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의 회고전이 또 한 번 열렸다. 물론 백남준의 전시는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열린다. 백남준의 이름으로 헌정된 아트센터가 있는 한국에서나, 그렇지 않으면 교과서에도 실렸다는 일본에서 그의 전시가 열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다름 아닌 중국 베이징에서, 그것도 매년 수천 명의 작가를 배출하고 있는 중앙미술학원에서 백남준의 회고전이 열렸다는 것은 그 의미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이번 전시는 독립큐레이터 문인희가 기획한 전시다. 특히 그는 백남준의 유작 <엄마>에 등장하는 세 소녀의 실제 ‘엄마’이기도 할 정도로, 말년의 백남준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그런 그는 이번 전시의 제목을 <백남준: Vision and Television>이라고 짓고, 대형 비디오 설치작품 3점과 싱글채널비디오 9점, 임영균 작가가 1980년대부터 찍은 백남준의 퍼포먼스 사진 42점을 중국 관객에게 선보였다. 아트페어 등 산발적으로 소개된 것을 제외하고, 본격적으로 백남준을 중국에 소개하는 자리에서 큐레이터는 무엇을 관객에게 어필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번 전시는 비디오 조각 및 설치 작업보다 영상 작업이 부각된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 <Button Happening>, <Cinema Metaphysique: No. 2, 3, 4>, <Violin Dragging>과 같은 초기 작품을 베이징에서 처음 소개된 것은 더욱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데이빗 앳우드(David Atwood), 프레드 바직(Fred Barzyk), 올리비아 태펀(Olivia Tappan)과 공동작업 한 <Experiment with David Atwood>은 80분이라는 긴 분량의 작품을 주목해야 한다. 백남준과 전자공학자인 데이빗 앳우드가 선과 색상의 움직임에 대해 처음 시도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일종의 레디메이드의 이미지에서 발췌한, 최초의 ‘전자 추상’이라고 불릴 만하다. 춤을 추는 듯 미묘하게 변하는 곡선의 형태는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다.
큐레이터가 영상 작업을 집중적으로 가져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싱글채널비디오 작품이야말로 작가의 의식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욕망까지 유형화되어 나오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백남준 예술의 모든 것을 알고자 한다면, 그의 펼쳐내는 내러티브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일차적으로 대형 설치작품 앞으로 다가간다. 물론 당연한 반응이다. 전시장 한 가운데 우뚝 서있는 <Tower>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램프코어에 있는 <다다익선>을 떠올리게 한다. 앤틱 텔레비전 수상기와 네온 조명을 탑 모양으로 쌓아 올린 이 기념비적 작품은, 통신과 소통에 대한 백남준의 예술 이념을 함축시킨다. 또한 <In-Flux House>는 백남준이 젊은 시절 심취했던 플럭서스 예술의 단면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52대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통해 플럭서스 퍼포먼스 이미지들이 다채롭게 편집되어 재생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집 모양인데, 과연 제목처럼 ‘플럭서스의 집’이다. 또한 지붕에는 레이저디스크의 뒷면을 이용해 만든 무지개빛이 전시장의 아치형 천정에 반사되어 시각적 효과가 더욱 극대화되었다.
 “여기 온 사람들이 집에 돌아갔을 때 백남준의 이름과 얼굴만이라도 명확하게 기억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큐레이터의 말마따나, 중국에서 백남준과 비디오아트는 아직 낯섦 그 자체였다. 여전히 따샨즈에서는 ‘차이나 아방가르드’ 1세대 작가들과 그의 아류 같은 작품이 즐비했고, 백남준이 시도했던 매체적 실험과 아울러 미술을 넘어선 음악, 퍼포먼스, 철학과의 정신적 교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때 전세계적으로 끓어올랐던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순식간에 내려앉은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 및 아시아 등지를 떠돌며 활동하는 큐레이터는 중국 미술계에 대해 싸늘하기보다는 ‘엄마’의 마음처럼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듯 했다. 그가 백남준의 예술 세계에서 “인간에 대한 존중과 열린 마음, 그리고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함”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특히 <Tiger Lives> 등 영상 작품 대부분에서 등장하는 샤먼적 모티프의 장면들은 한국(아시아) 출신의 작가가 국제적 작가가 되기까지 사유의 근원을 아시아 토착 문화와 사유 방식에서 찾고 있음을 중국 작가에게 전파하려는 큐레이터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측면은 백남준이 남긴 말에서도 강하게 드러난다. “매년 10월이 되면 어머니는 1년 동안 액을 떼어내기 위해 무당을 부른다. 혼을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밤에 이루어지는 예술이 된다. 그 리듬은 싱코페이션(당김음)이 있는, 3박자 5박자 7박자로 이어지는 홀수가 많다. 내가 작곡하면 3박자 5박자로 되는 것은 결국 나의 미술은 한국의 미술, 그중에서도 민중의 시간예술과 춤, 무당의 음악에 가까운 것이다.”
한편 사진작가 임영균이 1980년대부터 기록한 백남준의 퍼포먼스 사진에서는 백남준의 인간미가 그대로 드러난다. 피사체로서의 백남준은 신화적인 모습으로 본인을 이미지화했던 앤디 워홀이나 요셉 보이스와는 달리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백남준의 스스럼없고 가식적이지 않은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전시장 곳곳에는 42점의 사진 중에서 선택, 확대 인화된 백남준의 모습이 붙어 있어, 중국 관객들이 백남준의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큐레이터의 바람대로 백남준은 감성적이고, 부드럽고, 따스하고, 은밀하고, 무의식적이고, 직관력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모습으로 각인될 것이다. 
백남준: Vision and Television展
4. 5~5. 5
베이징 CAFA미술관

-art in culture 2009년 7월호 리뷰

2009/07/16 18:57 2009/07/1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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