슷한 거 끼리 매번 놓여 있지 않아요. 그런데 요꼬하마에 설치된 최정화씨의 작품 경우에는 아주 엉뚱하게 어울리지 않을 작품이 버젓이 놓여 잇어 같이 공간 속에서 공생하고 있는 걸 보고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공공공간에서 서로 다른 것들이 유기적으로 결합하는 거 뭐 그런 것들이 공공미술의 생명이 아닌가요.

최정화: 저는 꼭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제가 하는 작업이 공공의 일부분이긴 해도, 저보다 더 크고, 더 작고, 더 안보이고 무수히 많은 공공 작업들이 있는데, 저와는 다른 여러 가지 많은 공공성을 지닌 것들이 있거든요. ‘공공’이라는 단어에 매달리면서 다른 게 아무것도 안 보여요. 까페3는 제가 볼 때, 장소와 전혀 무관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오히려 그 곳에 있어서는 안 될 것들이 거기에 가 있어요. 오히려 그 현장에, 기존에 있는 멋진 미술작품들이 있어요. 그 모든 것 헤치고, 대체 뭘 하자는 건지 모르겠어요.

art: 그런데 기획자들이 ‘공공’에 대해서 다들 다르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 것이, 방금 전 최정화 씨가 하신 말씀과는 정 반대의 말씀을 박만우 감독께서 하셨어요. 꼭 작품을 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요. 그동안은 늘 ‘공공미술’스러운 작품만을 바깥에 가져다 놓았는데, 그런 형식은 없어져야 하고, 이제는 미술관에서만 볼 수 있었던 작품들을 밖에 내다 놓아야 한다고요.

이정우: 물론, 마네의 그림 같은 진짜 미술관용 그림을 비를 맞거나 말거나 개천 변에 떡하니 걸어두면 엄청 ‘쎈’ 아트가 됐겠죠. 그런데, 이번에 밖에 내놓은 작품들은 이도저도 아니잖아요? 공공미술이라고 이름을 걸친 것들은 보면,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전세계적으로도 별로 볼만한 게 없어요. 그런가 하면 최근의 공공성 담론을 대표하는 행사인 <2006 국제작가포럼(AFI): 공공의 순간>에서 발행한 자료들을 보면, 전 도통 무슨 주장을 하는 것인지 잘 이해를 못하겠어요. 계속 공공성, 공공성… 하는데, 일부 문장에선 그 말을 ‘당파성’으로 바꿔 써도 거의 아무 문제가 없더라구요? 아마 때론 그냥 ‘좋은 거’라고 바꿔 적어도 무리 없이 읽힐 겁니다.

김정헌: ‘밖으로 뛰쳐나가고 싶은 사람들의 당파성’? 내가 공공미술이란 말을 가장 많이 써온 사람 중의 하나인데, 정말 이번 기회에 연구를 좀 해야겠군요. 그 말을 써야할지 말지에 대해서.

art: 공공에 대한 이야기를 좀 더 구체적으로 해 볼까요? 서울에서 진행되는 ‘공공의 순간’전도 그렇고, 요즘 큰 전시들에서 ‘공공성’을 많이 내걸잖아요? 나랏돈을 쓰는 큰 전시의 경우 대중에 대한 책임의 일환으로도 그렇게 하고 있고요. 박만우 씨도 공공영역의 확장을 말씀 하셨고, 류병학 씨도 항상 예술과 일상의 경계를 무너뜨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요.

김선정: 그래서 미디어시티서울 첫 회 때 그런 거 많이 하셨잖아요. 지금도 남아 있어서 지하철을 타러 갈 때 만나게 되는 벽화 작업이 서울에 있지요. 2000년에 만들고 보수도 하지 않아서 부분만 남아 있고... 예술작품이 공공영역에 들어가면 보존도 생각하고 보호해줘야 한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정우: 지하철에서 전시하고, 도심의 대형 전광판으로 비디오 아트 틀고… 말로는 그럴싸해요. 그런데 찾아보기도 어려운 게 막상 애써 찾아가서 보면 참 허탈할 정도로 별 것 아닌 경우가 많단 말예요?

art: 이번 바다미술제도 주 개념이 공공 쪽인 것 같아요. 김홍희 감독도 시민프로그램을 몇 개 만드셨고요.

이정우: 보면, 우리나라만 그런 것 같진 않고, 유럽 쪽에서도 각종 아트 페스티발을 보면 이젠 ‘시민’을 내세운 수용자 중심의 서비스 이벤트를 억지로라도 편성해 넣지 않으면 아예 국가에서 예산이 안 나오는 모양이에요. 소위 ‘순수 예술’은 시민을 위한 게 아니라는, 기이한 비판 정서가 만연된 터라.

art: 결국 예산이 문제인가요?

이정우: 현재로선 공공 기금의 지원을 받는 행사들로선 어느 정도 어쩔 수 없는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게다가 문제는, 공공 영역에서 현대미술을 구현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일부의 시도와 목소리가 그저 돈을 더 따내려는 사람들의 그것과 섞여서 분간이 안 간다는 겁니다. 현재 공공 영역에서 현대미술의 게임을 벌일만한 재밌는 도메인들이 보이는 게 사실이지만, 그게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공공성 논의에서 잘 포착될 지는 의문이에요.
솔직히 말해서 공공성의 담론이란 게 “기금을 따내는 문제”로 인해 형성·운영되고 있는 셈이잖아요? 기금은 있으면, 누군가는 따낼 거고, 어떻게든 소모되는 법이니… 어찌됐든 미술계에 돈이 굴러들어오게 하는 주요 수단 가운데 하나니까, 공공성을 핑계로 공공기금을 따오는 시스템은 일종의 필요악이랄까. 사실 미술관학이란 분야도 마찬가지잖아요? 미국의 미술관들이 국가에서 예산 좀 더 따내려고 만든 게 미술관학, 특히 미술관 교육이란 분야죠. 예산을 썼으니, 공공의 이익에 기여했다는 증거를 제시해야 하는데, 미술관의 효용은 수치로는 제시하기 어려우니, 결국은 ‘교육’을 핑계로 예산을 따내는 게 가장 설득력이 강했던 거죠. 그리고 늘 발목을 잡는 것은 참으로 무의미한 관객 동원 수입니다. 아무튼, 언제어디서나 예산을 잘 따서 잘 하면 상관없는데, 잘 못 해서 문제죠.

김정헌: 예술행사가 예산과 관계가 있는 건 확실해요. 향수자 중심의, 사용자를 위한 프로젝트일 경우에만 돈이 나오는 경우가 많아요. 특히 복권기금이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죠. 재원의 분배와 공공성이란 것이 밀접한 관계가 있는 거죠. 달리 말하면 공공성이란 같이 나누는 방식이죠. 그런 의미에서 재원을 분배하는 사람들이 예술을 향유하는 사람들의 측면에서 생각을 해야 하는 거니까.

art: 외국의 비엔날레를 나가보면 멋진 작품들도 보이던데요.

이정우: 외국도 영구설치작품은 대개 별로지 않아요? 전 진짜 멋있는 공공미술품을 본적이 많지 않은데요.

김선정: 시간의 문제도 큰 것 같아요. 충분한 논의를 가질 시간이 없이 가져다 놓게 되니까. 공공의 영역으로 나올 경우에는 그 장소나 작품에 대한 충분한 고찰이 필요한데, 국내전시나 비엔날레의 경우,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이 길어봤자 3개월에서 6개월 정도의 시간 밖에 없으니까요. 공공미술추진위원회의 프로그램도 보면, 4개월 만에 시작에서 끝까지 모든 것을 해야 해요. 그런데 그것이 커뮤니티 베이스가 되지 않고, 동네 사람들에게 굉장히 불편을 줘요. 돈을 써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해야 하기 때문에. 예산에 맞춰 예술가들은 무슨 일이든 다 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억지로 시간에 맞춰서 작업을 하는데, 이런게 맞는 방식인지 모르겠어요. 그 문제에 대해서 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요. 예산을 다 쓰기 위해 억지로 일을 추진하는 것. 올덴버그는 다른 예이기는 하지만 또 다른 모뉴멘트가 청계천 시작점에 있는 거에 대한 논의가 충분히 있었는지 생각해 봐야 해요.

이정우: 자꾸 그 작품들 가지고 시비들을 거는데, 그게 그렇게 문제인가요? 전 그 ‘올갱이’가 그렇게 까지 사람들의 심기를 건드리는 이유가 뭔지 한번 좀 따져볼만 하다고 생각해요. 꼭 국내 작가에게 맡겨야 하나요? 그리고, 경쟁 방식으로 작품을 공모했어야 한다는 주장이 많은데, 하도들 속아 살아서 공모 형식을 선호하는 것은 이해가 가요. 하지만, 경쟁 방식으로 작품을 공모한다고 최선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라는 점, 이름난 작가들은 경쟁 입찰에 잘 도전하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해요. 전 솔직히 올덴버그의 작품보다도 임옥상의 전태일 기념상이 더 문제던데.

최정화: 김선정 씨가 이야기 잘 해주셨어요. 시간에 대한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제가 해외에서 Public art작업을 많이 했었어요. 그럴 때 최소 1년 반이 걸려요. 길게는 3년에서 4년까지 걸리고요. 그런데 우리는 몇 달 만에 끝내거든요.

김선정: 최정화 씨의 공공 프로젝트 중에 제가 좋아하고 결과가 좋다고 생각하는 프로젝트인, 후쿠오카 미술관 건물의 기둥 작품이 제작하는데 3년 가량 걸렸죠?

최정화: 네. 건축 초기부터 참여했었지요. 또 그런 프로젝트에 앞서서 장소에 대한 설명서가 엄청 두꺼운 책으로 나와요. 가고시마의 액자 작업도 그렇고. 기획에서 1년, 현장에서 1년. 이렇게 진행되는데….

김선정: 에치고 츠마리가 공공 미술 트리엔날레이지요. 올 7월에 시작되었는데, 공공미술을 다루는 트리엔날레죠. 외국 비엔날레 이야기도 해야겠죠? 올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비엔날레가 11개가 열리잖아요.

김정헌: 아, 그래요? 정말 비엔날레가 많네요. 그러니까 우리가 비엔날레의 시대에 살고 있는 셈이군요.

김선정: 그런데 실제로 가보면 큰 예산과 도시 홍보가 목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드는 경우가 많아요. 비엔날레의 목적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죠.

이정우: 전 세계적으로 비엔날레가 큰 것만 꼽아도 80개랍니다. 미대륙에 18개, 유럽대륙에 39개, 아프리카에 4개, 자기들이 아시아라고 착각하는 호주가지 합치면 아시아에 19개에요. 아시아엔 더 생기겠죠. 아시아 사람인 우리가 잘 모르는 것도 많아요. 아랍에미리트연방의 샤르자비엔날레, 뉴델리의 인디아트리엔날레, 방글라데시의 아시안아트비엔날레, 중국의 광저우트리엔날레, 인도네시아의 발리비엔날레, 호주 퍼스의 일렉트로닉아트비엔날레,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스케이프어번아트비엔날레 등은 관련 기사를 본 기억도 없어요.

김선정: 이렇게 많은 비엔날레가 다 왜 생겨날까요? 생긴 목적을 다 잘하고 있는건지 모르겠어요.

art: 또 하나, 밖에서 하는 행사의 경우, 시 당국의 허가를 얻어야 하는데, 이럴 때 부딪치는 부분이 꽤 있죠. 광주나 부산의 경우 지역의 예산으로 진행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행사 진행 차원에서 시에 요구를 하거나 허가를 받거나 해야 할 것들이 있을 때 시에서 귀찮아하는 경우가 많다고 하더군요.

김선정: 그것을 두 가지 차원에서 생각해야 할 것 같아요. 시에서 주관하는 페스티발로 볼 것인지, 아니면 비엔날레라는 미술행사로 볼 것인지. 전자라면, 시민참여 혹은 자원봉사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 같고요. 비엔날레 자체로서 미술행사라고 본다면, 시의 홍보와 미술행사라는 성격이 마찰되는 측면을 봐야 할 것 같아요. 싱가폴비엔날레도 이번에 가보니까 행사장 바깥에 도시의 홍보가 안 돼 있더라구요.

art: 공공에 대한 것은 나중에 더 이야기 해 보기로 하고요. 홍보 얘기가 나왔으니 그 얘기를 해 보죠. 이번 광주비엔날레를 보면, 전시보다는 오히려 홍보에 많은 열을 올리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요. 싱가폴, 상하이 비엔날레와 함께 3자 연동해서 휘트니 비엔날레나 요코하마트리엔날레 때 기자간담회를 열거나, 상품을 같이 만드는 것 등이 있죠. 제3세계의 비엔날레들이 뭉치는 전략은 어떻게 보면 좋을까요?

김선정: 어디 제3세계만 그런가요? 서구도 마찬가지에요. 바젤아트페어나 베니스도 그렇잖아요? 지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경우, 그것을 전략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좋은 것 같아요. 3개를 엮은 것은 잘 했다고 봅니다.

이정우: 그런데 바젤과 베니스의 경우를 싱가폴, 상하이, 광주의 경우와 비교하는 건 좀 무리가 아닐까요? 바젤과 베니스는 서로 거의 완벽한 윈-윈 시추에이션을 이루잖아요. 아트바젤은 작품을 팔아치우는 상업 행사고, 그에 앞서 열리는 베니스비엔날레는 1895년에 등장한 이래 세계 미술의 흐름을 이끌어 온 대표적인 예술제입니다. 단순 무식하게 말해서 베니스에서 “요즘 누가 떴나” 확인하고는 바로 바젤로 짐 싸들고 날아가서 작품들을 사고파는 거 아닙니까. 그런데 싱가폴, 상하이, 광주는 그런 상호보완적 관계에 놓여있질 않아요.
저도 처음 싱가폴, 상하이, 광주가 홍보연합을 꾸린다는 말을 들었을 때엔 참 좋은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막상 연합 홍보에 의해 보도된 결과들을 보면, 도리어 세 행사를 한꺼번에 보도하다 보니까 행사의 성격이나 참여 작가들의 면면을 소개하는 지면이 줄어들고 말았어요. 사실 미국과 유럽의 백인들이 잡지 기사를 통해 보기에는 “아시아 루저들이 한꺼번에 모였구나-”라면서 페이지를 넘겨버리기 십상인 모양새였어요. 결국 비엔날레끼리는 치열하게 경쟁해서 이겨야하는 것이지 다 잘되게 만드는 비법은 없는 겁니다. 남의 나라에서 열리는 비엔날레와 공조하기 보단, 그냥 부산과 광주가 서로 일정조절이나 잘 했으면 좋겠어요. 비싼 돈 들여서 해외인사들 초청하는데, 광주만 보고 가거나 부산만 보고 가게 만들면 참 아깝지 않아요?

art:광주에 왔던 해외 손님들을 부산에서 다시 본 경우는 거의 없었습니다. 어제 열렸던 부산비엔날레 기자간담회에서 김홍희 총감독께서 공개적으로 그런 말씀을 하시더라구요. 이번의 경우 부산과 광주 오픈 날짜가 8일 차이가 나는데, 일정을 앞당겨서 이틀정도 차이가 나도록 하면 해외 손님들이 더 많이 보고 가지 않겠느냐고 박만우 씨에게 제안했었지만 잘 안됐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다음 번에는 그렇게 해보자니까 조직위원장님께서 답하시길, 동시에 열되 본부를 부산으로 두자고 농담 섞인 답을 내놓으시더라구요. 결국 거절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양자 간에 갈등은 있겠지만, 아예 일정을 멀찍이 떨어뜨리던지, 아니면 실속이라도 차릴 수 있도록 두 비엔날레의 시기를 이틀 차로 두던지 했으면 좋겠어요.

김정헌: 지난 주 광주비엔날레 개막할 때 갔었는데, 지역 정치 행사의 느낌이 강했어요. 특히 오픈 세레모니 때 총리를 비롯한 구회의원들과 지역정치인들이 모두 얼굴 드러내고 말이죠. 지역 비엔날레에서 드러나는 정치성이 우리가 가지고 있는 비엔날레의 한 특성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광주가 아시아 열풍의 중심지를 자처하고 나선 것으로도 볼 수 있지요. 부산 비엔날레의 경우는 지역성을 무엇으로 드러내야 할 지 고민하다가, 서울의 중앙권력과의 관계에서 제2의 도시로서의 위상을 끌어낸 것이 아닌가 합니다. 정치적 맥락이 비엔날레 안에 피할 수 없이 포함되어 있는거죠.

이정우: 애초에 국내 최초의 비엔날레의 개최 장소로 광주로 낙점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김정헌: 광주에 대해 정치적, 역사적으로 빚이 있다는 관념 때문에, 대통령 선거 때 일종의 보상 차원에서 행해진 겁니다. 노태우 정권부터 시작해서 김영삼 정권 때 광주 민주화운동에 대한 보상 차원에서 광주 비엔날레에 엄청난 재원을 쏟아 붇게 된 거죠. 첫 회에 전시관 건립 예산까지 총 200억 이상 들어간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따라서 저는 광주 비엔날레가 순수한 미술행사로서만 존재한다고는 보지 않아요.

이정우: 첫 회 대상을 탔던 크초(본명: 알렉시스 레이바 마카도)라는 작가는 요새 뭘 하나요? 뉴욕에서(바바라글래드스톤갤러리) 개인전을 한 번 열었다는 기사를 본 이후엔 전혀 소식을 못 들었어요.

김정헌: 그 이후로는 보이지 않고 있는데, 그 이후로도 광주비엔날레 출신 작가들은 뚜렷한 성과를 보이지 않고 있는 것 같아요.

이정우: 1995년 광주비엔날레가 처음 등장할 때만 해도 국제 미술계의 상당한 주목을 받았었잖아요? 기본적으로 시기가 참 좋았어요. 100억이 넘는 어마어마한 예산을 자랑하는 대형 비엔날레가, 그것도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출범한 것은 아시아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고… 또 무엇보다 예산 규모가 카셀도쿠멘타를 능가하는 터라, 유럽인들의 충격이 상당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게다가 1회 때 116만 명이라는 황당하기 까지 한 관람객 수를 기록하는 바람에, 정말 ‘세계가 놀라게 만든 사건’이긴 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어쩌다가 좋은 기회를 다 놓치고 이렇게 됐는지.

김정헌: 예산의 규모나 제일 처음 시작한 아시아에서의 대규모 국제전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받았지만 비엔날레를 통해 정치적인 정신적 부채를 해소한다는 측면도 매우 긍정적이었죠.

이정우: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광주시민들의 가장 많은 호응을 얻었던 때는 지난 회였다고 하죠? 하지만 미술인들의 경우 최악의 전시로 꼽는 게 지난 비엔날레잖아요? 참, 그 ‘지역 여론’이란 게 난형난제입니다. 무시할 수가 없지만 다 들어줘도 안 되는… 광주 출신의 작가를 반드시 어느 정도 포진시켜야 한다는 식으로 나오면 곤란합니다. 미술에 쿼터제라니 말이 됩니까?

김정헌: 광주와 부산이 어떻게 보면 특수한 정치적 지위를 가지고 있다 할 수 있는데, 그런 이유로 지역 작가들을 배려해야 하는 일이 생기지요. 그러다 보니 비엔날레의 정체성이 훼손되기도 하는 거지요. 2회 비엔날레 때에는 거의 노골적으로 지역작가들을 후원했어요. 호남사람들을 동원하다시피 해서 인기투표를 하는 등 말이죠.  

이정우: 부산비엔날레는 상대적으로 지역색이 적은데, 어떻게 이렇게 커질 수 있었죠? 정확한 예산은 광주는 얼마고 부산은 얼마인 겁니까?

art: 예산으로는 비교가 안 되지만, 광주는 10년째에 접어들면서 점점 그 영향력이 축소되어 가는듯한 느낌이 들어요. 광주비엔날레의 경우 개막식장 뒤에서 이번에는 대통령이 아닌 국무총리가 왔다는 점에서 정치적으로 영향력이 줄어든 것이 아니냐라는 말을 주고 받는 것을 듣기도 했습니다. 부산비엔날레는 이번에 장소도 늘어나고, 예산도 80억으로 늘어났죠. 물론 스폰서 예산 포함해서입니다. 이렇게 두 비엔날레가 겹치는 게 전략적으로 좋을 수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국내에 대규모의 비엔날레가 이렇게 두 개나 있을 필요가 있느냐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어요. 이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최정화: 제가 15개 비엔날레에 참가했거든요. 국내 비엔날레는 처음 참가했고요.

art: 오, 정말요?

최정화: 네. 정말 작은 비엔날레도 가보고 했는데, 유독 한국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들은 왠지 자신감이 없고 화장을 잘 못했다는 느낌이 들어요. 한국에서 하면 왜 이런 느낌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한국의 잡동사니들, 어처구니없고 엉망진창인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그걸 우리 걸로 내세우면 될 거 같은데, 자꾸 남의눈치만 보는 전시가 저는 싫거든요. 광주나 부산에서 우리가 답답해했던 부분이 그것 같아요. 참여 작가 입장에서 저는 여행하는 것 만큼 좋은 게 없죠. 객지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고, 먹고, 놀러 다니고 쇼핑하는 것. 그런데 기획자들은 그 장소적 측면을 고려 안하죠. 따라서 어떤 작가가 필요하고 어떤 내용을 넣어야 하는 지에 대해서도 여러 측면들을 생각할 수 있는 건데, 자꾸 남의 눈치만 보는 거죠. 비엔날레가 그 도시를 활용해서 재밌는 요소들을 만든 비엔날레가 외국에 몇 있어요. 리투아니아트리엔날레같은 경우, 까페3같은 다리 밑이 파티장과 클럽으로 쓰여요. 기본적으로 전시기획이 작가들과 주고받는 게 구체적으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전시와 작가가 따로 노는 게 아니라.

art: 큐레이터 구성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김선정: 이번 광주비엔날레에서 저는 유럽 쪽 큐레이터들 전시는 좀 재미가 없었고, 백지숙씨의 전시가 좋았다고 느꼈어요. 비엔날레의 장점이 뉴프로덕션을 통해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인데, 유럽 쪽 큐레이터들은 좀 안전하게 가기 위해서 기존에 있는 작품들을 다 골라왔더라고요. 그러다보니 재미가 없죠. 큐레이터들이 항상 같이 일하는 작가들과 호흡을 맞춰야 하는 이유가, 결과를 서로 이야기하고 팀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백지숙씨의 경우 그것을 이번에 잘 해낸 것 같아요. 이제까지의 전시들보다 나았던 것 같아요.

김정헌: 저도 그렇게 보았습니다. 백지숙씨가 맡은 것은 나중에 알았는데 제4섹션의 JNP가요. 현장을 돌아다니며 다큐멘테이숀한 작업들이 특히 돋보였습니다. 큐레이터와 작가들의 호흡이 맞는 게 중요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최정화: 그래요? 저는 이제까지의 전시들의 연장으로 봤는데. ‘작가 만들기’가 정착이 되어 버렸어요. 한국 미술의 문제가 작가가 스스로 하지 않고 ‘생산’이 되는 것은 굉장히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정우: (김선정 씨를 바라보며) 지금 하신 말씀이 진심이세요? 이상하군요.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이 좋았는지 좀 말씀해주시겠어요? 저도 최정화 씨처럼 백지숙 씨의 “중앙발칸-중동-아시아-북미” 전시에서 꽤 실망했거든요. 사실 백지숙 씨의 기획력에 기대를 많이 했는데… 자신과 소위 ‘코드’에 맞는 작가들만 갖고 전시를 꾸린 것도 이상해 보였지만, 정치만 커졌지, 예전과 별 다름이 없는 작품들도 문제였어요. 저는 솔직히 “중앙발칸-중동-아시아-북미” 섹션의 진정한 작가는 ‘백지숙 선생님’인 것 같아요.

art: 그러게요. 제가 심심할 때 들르는 곳이 조습 작가의 미니홈피인데, 거기에 얼굴 나오는 작가들 치고 이번 광주와 부산 비엔날레에 참여하지 않은 작가가 없을 정도라구요.  ‘풀 작가’라는 사람들이 한국 미술계를 점령한 것일까요?

이정우: 어떤 중년 작가가 그러대요. “지금이 그분들 전성기야.” 어떤 식으로든 권력의 계보가 그려지는 것은 좋지 않아요.

김선정: 전문가 입장에서는 그게 익숙해져서 그럴 수도 있어요.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경계를 나누지 않고 그냥 봤을 때 재미있게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 만약 비엔날레가 관람객의 문제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해야 한다면, 왜 비엔날레가 존재해야 하는 건지 모르겠어요. 차라리 좋은 미술관을 만들어서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잘 하는 것이 중요한 거죠. 2년마다 비엔날레 행사를 손발이 안 맞는 사람끼리 모여 억지로 꾸리면서 같은 문제를 반복하고 말이죠.

이정우: 큐레이터와 작가가 오랜 관계를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소위 ‘자기 사람’을 데리고 전시하는 게 마땅하다고 주장하시다니… 어떤 복선을 깔아놓으시려는 것인지는 몰라도 궤변입니다. 그리고, ‘비엔날레가 과연 미술관의 기획전과 어떻게 달라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비단 광주와 부산만의 과제는 아니죠. 휘트니비엔날레도 똑같은 이유로 비판을 받죠. 어차피 미술관에서 열리는 비엔날레다 보니 특히. 요점은 하나죠. 비싼 돈 써가면서 뉴프로덕션도 아닌 구작들 모아서 전시하면서 굳이 비엔날레를 여는 이유가 뭐냐는 거죠. 그런데 누가 미술관에서 열리는 기획전에 몇 십 억을 주겠어요? 1억도 힘들어요.

그리고, 뉴프로덕션을 통해서 정말 의미 있는 작품을 뽑아내는 게 최상이긴 하지만… 비엔날레가 꼭 뉴프로덕션으로 이뤄져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봐요. 구작이래도 필요하다면 다시 전시되어 마땅합니다. 오히려 문제는 뉴프로덕션이 아닌 뉴프로덕션들이에요. 오늘날 적잖은 ‘비엔날레용 작가’들이 투어에 들고 다니기 편한 ‘비엔날레용 작업’을 만들어서는 여기저기에 그렇고 그런 뉴프로덕션을 남발하는데, 그런 건 진짜 거의 아무런 의미가 없어요.
김선정 선생님께서 크리스티나 리쿠페로가 단순히 구작을 많이 들고 왔다고 비판하셨는데, 그건 아니라고 봐요. 전 좋은 작가와 작품을 많이 볼 수 있게 전시를 잘 꾸렸다고 봅니다.
그나저나 “중앙발칸-중동-아시아-북미” 전시에서 상당히 부담스러운 반미 메시지를 보다가 “남미: 부에노스 아이레스-엘알토/라파즈-카라카스”에 이르니 아예 반미교육홍보관이 되더군요. 직업 작가들의 작품으로 꾸민 전시가 아니라는 면에서 오히려 귀여웠어요. 어쨌든 갤러리 4와 5가 서로 이어지면서 상승효과를 일으키면서 “야 이렇게까지 반미를 내세울 이유가 있나”하는 반감이 들더군요. 게다가 버시바우 주한미대사를 명예홍보대사로 일하게 만들었는데… 미국의 대사에게 반미예술과 반미홍보관을 홍보하게 만들었으니 참 대단합니다. 이번 비엔날레의 진정한 아트라고나 할까요.

김정헌: 그 날 반미시위까지 겹쳐서 전경들 왔다갔다하고 했는데, 버시바우가 그것을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오히려 재미난 해프닝 작품으로 보여지더라구요. 저는 JNP의 작품을 재미있게 봤는데, 작가의 한 사람으로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전시 맥락에 맞추는 방법 밖에는 없을 것 같아요. 또 뉴프로덕션이라는 의미에서는 얼마 동안 거주 기간을 만들어 놓고 거기서 주제와 연계된 작가주의를 끌어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어쨌든 비엔날레가 미술관에서 보여주는 것과는 다른 신선한 무엇이 분명히 있기는 해요. 비엔날레가 무용하지는 않다는 거죠. 10년간의 기간 동안 관객들의 기대감이 높아진 측면도 있어요.

이정우: 버시바우 주한미대사를 광주에 내려오게 해놓고는 반미예술과 반미시위대를 마주하게 만든 것은 좀 심하긴 했어요. 사실 여러 부작용을 각오한 채 대한민국의 국민들과의 접촉을 늘리며 최선을 다하는 버시바우 부부에겐 박수를 보내야 마땅하거든요? 어떤 주한대사 부부도 이렇게 열심인 적은 없었어요. 한국에서 현지인들과의 접촉을 극도로 꺼리는 대다수의 주한외교관 가족들에게 역시 적극적인 사회 참여 활동은 좋지 않다는 확신을 재확인하는 계기가 되지는 말았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예술로건 시위로건 정치적 입장을 표명하는 것은 자유지만, 상식선에서 기본적인 외교적 예의는 지켰으면 좋겠어요. 버시바우는 역대 미대사 가운데 가장 힘센 중량급 인사인데, 반한 감정을 품게 만들면 한국에 이로울 게 하나 없어요. 게다가 그는 유태인으로서 과거 소비에트 지역에서 차별받는 유태 동포들의 미국 이주를 돕는 등 약자의 권익에 앞장서 온 사람이기도 해요.

art: 우훙이 큐레이팅한 1섹션은 어떻게 보셨나요?

이정우: 몇몇 좋은 작품들이 있지만, 전시 자체는 기대 이하죠. 시작부터 불상들이 나오면서 아시아인의 신경을 확 긁는다고나 할까요. 특히 마이클 주의 작품은 아주 민망한 맥락의 작품이라. 솔직히 그 작품에 대상을 주는 건 너무하지 않나요? 옛날에 베니스에서 토우 만들어서 서양인들에게 상 받고 그랬으면 됐지…

최정화: 아, 전수천?

이정우: 꼭 우리 스스로까지 오리엔탈리즘 작업에다가 상까지 줘야하나 싶어요. 총감독에게 충성을 다한 작가에 대한 포상 같아 보여서 진실성이 의심스럽기도 하고. 게다가 뉴프로덕션도 아니죠? 불상만 간다라 양식의 불상에서 백제의 반가사유상으로 바꾼…


김선정: 그게 비엔날레를 위해 새로 만들어진 게 아니라, 기존 작품을 가져온 거잖아요? Asia society 전시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 작품을 좋아 했어요. 그런데 그게 context가 바뀌고 한국에 오게 되니까, 이상하게 보이는 것 같아요.

art: 마이클 주의 작품도 불상만 바꿨지, 구작이고 송동도 마찬가지고요.

이정우: 송동의 작업은 그래도 좋은 작업이에요. 이번에 전시 될 때 수집품들이 한눈에 들어오도록 스펙타클하게 디스플레이 되지 못했다는 게 좀 아쉽긴 하지만. 그리고 뉴프로덕션과 구작을 어디서도 구별해서 리뷰하지 않는 건… 아직 우리나라에 뉴프로덕션의 중요성이나 가치에 대한 이해가 없다는 점을 여실히 보여줘요. 예전에 제1회 미디어시티서울이 크게 많이 비판받은 것도 구작들을 모아놓고 비엔날레라고 우겼기 때문이잖아요? 비엔날레는 1회성 전시인데 뉴프로덕션은 시도하지도 않고, 구작들을 모아놓는 것. 무슨 소용이겠어요? 게다가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들여서.

김선정: 이번 광주비엔날레를 보면, institution의 역할을 비엔날레가 가져가서 하고 있는 거거든요. 그럴 거면 왜 비엔날레를 하냐는 거죠. 한 번 쓰고 버리는 돈이 너무 아깝다는 거죠. 그 돈으로 미술관에서 컬렉션을 했으면 했어요. 예산이 있어서 하는 건 좋은데, 그 돈이 그렇게 쓰고 버리는 돈이 되니까 문제에요. 우리가 작품을 사는 것도 아니고요.

이정우: 제1회 미디어시티서울의 예산이나 광주의 예산으로 작품들을 사 모았으면 벌써 국제적으로 대단한 미술관 콜렉션이 만들어졌을 겁니다.

art: 부산 비엔날레는 신작이 75퍼센트라고 하더라고요. 오히려 부산이 예산이 적은데도, 신작을 알뜰하게 한 것 같아요. 광주는 신작이 왜 이렇게 적은 거죠? 예산은 훨씬 많은데 말이죠.

이정우: 광주의 본 전시 예산은 엄청 작잖아요. 도대체 어디로 돈이 다 가는지 신기해요.

art: 최정화 작가의 작품도 아라리오에서 구입하는 걸로 하고 한 것이라면서요.

최정화: 전혀 남기는 게 없는 전시를 한다는 것은 안타까운 것 같네요.

이정우: 좋은 작품은 반드시 뮤지엄 컬렉션이 돼야 하는데. 작가가 전성기가 그렇게 긴 것도 아닌데, 오래오래 남을 수 있는 작업에 에너지를 팍팍 집중해서 쓸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줘야 하는데, 그게 비엔날레 투어를 통해서 그냥 허공으로 날아가 버린다는 게 안타까워요. 그런 면에서 비엔날레는 기록이 참 중요해요.
광주의 경우 기록실에 기록이 쌓여 있는데, 전문적인 아카이비스트가 없어서 정리가 안 되어 있어요. 카셀도쿠멘타 등 다른 비엔날레들과 아카이브의 기록을 공유하기로 체결은 맺었다는데, 문제는 정리가 안 되서 내가 뭘 가지고 있는지 내가 모르는데 어떻게 뭘 공유하겠어요?

김선정: 그걸 가지고 있으면서 또 계속 재생산을 해야 하지요. 국립현대미술관은 원형 전시관(국내의 소장품을 보여주는 전시관)만 만들어 놓고, 거의 10-20년 동안 손대지 않고 컬렉션도 바꾸지 않고 있다는 건데,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art: 국립현대미술관에서 비엔날레를 하면 딱 이겠네요.

최정화: 그럼요, 그런 거에요.


이정우: 장소 얘기 말인데, 비엔날레를 가장 해 보고 싶은 곳이, 첫째는 평양이고요, 둘째는 세운상가입니다. 세운상가 지하에 방공호 있잖아요, 일제시대에 만든 게 남아있거든요. 거기에서 미디어시티서울비엔날레의 특별전을 해봤으면 좋겠어요. 아니면 기념 레이브파티라도 거기서 봤으면…

김선정: 또, 비엔날레라는 게 한 도시에서 계속 열릴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도 들어요. 만약 페스티발이라면, 한 도시에서 해도 되지만. 돌아다니면서 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요. 올림픽처럼.

이정우: 그런데 광주비엔날레에는 노조가 있어서 다른 도시론 못 갈걸요? 세계적으로 노조가 있는 비엔날레는 광주밖에 없을 거예요.

김정헌: 비엔날레 작품만 컬렉션하는 사람이 없을까?

이정우: 베니스비엔날레에서 전시한 초대형작품을 아트바젤에서 팔고 사는 경우가 있기는 하죠. 너무 큰 작업은 값이나 크기 때문에 역시 기업이나 시정부, 지방정부에서 사야 하는데…  돈이 없는 작은 지방 도시의 경우, 일단 작품은 착수금으로 설치하고 남은 잔금은 시민들이 펀드레이징을 통해서 몇 년에 걸쳐 지불해나가는 경우도 있더라구요.

김정헌: 우리나라의 경우도 시장과의 연결을 좀 생각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너무 일회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만 끝나고, 작가가 소모품처럼 되어서는 안 되지요. 앞으로 비엔날레에서 시장성의 확보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한 과제가 될꺼에요.

이정우: 광주비엔날레가 소형아트페어를 시도한다는 건 다소 웃기는 발상이었지만, 사전시장으로서 공공미술품을 팔거나 할 수는 있을 것 같아요. 공공미술을 전시로 제안하고, 다른 지자체에서 와서 좋은 아이디어를 사 간다거나, 이런 정도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부산영화제는 사전 시장인 PPP를 성공시켰듯이 프로젝트 마켓을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김정헌: 지금 우리나라 수준에서는 아직 좀 힘들 거 같아요.

최정화: 그럼요, 힘들죠.

이정우: 네, 그래요. 한국에서 퍼블릭 아트하려면 아는 구청장이라도 하나 있어야죠. 누구처럼 형님이 구청장을 하거나.

최정화: 제가 한국에서 퍼블릭 아트 한 게 거의 없다니까요. 리옹비엔날레에서 제작품을 사고 싶어서 스폰서를 받아 한국에 있는 컬렉터에게 돈을 지불한 적이 있어요. 요코하마에서도 마찬가지 경우가 있었고요. 아까 나왔던 주제지만, 바깥에 남는 Public art용 작품은 미술관용 작품들과 다르게 따로 있거든요. 그래서 관객들의 반응이 좋으면 시에서 그걸 컬렉션 해 주더라고요. 리버풀 같은 경우, 처음 저를 초대를 할 때부터 제가 야외작가, Public작가라는 것을 아니까, 와서 장소를 직접 고르라고 해요. 그래서 골라서 이미지를 예산과 같이 내면, 그 중에서 이렇게 하자, 하고는 돈을 대줘요. 돈이 모자라면 스폰서를 구해 주고. 부산과 광주에서도 그런 부분들이 있었어야 해요. 

김정헌: 지금 제가 연기 공주의 새로운 행정도시 프로젝트에 참가하고 있어요. 지금 거기에서 도시 개발계획이 진행되는데, 아예 처음부터 공공미술과 관련된 마스터플랜을 만들어서, 관계자들을 다 묶고 건축주의 재원을 끌어들여서 작가들과 결합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공공미술 축제를 해 보고 싶어요. 비엔날레에서도 이러한 도시의 공공적 공간이라는 측면에 개입 하면 좋겠죠. 새로운 도시를 개발하는 단계에서 공공미술을 끌어들이고, 그를 통해 시장성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최정화: 부산비엔날레 파빌롱의 경우, SK와 함께 한 것 그 자체가 아방가르드한 작품이에요. 그런데 그건 기획자의 의도도 아니었고, 아무도 그렇게 안 봐요. 저는 이런 측면이 한국적 특성이 될 수 있다고 생각 하거든요. 예전의 황학동 동묘, 남대문의 파워 등 어처구니없는 소재들처럼, 기획전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그렇게 되는 것. 그런 게 비엔날레가 노려야 할 것들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식의 잔치를 벌여야 하는 데, 다 남의 잔치만 하고 있으니까. 그게 우리나라 비엔날레의 문제라고 보거든요. 남의 눈치 보는 잔치.

이정우: 그러니까요. 왜 그렇게 백인들 눈치를 보는지 모르겠어요.

김정헌: 외국의 비엔날레를 알게든 모르게든 어쨌거나 모방을 해야 하는 거니까요. 그런데 아시아나 기타 비 서구 지역에서 독자적으로 성공한 비엔날레는 없나요?

최정화: 음 그런데,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성공한 케이스가 후쿠오카트리엔날레 있잖아요. 걔네의 경우 20-30년 됐어요. 그 사람들이, 자기들은 백인 눈치 하나도 안 봤고, 비엔날레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부터 자신들의 행사가 있었다고, 자신들은 자기가 하고 싶어하는 행사를 했다고 말해요. 정말로 백인들에 대한 의식 없이 자기들끼리 했던 행사들이에요. 그런데 그게 지금 아시아의 창구가 되어 있죠.

이정우: 그런데 또, 백인 눈치를 보려면 확실히 잘 봐야죠. 백인들이 자존심 상할 정도로 잘. 이스탄불비엔날레가 그래서 성공한 것 아니에요. 한 때 이스탄불은 제3세계만 할 수 있는 전시로 기대 이상의 성과를 거뒀잖아요. 결국은 광주 몫의 토큰을 1990년대 후반에 이스탄불이 가져갔던 셈이죠.

최정화: 대한민국이 엄청나게 문화건설주의잖아요. 축제 제조국가고. 문화건설주의와 축제제조주의를 똑같이 또 만들어 낸 게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거든요. 그러니 뭐 어떻게 하겠어요.

art: 눈치를 본다는 주체는 총감독인가요, 작가인가요?

이정우: 모든 사람이 그렇지요. 베니스비엔날레의 한국관을 보도하는 국내 일간지 기자들의 경향을 보자구요. 자기들이 봤을 때 보고 잘했다 싶으면 그냥 ‘잘했다’고 보도하면 되는 건데, 꼭 백인들이 뭐라고 했는지 들어보고 기사를 쓰잖아요. 하다못해 국내에서 무슨 떡페스티벌을 해도 방송기자들이 꼭 백인을 찾아내서 카메라를 디밀잖아요. 문제는 탈식민주의를 신봉하는 작가들도 그런다는 거예요. 해외에서 백인큐레이터들이 오면 다들 참 친절해져요.

최정화: 그게 잔치의 의미잖아요. 판이라는 게 그런 거고. 다들 너무 잘하려고 해서 문제인건데, 그냥 망친 전시를 하면 되거든요. 그 돈 가지고 잘 망쳤어봐. 잘 망치면, 시선이 집중되죠.

이정우: 그래서 미디어시티서울의 첫 회가 가끔 그리워요. 그 때는 전시를 보고 화가 났지만, 돌이켜 놓고 보면 엄청 재밌어요. 검정 수트를 입은 수많은 남성경호요원들이 전시장을 가득 채운 가운데, 교과서에나 볼 수 있는 뉴미디어아트의 역사적 작품들을 한자리에 다 모아놨고… 아무도 읽지 않는 두꺼운 도록에는 이건희 회장이 구속될 뻔했다는 국내 일간지엔 보도도 되지 않은 비밀 이야기가 렘 콜하스와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의 인터뷰로 실려있고… 지금 보니 그게 참 잘 망친 전치였다 싶어요.  

art: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의 경우, 어느 해가 가장 괜찮았다고 할 수 있을까요? 광주의 경우 올해 10년을 넘겼지 않았습니까?

이정우: 뭐니뭐니해도 광주는 첫 회죠.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게, 언제나 줄을 맞춰서 착착착 걸어 다니던 미녀 도우미들과 그 어마어마하게 많은 관객들. 특히 꽃놀이 가듯 관광버스를 타고 집단으로 구경 오신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그리워요. 막걸리를 한잔씩들 하시고는 막 신나게 떠들면서 관람을 하시다가 설치 작품에서 사람 소리라도 나면, “어, 거기 누구여, 누가 거기서 사람을 놀래켜?” 하고는 막 즐거워하는 거예요.

김정헌: 에피소드가 많았죠. 현대미술이 일반대중과 만나는 여러 가지 방식을 보여줬죠.


이정우: 아, 너무 아름다운 충격이었어요. 마당에 왜 장터가 있었잖아요? 그래서 전시를 보고 나온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귀신 집 같애, 이게 뭐래” 그러더니 다들 마당에 모여서 동그랗게 원을 그리곤 고속버스용 댄스 뽕짝에 맞춰서 춤판을 벌이더라구요. 그걸 보고 충격을 받은 외국 작가들이 너무들 좋아했는데… 그런데 또 주최측이 와서 그걸 못하게 하는 거예요. 전 그런 이상한 에너지가 광주의 장점이 됐어야 했다고 봐요. 어차피 제3세계에서 열리는 행사가 카셀이나 베니스, 휘트니비엔날레와 경쟁하는 건 아니거든요. 그런데 11년이 지나고 보니… 지금의 광주엔 너무 활력이 부족해요.

최정화: 어디에서나 말끔한 척하려고 하고, 세련된 척하려고 하고.

art: 그런 의미에서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상당히 세련된 척하려고 했던 것 같아요.

최정화: 광주비엔날레가 1회처럼 계속 지속됐으면, 외국에서도 ‘그 나라 잔치가 있더라.’
하는 소리 듣죠. 그게 아니고 ‘미술’로 딱 떨어지니까. 저기가면 이상하게 망친 비엔날레가 있다더라. 이런 소리 들으면 되죠.

이정우: 정말 아무나 와서 자기의견 개진하는 이상한 비엔날레. 이런 소리 들으면 되는 거거든요. 그리고 뭐 작품 좀 망가져도 괜찮아요. 무식한 관객들이 막 만져서 작품 망가지는 거를 애초에 각오하고 오게 만들면 되거든요.

최정화: 정체성이 없는 게 문제에요. 아이덴티티.

art: 광주가 첫 회 이후 계속해서 하랄트 제만이니, 누구니 외국의 스타 큐레이터들을 모셔오고 하면서 정체성을 찾을 기회를 더 잃었다고 볼 수 있는 걸까요?

최정화: 그러니까, 못난 사람은 못난 대로 살아야 하는 거잖아요. 근데, 그런 거 자꾸 가리는 게 이상하죠. 서울에도 청계천에 간판 없앤 거. 간판 색깔 규정하고 하는 게 이거랑 똑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한 간판회사에서 모조리 다 디자인했다면서요. 원래 있던 재밌던 것들, 손으로 붙이고 했던 게 다 없어졌어요. 그게 오히려 한국, 서울의 지금 모습인데.

이정우: 하랄트 제만은 광주에서 아무 것도 모르는 학생들과도 일일이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일을 했다는데 무슨 말씀을요. 구경꾼이었던 제가 본 그는 스타 행세를 하지 않았어요. 오프닝에서 호들갑 떨며 잘 나가는 척하는 작가와 큐레이터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던 모습이 기억에 생생한데요.

김정헌: 이번에 올림픽 공원 안에 페이퍼테이너뮤지엄을 가 봤는데, 컨테이너박스를 설치하고 종이 기둥을 세워 놓은 것까지는 좋았어요. 그런데 작품들을 모두 똑같은 규격에 똑같은 액자에 해서 걸어놓았더라고요. 아직도 그런 좋은 프로젝트의 일 부분에 그러한 규격화나 획일화된 기획이 끼워 있는 걸 보고 놀냈어요.

김선정: 부산비엔날레는 작지만 나름대로 열심히 했었던 것 같아요. 규모가 커지면서 올해 같은 경우 전시가 무엇을 이야기 하려는지 잘 알 수 없게 되어 버렸어요. 제는 cafe2의 젊은 작가들과 젊은 큐레이터들의 전시는 뭔가 열기가 느껴져서 좋았어요.

이정우: 사실 그간 광주비엔날레가 하도 평판이 안 좋아서 부산비엔날레가 어부지리로 좀 좋은 평가를 받아왔어요. (웃음) 물론 부산 비엔날레가 지금까지 좋지 않은 조건에서 잘해온 것은 사실이에요. 특히 PICAF 시절, 그러니까 2000년에 이영철 씨가 로자 마르티네즈와 참 좋은 전시를 만들었더랬어요. 제목이 <고도를 떠나며>였죠. 시간과 예산의 제약 탓에 적잖은 작업들이 이스탄불비엔날레와 겹치긴 했지만… 지금도 보면 그때 공간 해석해놓은 게 여전히 경향으로 남아있는 걸 볼 수 있어요. 이번에 오노레 도의 작품이 들어간 가리는 늘 그런 식으로 해석되고 있거든요. 선례란 중요한 것 같아요. 아무튼 그런 노력들이 쌓여서 국제적으로도 좋게 평가되고 있는 것이겠죠. 올해 해외에 나갔을 때, 부산비엔날레와 박만우 씨에 대한 질문을 참 많이 받았어요. 반면 광주에 대해 질문을 받아본 적은 없었어요. 벌써 낙인이 팍 찍힌 거죠.

김선정: 저는 비엔날레 시스템 얘기를 좀 했으면 좋겠는데요. 항상 쓰고 버리고 하니까 쌓이는 게 없는데, 미술관에서 구조를 만든 후 그 구조를 매번 비엔날레에서 이용하였으면 좋겠는데 한다던가 하는 게 됐으면 좋겠어요.

이정우: 광주비엔날레 같은 경우 너무 심한 하도급 체제라는 것도 문제에요. 총감독은 재단의 하청을 받고, 그 다음에 커미셔너가 자기 색깔에 맞는 어시스턴트 큐레이터들과 작가들에게 하청을 주는 셈이잖아요. 그러니까 너무 사공이 많고 복잡해요. 전시에서 한 사람의 색깔이 쫙 펼쳐지는 게 아니니까, 너무 ‘백화점 식’이 되기 쉬워요.

art: 그래서 총감독 체제의 경우, 밑에 있는 큐레이터들을 어떻게 잘 조직하느냐의 문제가 중요하게 되는데, 이번 비엔날레의 경우 큐레이터의 구성이 좀 특이했잖아요? 광주에서는 우훙의 경우 전문큐레이터가 아니라 미술사가라고 보는 것이 맞고. 이번엔 전시별로 큐레이터에 대한 이야기를 해 볼까요?

이정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탈식민주의를 이야기 할 때 왜 늘 발칸이나 중동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 건가요? 한국은 예전에 일본의 식민지였으니까 당연히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이야기가 주류를 이뤄야 할 것 같은데, 이상하게 일본과 한국의 관계를 소재로 작업을 하는 작가는 많지 않아요. 발칸은 정말 뜬금없지 않아요? 백지숙 씨와 이영철 씨가 거의 동시에 전시를 만들더니, 이젠 지속적으로 발칸 소식을 듣게 된 것 같아요. 우리가 프랑스 인도 아닌데, 참 이상해요. 얼마 전에 어떤 젊은 예비 작가의 블로그를 보니까, 자기는 가짜 탈식민주의 작업에 신물이 나서, 제대로 일본을 공부해서 진짜 탈식민의 주제를 다뤄 보겠다고 일본에 유학을 가기로 마음을 먹었다고 적어놨더라구요. 그런데 그런 그도 이렇게 적어 놨어요.
“이런 탈식민주의의 붐은 유럽만 거의 포화상태? 아니다. 까놓고 말해, 재작년 광주 비엔날레 때도 솔직히 좀 지겨울 정도로 사방에서 징징대고 있다는 생각까지 들었었더란 말이지. (전시를 다 보고 나서, 솔직히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So What!??? 정말이지 그래서 어쩌라고??? 예술의 하는 역할이 대체 뭐냐고-회의하게 되는 그런 전시는 싫어.)”
참 똑똑하고 장한 분이에요.

김정헌: 광주비엔날레 1회와 이번 부산비엔날레에 참가했는데, 두 비엔날레의 움직임이 너무 달랐어요. 광주비엔날레는 전시준비과정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여서 매우 복잡하다고 생각했는데, 이번 부산비엔날레는 작가선정이 되었다는 이야기만 들었고 그 후로 답답할 정도로 소식이 없더군요. 큐레이터의 역할이 다른 것 같아요. 큐레이터의 스타일일 수도 있지만. 어쨌든 부산이 작업하기는 편했어요.

이정우: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탈식민지 주제로 작업하는 작가들은, 우리나라와 일본 이야기를 하지 않고 발칸 이야기를 하는 건가요? 우리가 프랑스도 아니고.

김선정: 그게 사실 미술사가들 사이에서도 아직 정리는 안 되어 있는데, 연구가 필요한 부분이에요. 전시로 이야기를 해야 할 부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은 들어요.

이정우: 우리나라도 87년 이후 미술을 정리해 나갈 필요가 있지요.

김선정: 일본과의 관계에 있어서도요. 전후 한국미술에 영향을 준 나라가 일본인데, 일본과의 관RP는 연구가 거의 없어요. 최근 작가들은 미국과의 관계에서만 연구를 하는데 이부분을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연구해야 할 것 같아요.

이정우: 탈식민주의 연구 차원의 근대미술사가 논문으로만 다뤄질 뿐, 구체적 현대미술가의 작품으로는 이야기가 안되는 게, 갑갑합니다. 일본과의 관계 속에서 탈식민주의의 주제를 찾으면 정말 할 수 있는 게 많은데.

art: 이제 좀 더 구체적인 이야기도 해 볼까요?

이정우: 이번 광주의 경우 한국작가들에게서 두드러지는 것이, 특정 지역을 연구 대상으로 삼아서 다큐멘테이션 작업을 도출해낸 것이 많았다는 거죠?

최정화: 남 시켜서 하는 것들? 그게 다 우두머리가 있는 예술들이에요.

이정우: 1997년 제2회 광주비엔날레에 참가했던, 민중미술 화가 신지철이 이번에 다시 광주에 등장했다는 게 또 특기할만했어요. 이 작가가 한국에서는 거의 최초로 특정 지역을 주제 삼아 각종 기록과 통계 자료로 작업을 만들었던 거잖아요? 주제면에서는 급진적이었지만, 형식면에서는 꽤 보수적이었던 민중미술이 새로운 단계로 나가는 데 그의 시도가 꽤 큰 자양분이 된 셈이죠. 플라잉시티나 믹스드라이스나 신지철의 옛작업과의 연관을 생각해볼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번 전시에서 신지철이 보여준 방법론이 옛날과 거의 똑같다는 게 안타까웠어요. 오히려 옛작업이 더 좋았으니까… 사실 1997년 당시에 조금만 더 밀어붙이면 정말 대단한 게 나오겠다 싶었는데, 한참 쉬다가 다시 나타난 작가에게선 옛모습만 보이니 참… 너무 마음이 아팠어요. 속상하더라고요.
아참, 이 이야긴 꼭 해야겠어요. 독일/노르웨이에서 온 듀오 마이클 엘름그린과 잉가 드라그세트의 2005년작, <그늘진 삶의 빛(The Brightness of Shady Lives)>이 다소 선정적인 게이 이미지들을 다뤘다는 이유로 주최 측에 의해 관람을 통제 당하는 수모를 겪고 있는데요, 이는 매우 시대착오적이고 소수자 차별적인 "검열"의 부활로,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떻게 아직도 이런 일이 생길 수 있는지. 그러려면 아예 부르질 말던가요. 작가 몰래, 관람객이 들어가서 구경하지 못하도록 금줄 쳐놓는다는 건 말도 안 되는 반칙이에요.

art: 여성전용공간을 작품 컨셉으로 한 임민욱씨 작품은 남성이 못 들어가게 하기도 했죠. 김홍희씨가 페미니즘이라고 치부할 정도로, 기존의 임민욱씨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단순한 작품이었는데요. 작가 본인은 처음 비엔날레에 나오면서, 작품이 눈에 띌 수 있게 하는, 작가로서의 전략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스펙터클해야 한다거나 전략적이라거나 하는, ‘비엔날레용’ 작품들이 존재한다고 볼 수 있을까요?

최정화: 호노레도 같은 경우가 딱 비엔날레용이죠. 뭔가 좋은 것 같으면서 여기저기.

이정우: 비엔날레용 작업도 열심히 잘 해놓으면 감동이긴 해요. 특히 이번에 쑤빙이 이름값과 달리 아주 열심히 작업을 해놔서 놀랐어요. 어쨌든 신작이구요. 이우환 선생이 벽에 자신의 이니셜 작업인 점을 찍어놓은 것도 멋졌어요. 좀 더 대형 작업이었더라면 더 좋았겠지만… 멜릭 오하니언의 <7분전>은 정말 멋진 아이디어였는데, 막판 폭발 이후 장면에서 좀 지나치게 멋을 부렸더라구요. 그래도 정말 웰 메이드 비디오 작업이어서 좋았어요. 폭발 장면에선 소름이 쫙 돋았으니까. 라우라 호렐리의 <상상 장소 표상>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운 오렌지 혁명에 리얼리티를 부여하는 아주 재밌는 기록 작업이었어요. 책자를 성실히 한국어로 번역해 설치해놓은 성실한 자세도 좋았어요. 로니 반 브루멜렌이 국경을 촬영한 영상작업도 좋았는데, 특히 <공식 경로(The Formal Trajectory)>란 제작일지가 인상적이었어요. 정말 철두철미한 작업이더군요. 김홍석의 방도 흥미로웠는데, 특히 수퍼플렉스의 작품을 촬영해 만든 작품의 설치를 반강제해낸 큐레이터에게 화가 나서 “크리스티나는 수퍼플랙스를 좋아한대요”라고 쓴 건 정말 웃겼어요.

art: 이번 광주비엔날레가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볼거리가 없다’는 거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보통 사람들이 비엔날레 하면 ‘볼거리’를 많이 떠올리게 되잖아요. 저희 같은 경우 잡지이다 보니 사진 찍을 때 그런 측면이 많이 드러나요. 사진발이 잘 안 받는다는 거죠.

최정화: 연출의 부재가 제일 문제였다고 생각해요. 나쁘게 말하면 디스플레이, 좋게 말하면 연출. 기획자가 자기의 것이 어떻게 보여져야 한다는 기준이 있거든요. 그게 없이 흔들리면……. 스펙타클, 중요하죠. 굉장히. 나는 그걸로 먹고사는데.

이정우: 그런 면에서는 부산비엔날레에 요트장의 카페 2가 연출이 잘되어 있었어요. 작품보다는 연출이 돋보였어요.

이정우: 그런 면에서는 부산비엔날레에 요트장의 카페2가 연출이 잘 됐어요. ‘사진빨’도 잘 받을 걸요? 작품보다는 연출이 돋보였죠. 아까 최정화 씨에게 어떤 큐레이터가 이랬다죠? “좋은 전시처럼 보이네-” 연출만 잘 됐다는 건 결코 칭찬이 아니죠.

최정화: 저는 까페2를 보는데, 요즘 유행하는 것들의 뒷다리 짚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 아무것도 없어요. 큐레이터 본인들은 만족한다고 하는데, 제가 웃기지 말라고 했죠.

이정우: 그런 면에서는 요즘 큐레이터들이 호연지기가 없어요. 하랄트 제만처럼, ‘내가 싹쓸이 할 거야!’이런 거요. 근성은 없이 다들 틈새 마케팅하느라 바빠요. ‘내가 정말 무엇을 해야 하는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보다는 ‘남들이 저쪽 땅을 차지했으니까 나는 요기 빈틈을 노려서 사유화해야지-’ 하는 식이에요. 헛똑똑이들인거죠.

최정화: 생존전략. 야생성이 없지요. 그게 지금까지의 프로세스고, 앞으로도 이게 문제가 돼요.

이정우: 작가들도 막가파가 있어야 하는데, 한국작가들마저 자꾸 유럽작가들 따라 개념적인 척하면서, 정치적이고 훈계적인 메시지를 담아놓곤 하잖아요.

최정화: 이런 얘기하기 뭣 하지만, 원래 한국미술이 막가파의 원조 아니었어요? 전 세계적으로. 그 아름다운 걸 누가 이렇게 미화시키고. 추하게 만들고.

이정우: 그래도 좋은 작업 만날 땐, 행복해요. 현대미술이 어차피 10타수 1안타만 쳐줘도 보는 입장에선 포기하지 않게 되거든요. 작품 10개 가운데 하나만 ‘진짜’면 발품 팔아 전시 본 보람은 있다는 거죠. 이번 부산에서 만난 아흘람 쉬블리의 팔레스타인 소년병들의 사진 작업은 아주 섬뜩할 정도로 힘 있는 다큐멘터리였어요. 다큐로 좋은 작업을 만나기 참 어려운데…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가브리엘 레스터가 한국의 인터넷에서 찾은 동영상과 스틸 사진으로 만든 이상한 스토리의 비디오 영화도 재밌더군요. 반면 비드야 갸스탈동은 최근 주목 받고 있는 꽤 좋은 작가긴 한데, 입체 작업이 오지 않고 사진 드로잉 소품과 비디오 작업만 와서 아쉬웠어요. 온천천의 경우는… 공간이 참 좋더군요. 작가의 작품 같지는 않은데, 동양화를 그려놓은 그래피티가 정말 좋았어요. 그 동네 그래피티가 참 대단하더군요. 독특한 지역색이 있어요. 미국 흉내 내는 서울의 그래피티보다 훨씬 좋더군요.    

art: 전반적으로 한국 미술이나, 전시 큐레이터들의 취향이나, 서로 비슷비슷한 것들이 모방도 하고 그런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부산비엔날레의 경우도 박이소를 시작으로 하잖아요.

최정화: 그래요. 그게 슬퍼요. 박이소 자체도 희박해져가고. 너무 미끈미끈해져서 미끌어져가.

김선정: 이번 박이소씨 작품 설치는 이상했어요. 제 기억에 이 작품들이 이렇게 만들어져 있지 않았는데요. 전시를 할 때 박이소씨 작업을 제대로 다시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이정우: 솔직히 박이소는 자꾸 전시에 굴리지 말고, 잘된 카탈로그 레지오네(전집)이나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어요. 어차피 박이소가 한국의 펠릭스 곤잘레스 토레스가 되는 건 기정사실인 것 같은데, 곤잘레스 토레스는 친구들이 모여서 좋은 책을 쑥쑥 잘 뽑아내요. 전시 관리도 잘되는 편이고. 그렇게 친구들 모여서 서로 도우면 좀 좋아요. 싸우시지들 좀 말고.

김정헌: 박이소는 사후에 이상한 신화화의 과정을 겪고 있군요. 저는 이번 비엔날레에 참가하면서 늙은 사람으로서 혼돈을 겪고 있는 것 같아요. 저는 그저 현대미술을 통해서 일상의 삶을 담아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비엔날레에 들어오면, 아까 스펙타클 얘기도 나오고 막가파 얘기도 나오고 했는데, 내가 여기에 끼어도 되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옆에서 구경만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비엔날레가 어쨌든 외국에 있는 것과 비슷하게 나가서는 안 될 것 같고요. 최정화 씨가 말하는 막가파라는게 확실히 머리에 들어오진 않지만요. 어쨌든 차별화된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데 서구현대미술과 비슷하게 되어서는 안 되겠죠.

art: 차별화라는 건 모든 총감독님들이 하시는 말씀인데요, 그게 참 어려운 일인 것 같아요.

이정우: 전 비엔날레에 어르신들, 그러니까 경험이 풍부한 고연령의 작가분들이 참여하는 게 대단히 좋은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아쉬운 건, 우리나라에서 현재 ‘어른’들이라고 하면 대개가 한 쪽은 민중미술이고 한 쪽은 미니멀리스트들이잖아요. 민중미술 쪽에서도 그렇고 미니멀리즘 쪽에서도 그렇고, 한 두 분이 과감하게 나서서 대작을 확 질러주셨으면 좋겠어요. 이번에도 민중미술의 1세대 작가 중 한 분이 나서서 광주비엔날레에 보란 듯 대작을 확 때려줬으면 좋았을 겁니다. 문화혁명 세대인 쑤빙 좀 보세요.

김정헌: 나이 든 작가 중에서 에너지가 있는 사람을 끌어주는 것도 중요해요. 사실 내 주위에는 비엔날레 참여하는 사람들이 없거든. 내 주위의 나이 먹은 사람들은 내가 부산비엔날레 참가한다고 하면 뭔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어요. 그래서 나이 든 사람이 비엔날레 하려면 소외감을 느끼기 쉬워요. 비엔날레가 젊은 사람들이 하는 판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그래서 나이 든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하기는 힘든 건데. 유능한 작가들을 좀 폭넓게 포함시키려는 노력도 중요한거죠. 아까 말했던 비엔날레의 정치적 특성 때문에, 막가기가 힘든 측면이 있어요. 큐레이터들이나 작가들이 막가고 싶은데도, 그걸 지역성이 꽉 붙잡고 있는 거죠. 그럴 때 나이 든 사람들이 그런 걸 깨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상처 입은 걸 그대로 드러내야죠. 정치적인 걸 가지고 있으면서 없는 척 하면서, 백인들 눈치 보니 문제죠.

이정우: 전 전시도 좀 노골적이었으면 좋겠어요. 한 섹션만 딱 ‘전라도의 상처’ 이렇게 강하게 가면 좀 어때요. 솔직히 상처 입고 트라우마가 있는 건 어쩔 수 없는 건데. 수면 아래로만 정치적인 것들이 영향력을 미치고 있으니까… 그런 면에서 부산은 참 편한 것 같아요. 부채가 없으니까. 이상한 긴장감도 없고. 특히 그 도시는 전쟁의 참화를 겪지 않은 공간이라서… 그리고 저는 젊은 큐레이터들에게 기회를 좀 줬으면 좋겠어요. 우리나라 젊은 큐레이터들. 최빛나 씨나 김현진 씨나 같은 사람들. 해외에서만 활동하고, 한국에서는 기회가 안 나니 참 기이해요.

김정헌: 기회가 앞으로 올 것 같아요.

이정우: 그나저나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은 누가 하면 좋을까요? 우리 한국인은 해외에서 누굴 불러놓고 감독시키다가 못하면 확 ‘엿 먹이는 거’는 잘 하니까, 미술계도 해외감독을 부르는 거예요. 히딩크처럼 잘하면 칭찬해주고 코엘료처럼 못하면 단번에 내쫒고. (웃음) 사실 광주 총감독직에 뉴욕 뉴뮤지엄의 수석 큐레이터 댄 케머론이 도전했었죠? 다음 정도엔 외국인 총감독도 좋을 것 같은데요.

김선정: 저도 광주 비엔날레를 외국 사람이 하면 어떨까 생각을 했었어요.







2006/10/03 19:29 2006/10/03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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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방문자 
wrote at 2006/10/17 11:18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Say Ho 
wrote at 2006/10/22 16:52
어떻게 공사를 할까유?
비밀방문자 
wrote at 2006/11/06 02:34
관리자만 볼 수 있는 댓글입니다.
Say Ho 
wrote at 2006/11/11 11:45
그럴게요오...
배다현 
wrote at 2010/06/01 14:40
뭐야 너무 길어
Ho 
wrote at 2010/06/10 17:15
편집본은 아트인컬처 2006년 10월호에...
J 
wrote at 2010/08/22 15:52
재미있게 읽었어요- ^^
sayho 
wrote at 2010/08/23 23:16
감사합니다. 4년이 지난 기사인데 ^^;; 지금은 2010년 버전 기사를 만들고 있습니다. 열심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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