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 권현정)
“미디어아트의 무한 미학을 펼치겠다”
9월 1일부터 인천 송도 투모로우시티에서 개최될 2010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이하 IN DAF)의 진두지휘를 맡은 노소영 총감독.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한 아트센터나비의 관장이기도 한 그는 “첨단 문화도시로 발돋움하려는 인천시의 강력한 의지를 담아 공간 속에 갇혀 있던 예술 작품을 광장으로 확대해 관람객과 시민에게 멀게 만 느껴지던 미디어아트를 친숙하게 다가가도록 추진할 것”이라면서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남다른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2010 INDAF, 모바일 비전
이번 INDAF는 <모바일 비전: 무한 미학>이라는 주제로 국내외 미디어 아티스트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하는 무한 미학’을 통해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넘어, ‘미래의 예술’을 제안하고자 한다. 관객의 참여로 완성될 수 있는 작품이 주를 이루며, 예술과 산업기술의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컨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노 감독이 그리고 있는 INDAF의 ‘큰 그림’이다. 세부 프로그램은 <모바일 아트> <웨이브> <블러> <공공미술 9경> <센스 센시즈>로 구성되어 강필웅 류병학 허서정 최두은, 유키고 시키타, 짱가가 큐레이터를 맡았다.
사실 INDAF는 인천 경제자유구역의 1단계 사업이 완료되었던 2009년, 시책 사업으로 개최된 인천세계도시축전의 일환으로 열렸던 미술 행사였다. 그러나 올해 송영길 인천시장이 새롭게 부임하며 2009인천세계도시축전을 둘러싸고 불거진 예산 낭비 시비에 대해 재정 감사를 청구하면서 올해의 모든 시 행사가 전면적으로 제동이 걸린 상태. 다행히 기자가 인터뷰하기 바로 전날, 노 감독은 송 시장을 직접 만나 INDAF만은 예정대로 개최하기로 확답을 받아 냈다. 그래서였을까. 노 감독의 표정은 밝고 의욕이 넘쳐 보였다. 물론 인천세계도시축전이 열리지 않아 행사 전체의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유일하게 살아남은 문화 행사이기에 미술계 입장에서 보면 상대적인 집중도는 높아진 셈이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하려면 개방을 통해 내부와 외부가 서로 교류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잖아요. 자기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술과 기술을 융합시켜 화학반응을 일으켜야 하는데 송도가 그런 장소로 적절한 것 같아요. 공항과 항만, 그리고 국제자유무역신도시까지 갖춘 인천에서 새로운 예술 교육과 문화 교류의 발판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난 6월 12일 서울W호텔 내 레스토랑 ‘키친’에서 아트센터나비와 프랑스의 어갱래뱅아트센터가 각각 2010 INDAF와 <뱅뉴메리크>를 앞두고 프리 이벤트로 <Banquet Interactif>를 진행했다. 증강현실 3D기술을 동원해 양국의 거리와 시간차를 뛰어넘어 유명 세프의 요리, 무용, 라이브 퍼포먼스가 어우러졌다. 장맛비가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오세훈 배순훈 백지연 등 각계 인사들이 모여 INDAF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했다.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던 그가 미술관을 운영하고 심지어 세계적 규모의 국제 행사를 맡을 정도로 미술과 밀접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시어머니였던 고 박계희 여사의 영향이 컸다. 고 최종현 SK회장의 부인이었던 박 여사는 미술을 전공한 손꼽히는 컬렉터였을 뿐 아니라, 1984년 워커힐미술관을 개관해 국내 최초로 앤디 워홀의 전시회를 열고 젊은 작가 발굴에도 앞장섰을 만큼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997년 박 여사가 타계하면서 그를 대신해 워커힐미술관을 꾸려 나가기 시작한 노 관장은 박 여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워커힐미술관 15년사》를 펴냈다. 또한 고인의 10주기였던 2007년, 노 관장은 소마미술관에서 <Trace & Grace-한 소장가의 꿈, 길>전을 마련해 박 여사의 컬렉션 중 선별해 뒤샹, 보이스, 칼더 등 주요 작품 80여 점을 전시한 바 있다.
사실 노 관장이 워커힐미술관을 맡기 이전에 미술과 인연을 맺은 계기가 한 번 더 있었다. 미국에서 경영학 경제학을 전공하며 대학원을 다니던 중 서울에 잠깐 들어와 있으면서 대전 엑스포에 통번역 자원 봉사를 했는데 당시 엑스포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오명 전 부총리가 아트&테크놀로지 전시팀장을 맡긴 것. “의욕만 넘쳐 시행착오를 겪었던 행사였지요. 그래도 그 경험을 토대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당시 예술을 전공한 사람은 전혀 없었고, 경제학이나 전자공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재미있는 조직이었어요. 전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바깥에서 보는 입장이 더 익숙하죠.” 사회 구조 안에서 예술을 이해하려는 노 관장의 마인드는 21세기 디지털 혁명 이후 예술과 문화의 문맥과 잘 상응한다.
미디어아트의 발신지, 아트센터나비
‘대통령의 딸’ ‘재벌가의 안방마님’이라는 수식어가 늘 노 관장을 따라다니지만, 그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실험해 보고자 하는 능동적인 도전 의식이 강하다. 2000년 SK사옥 내 개관한 아트센터나비도 마찬가지다. “아트센터나비는 기존 아날로그 미술관이 아닌 디지털 미술관을 표방했습니다. 개관부터 추구했던 것이 기존 미술계의 전략과 약간 달랐어요. 더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고 그냥 다른 것이지요. 20세기의 예술이 걸어 왔던 길과 조금 다른 것을 개척해 보자 해서 시작했는데, 그 개척이 쉽지 않잖아요? 사람들이 이해도 못하고 ‘왜 저러지’ 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그런 대안적인 방향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아트센터나비는 ‘미래의 미술관’이라는 비전 아래 매개자의 역할을 지향한다. 과거의 미술이 보고 읽는 것이었다면, 미래의 미술은 자기 스스로 갖고 보고 느끼고 재창조하는 것이라는 것이 노 관장의 지론이다. 그래서 아트센터나비는 매개자의 역할을 지향하며, 기술이 인간의 문화적 삶에 스며들어 열리는 새로운 창작의 차원에서 ‘기술의 인간화’를 실현하기 위한 과학기술과 인문학, 그리고 예술 사이의 상호 협력을 중개하고자 한다.
아트센터나비에서는 그간 SK이동통신사 매장에서 진행했던 <스펙트럼@TTL>, 싸이월드와 함께 했던 <러브 바이러스>, SK텔레콤 본사 1층 로비에 설치된 전광판 ‘코모’에서 세계적인 디지털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등 기업과 미술의 만남을 끊임없이 주선해 왔다. 또한 2006ISEA에서 <컬처 컨테이너>, 스페인 ARCO에서 <민박 프로젝트>를 개최하는 등 해외에 국내 미디어아트를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탈북자 청소년과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함께 꾸린 <프로젝트 I>, 카이스트 재학생 등 IT 전문가와 예술가 간 산학협동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07년 남산드라마센터에서 진행했던 <p.Art.y>는 그 동안 아트센터나비에서 연구했던 예술적 실험을 페스티벌 형식을 빌어 총체적으로 보여 줬던 행사였다. 전시와 라이브 공연, 워크숍, 영화 상영, 도시 게임, DJ파티 등이 섞여 말 그대로 ‘컬처 리믹스’를 구현한 실험의 난장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아트센터나비에서는 전시는 물론, 교육적 아카데미와 실험적 프로젝트를 활성화시키고 국내외 미디어아트에 대한 방대한 아카이브를 꾸린 국내 유일의 미디어아트의 발신지가 되었다. 올 연말에는 아트센터나비 10년의 역사를 모은 책을 발간, 다가올 10년을 준비할 계획이다. “앞으로 미디어아트의 향방은 크리에이티브 산업 영역으로 보다 깊이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산업의 융합 속에서 우리의 미래, 즉 새로운 예술의 역할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어요. 그 융합의 성과는 직접적으로 드러나거나 물리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겠지만, ‘보이지 않는 변화’야말로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 아닐까요?”
글 | 호경윤 수석기자
art in culture 2010년 8월호 핫피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