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홍희 씨가 12월 19일 경기도미술관의 초대 관장이 됐다. 지난 10월 25일 안산에서 새롭게 문을 연 이후 경기도미술관은 첫 번째 주인을 찾는 데 매우 고심하는 눈치였다. 이종선 경기도박물관장에게 대행을 맡겨뒀던 두 달여 동안 공식적으로 관장을 모집한다는 알림이 두 번이나 났지만, 그 때마다 적임자가 없다는 이유로 관장을 내지 않았다. 결국 경기도미술관의 마지막 선택은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 광주비엔날레의 예술감독 등을 지냈던 김홍희 씨를 특채로 영입하는 것이었다. 6년 전 본지와의 인터뷰 때만 해도, “조직 경험이 없다는 이유로, 미술제도권 인사 때마다 발탁되지 못하는 등 불이익을 많이 당한 것도 사실”이라고 고백했던 그에게 이제 취하지 못한 ‘자리’는 거의 없다. 김홍희 관장은 우리에겐 ‘쌈지스페이스의 안방마님’으로 더 익숙하다. ‘대안공간’이라고 이름 붙인 여타 기관보다, 더욱 ‘대안’스럽게 느껴지던 쌈지스페이스의 정체성을 만들어 놓았던 장본인인 김홍희 관장. 그러던 그가 관(官)에서 운영하는 경기도미술관을 맡는다니 궁합이 잘 맞지 않아 보인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취임 이틀째인 그를 만나보니, 그게 그렇지도 않다는 생각이 든다.
개관한 지 두 달, 밀린 과제가 산더미
art는 김홍희 신임 관장을 인터뷰하기 위해 취임식 바로 다음 날 아침에 경기도미술관으로 향했다. 약속한 시각에 전화를 걸어보니 김 관장은 “미술관 거의 앞에 다 와서 길을 잃었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 15분쯤 지났을까. 직원이 알려준 지름길로 오려다가 오히려 길을 헤맸다는 김 관장은 정신없이 관장실로 들어오면서 인사를 했다. “미술관 오는 길이 어렵죠?” 사실 그랬다. 오늘로 두 번째로 출근하는 그에게, 또 서울 시내 미술관만 드나들었을 대부분의 미술계 사람에게 경기도미술관으로 가는 길은 아직 낯설고 그래서 멀다. “우리 미술관이 너무 알려지지 않았어요. 우선 홍보에 주력해야 할 것 같아요”라며 자신의 할 일을 이야기하려 했다. 하지만 벌써 문 밖엔 MI 디자이너가 김 관장과 미팅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었다. 곧 회의실에서는 주요 간부들이 모여서 미술관 MI에 대한 간단한 회의가 열렸다. 미술관의 영문 표기로 경기도를 ‘Gyeonggi Province’로 쓸 것이냐, ‘Gyeonggi-do’로 쓸 것이냐가 관건이었다. 이렇듯 하나의 미술관을 완성하려면 하나부터 열까지 새로 시작해야한다. 그러고 보니 회의실에는 어제 달았던 취임식 기념 플래카드가 그대로 붙어 있었다. 취임식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실무에 들어갔던 숨 가쁜 일정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만큼 밀려 있는 시급한 과제가 많다는 얘기다. 개관한 지 두 달이 넘어가지만 아직까지 미술관 홈페이지도 없다. 또한 육중한 미술관 외관에 비해 내부가 비어 보이는 것은 단지 관객이 없어서가 아닐 것이다.
경기도미술관은 안산 시민들의 쉼터로 이용되는 안산시 초지동 화랑유원지 안에 위치하여, 2천5백여평에 2층 규모로 여느 미술관 못지 않은 넓은 면적을 자랑하지만, 아직까지 제 공간을 제대로 찾지 못했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술관이 갤러리와 다른 점이 무엇인가? 미술관은 단지 전시만 열고 닫는다고 제 기능을 다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경기도미술관 안에는 전시장, 다목적홀, 세미나실, 수장고, 사무실만 들어서 있다. 아트숍, 식당, 카페테리아 같은 편의시설들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관객들에게 무조건 “전시 보러 오라”고만 한다면, 관객들은 처음에 호기심으로 한 번은 와도 두 번은 오기 싫을 것이다. 또한 학생이나 전공자처럼 일반 관객보다 좀 더 많은 예술적 향수가 있는 사람들을 위한 아카이브나 자료실도 갖춰야 한다. 전시장에서도 왠지 모를 공허함이 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현재 개관기념전으로서 꽤 많은 예산을 들여 선보이는 〈호안 미로〉전은 화장을 잘못한 듯한 느낌이 든다. 이때 우리는 전시 기획의 중요성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누군가 미술관의 꽃은 큐레이터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하지만 경기도미술관은 무엇보다도 큐레이터가 부족해 보인다. 경기도미술관의 ‘큰 덩치’를 생각한다면 큐레이터의 인원을 시급하게 보강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국공립 미술관의 경우 관에서 파견된 행정직 공무원과 미술을 전공한 계약직 공무원 사이에서 오는 불균형 문제가 늘 따라 다닌다. 이는 관장도 마찬가지다. 관장의 미술관 운영 능력은 크게 행정과 전시기획으로 나뉘어 평가된다. 물론 이 둘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잘 해야만 ‘좋은 관장’이지만 굳이 행정과 전시기획 둘 중에서 김홍희 관장의 스타일을 골라야 한다면, 당연히 후자를 꼽을 것이다. 지난 해 광주비엔날레에서 ‘최초 여성 예술감독’을 맡았던 이력만큼이나, 김 관장은 한국 큐레이터 씬에서 큰 업적을 남겼다. ‘큐레이터 출신 관장’에게 거는 기대는 그래서 크다. 이쯤되면 경기도미술관에서 김 관장을 특별히 모신 이유도 알 법하다. 처음 시작하는 미술관의 성격을 만드는 데에는 ‘좋은 전시’가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한다는 판단 때문일 것이다.
사진: 권현정
“내가 오기 전에 이미 2007년 전시 일정이 잡혀 있었다. 박서보 개인전이나 경기도미술을 조망하는 기획전 등이 예정돼 있고, 각 전시마다 예산도 어느 정도 분배된 상태였다. 첫 해부터 내 색깔을 내기는 어려울 것 같다.” 첫 전시에서 아쉬웠던 전시기획의 부재는 김 관장이 들어온 이상, 이제 금방 개선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내심 가졌던 기자에게는 다소 실망스러운 말이었다. 하지만 곧 “올해는 일부 일정만 재조정해서 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을 것이다. 그 밖에 홍보라든가 조직 개편 등 미술관 운영에 기본적인 시스템을 마련하다보면 그 이듬해부터 보다 좋은 전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에 다시 희망을 걸어본다. 김 관장은 이제 시작하는 경기도미술관이 삼아야 할 벤치마킹 모델을 MoMA도 아니요, 퐁피두센터도 아닌 루이지애나미술관으로 꼽았다. 이 미술관은 덴마크 코펜하겐의 중심지로부터 벗어난 도시 외곽의 작은 미술관이지만 주변 경관과 조화를 잘 이루고, 좋은 전시로 지역 주민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관람객이 찾는 명소로 각광 받고 있는 곳이다. 우리는 보통 미술관하면 덥썩 파리나 뉴욕의 명성 높은 미술관부터 찾지만 한국, 더군다나 서울 아닌 안산에 있는 미술관이 닮아야 할 곳은 따로 있다는 이야기가 좀 더 일리 있게 들린다.
경기도 내에는 이미 크고 작은 미술기관이 있을 뿐더러, 전부터 김 관장이 건립추진위원으로 있는 백남준미술관도 곧 개관을 앞두고 있다. 김 관장은 벌써부터 백남준미술관을 위시한 경기도 내 미술기관들과 ‘뮤지엄 벨트’를 형성하면서, 경기도가 후원하는 각종 문화 행사와의 연계 운영을 도모하는 효율적인 구조를 꾀하고 있다. 또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운영함으로써 국내외적으로 미술관의 인지도를 높이고 레지던시의 결과물인 작품을 미술관 콜렉션으로 영입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국내의 본격적인 레지던시 프로그램의 효시였던 쌈지스튜디오를 만들었던 전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또한 미술관의 든든한 병풍 역할을 해 줄 수 있는 후원회도 꼭 결성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대 관장’이란 직함은 이렇듯 해야 할 일이 너무도 많다. 지난 광주비엔날레 개막을 앞두고 했던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비엔날레만 끝나면 좀 여유를 가지면서, 미술사 책이나 강의록을 정리하고 싶다”던 그의 계획은 어쩔 수 없이 이번에도 미뤄졌다.
|호경윤 수석기자
art in culture 2007년 1월호 핫피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