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전시는 백남준과 피카소의 쌍두마차가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들의 힘이 이렇게 셀 줄이야. 그것도 생전에 우리나라와 맺은 인연이라야 한 분은 태어나기만 했고, 또 한 분은 하향기에 그린 한국전쟁화가 전부인데 말이죠. 백남준 할아버지는 경기문화재단에서 주최한 〈메모라빌리아〉전부터 국립현대미술관의 특별전, EMAF에서 만날 수 있었지요. 곧 리움에서도 백남준 특별전을 준비한다고요. 또한 피카소 할아버지는 서울시립미술관 외에 갤러리현대 두가헌 전관(5. 17~6. 4)에서도 만날 수 있고, 현대백화점 압구정점에서는 4월 말에 열렸던 기이한 경매에 이어, 이제는 갤러리아트파크가 기획한 드로잉 판화전(5. 20~6. 3 갤러리H)이 열리고 있지요. 하지만 이 할아버지들을 둘러싼 ‘푸닥거리’의 부산함에 비해 우리 미술계에 직접적인 영향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살아남은 사람 위주로 혹은 업계 위주로 열심히 자기 살길을 찾아가는 모습이죠.
사진계, 돌아온 호시절
‘업계’라는 말이 주는 어폐가 좀 있지만, 절대 무시할 수 없는 일이잖아요. 갤러리 업계에서는 중국 작가 열풍이 무섭게 번지는 듯 하구요. 또한 사진처럼 산업과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업계는 한동안 잠시 주춤하나 싶더니 요즘 들어 다시 탄력을 받았나 봅니다. 엘튼 존이 구입했다는 사실이 배병우 작가의 작품 값을 올려놓아서일까요? 매년 여러 사진작가를 불러 모으던 가나아트센터의 포토페스티벌은 올해엔 좀 다른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배병우 작가와 엘거 에서라는 독일 사진작가의 2인전으로 몰아버리는 대범한 선택을 했더군요. 두 사람이 벌이는 페스티벌이라…. 그런가하면 국제갤러리에서도 사진전이 열립니다. 정연두의 개인전이요. 특히 정연두 작가는 지난 아모리쇼에서 새 작업 〈로케이션〉으로 이미 좋은 반응을 얻은 바 있어서, 갤러리 측은 이번 전시 결과를 긍정적으로 전망하고 있다죠. 로댕갤러리에서는 강홍구 작가의 개인전이 열립답니다. 강홍구 작가는 B급 작가로 자처하면서 대중매체에서 가져 온 이미지로 초현실적인 합성 사진을 만들어왔죠. 그런데 ‘B급 작가’가 로댕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여는 상황을 모순으로 봐야 할까요, 예술적 성취를 위한 재치 있는 제스처로 봐야 할까요. 어쨌든 작가는 이미 존재하는 이미지들을 활용해서 디지털 합성시키는 방식을 그대로 취하며 ‘풍경과 놀다’라는 제목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했다고 합니다. 또한 경주 선재미술관에서 오랜만에 전시가 열립니다. 바로 사진작가 주명덕의 개인전입니다. 김선정 씨가 직접 기획에 나선 이번 전시는 1.초기 습작시기 2.다큐멘터리 시기 3.한국미의 탐구 4.풍경사진 5.도시풍경 6.인물 헌정 사진으로 나눠 40여 년의 사진 인생을 정리한다고 합니다. 사진 전시는 계속 이어집니다, 쭈욱~
사진 전문 갤러리로 그동안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나 요셉 슐츠 같이 국외 유명 사진작가의 개인전을 유치해온 갤러리뤼미에르에서 자체적으로 ‘LIPA(Lumiere International Photography Award)’라는 상을 만들었답니다. 그 첫 번째 수상자로 현재 독일에서 활동 중인 윤 리 씨를 선정했어요. 1967년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토마스 루프와 제니스 쿠넬리스에게 사사를 받았다고 합니다. 특히 이번 심사 결과에는 토마스 루프의 추천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입니다. 도대체 어떤 작업이기에 토마스 루프가 꽂혔는지, 루프에게 가서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전시장에서 확인해볼 수밖에요. 또한 대안공간풀에서 ‘2006 새로운 작가’로 선정한 권순관 작가의 개인전이 열립니다. ‘영역으로부터 고립되다’라는 제목으로, 요즘 젊은 작가들에게 자주 이야기되는 ‘일상’과는 다른 초현실적인 도시사진을 보여줍니다. 사진 전시가 진짜 많아요. 덕분에 사진집들은 돈 많이 벌겠어요. 근데 액자 집은 사진집만큼 재미 보기는 어려울 거에요. 디아섹은 액자가 필요 없으니 말이에요.
국내에서 처음 열리는 마크 로스코전
사진이 아무리 좋아져 봤자, 여전히 “그림이 최고!”라고 외치는 분들이 있죠. 제가 그렇다는 건 아닙니다. 직업상 취향을 내세울 수 없는 구보 씨는 닥치는 대로 돌아다니다가 필 꽂히는 작품 만나면 그저 입 벌리고 좋다고 할 뿐이죠. 그런데 한 번은 정말 입을 헤~벌리고 묘한 매력에 취해 홀딱 빠졌던 작품이 있었어요. 리움의 상설전시장에 있는 마크 로스코의 그림이죠. 화집에서 훌렁 훌렁 페이지를 넘겨볼 때는 몰랐는데, 직접 작품을 보니 물감에 무슨 화학 발광 물질이라도 섞었는지, 신비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듯한 것이 그제야 로스코의 진가를 알 수 있더군요. 어쨌든 추상표현주의의 대표 작가인 만큼 작품 구입이나 전시 개최가 어려웠을 텐데, 리움 측에서 워싱턴갤러리의 소장품을 대여해 마크 로스코의 국내 첫 번째 개인전을 유치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전후 미술사에서 추상표현주의와 양대 산맥을 이루던 하이퍼리얼리즘 관련 전시도 열립니다. 미국 작품들과 시차는 좀 있지만 국내에서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극사실주의 계보를 잇는 작가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그.리.다>전입니다. 김홍주 김강용 고영훈 이석주 지석철 이종구 강형구 허양구 송영규 안성하 등 24명의 작가가 참여한다고요. 대개 극사실주의 전시는 시각적 흥미만 불러일으키거나 서구의 극사실주의 이론을 따오기 십상인데, 이번 전시는 한국에서의 극사실주의 미술의 정체성과 그 흐름에 대해 진지하게 짚어보는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사진과 회화를 무 자르듯 댕강 잘라버렸네요. 현대미술에서는 장르 구분이 중요하지 않다고들 하잖아요. 문맥과 이슈만 존재할 뿐이라고. 정말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큐레이터 눈을 믿고 요것조것 함께 두고 보는 기획전도 나름의 재미가 있지 않겠어요? 대개 디자인 전시만 열어왔던 제로원디자인센터에서 야심 차게 준비한 〈선데이 아이스크림〉전에서는 흥미로운 작가 리스트가 눈에 들어오네요. 구병준 권수진 손정림 송주명 에밀고 오정미 정신 조경규 TheJack 지로&호준. 미술 전시에서는 자주 볼 수 없었지만, 영상, 제품 디자인, 일러스트레이션, 음식, 수필 등 각자 독창적인 영역에서 지치지 않고 작업해온 이들과 함께 ‘일요일’로 대변되는 놀이와 여가 문화를 탐색하는 전시입니다. 참, ‘선데이 아이스크림’의 유래를 아시나요? 과거에는 안식일인 일요일에는 금주를 해야 했는데 술을 주문한 손님을 안쓰러워한 한 식당이 아이스크림에 시럽을 올려 제공하여 인기를 끈 데에서 전해졌다고요. 덕수궁미술관에서도 모처럼 재미있는 주제로 기획전을 엽니다. 근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 속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찾아보고, 근대 시기에 발간된 어린이 관련 간행물 등을 함께 전시하죠. 〈근대의 꿈: 아이들의 초상〉전은 어린이를 타깃으로 삼는 상업화랑의 흥미 위주 전시와는 분명히 차별성이 있습니다.
젊은 작가들의 시장성
전시는 아니지만 여러 작가를 모아 놓고, 이색적인 아트페어가 열린다는 곳이 있어 소개해드립니다. 신세계백화점에서 주최하는 〈2006 신세계아트페어 퍼플케익〉입니다. 백화점에서 아트페어를 열어 일반 대중들에게 판매한다고요. 일반인들에 초점을 맞추는 행사인 만큼 낸시랭과 한젬마가 빠질 수 없겠지요. 이 밖에 가수 유나얼의 작품과 이혜영의 브랜드 ‘미싱도로시’의 패션쇼가 구성되어 있군요.
마지막으로 구보 씨가 추천하는 신진 작가 두 분의 개인전을 소개하고 마무리하렵니다. 첫 번째는 김인배 작가입니다. 이미 그룹전에서 몇 번 본 적이 있을 거에요. 동물과 인간을 기묘하게 혼합해 귀여운 외모의 입체 작품을 만드는데, 전시 제목은 작품 이미지에 비해 너무 무겁게 지은 감이 있네요. ‘차원의 경계에 서라’. 또 한 분은 민성식 작가입니다. 실제 눈으로는 한 눈에 볼 수 없는 다각적 구도로 건물을 배치하여 캔버스를 채워나가는데, 넓은 색면과 부감법, 다시 점이 혼재되어 초현실적인 느낌을 줍니다. 이 작가는 그동안 대전에서 활동하셨대요. 서울 입성을 축하합니다. 두 분 모두 사실상 상업갤러리에서 여는 첫 번째 개인전이어서 더욱 기대가 됩니다. 그런데 몇 년 전에 비해 신진 작가들이 좀 힘이 빠진 것 같아요. 소위 말해 ‘튀는’ 작업이 안 보이네요. 알바와 작업을 동시에 해야 할 젊은 작가 여러분, 힘내세요!
art news 2006년 6월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