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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소영
 (사진: 권현정) “미디어아트의 무한 미학을 펼치겠다” 9월 1일부터 인천 송도 투모로우시티에서 개최될 2010 인천국제디지털아트페스티벌(이하 IN DAF)의 진두지휘를 맡은 노소영 총감독. 어느덧 10주년을 맞이한 아트센터나비의 관장이기도 한 그는 “첨단 문화도시로 발돋움하려는 인천시의 강력한 의지를 담아 공간 속에 갇혀 있던 예술 작품을 광장으로 확대해 관람객과 시민에게 멀게 만 느껴지던 미디어아트를 친숙하게 다가가도록 추진할 것”이라면서 요즘 그 어느 때보다 남다른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
2010 INDAF, 모바일 비전 이번 INDAF는 <모바일 비전: 무한 미학>이라는 주제로 국내외 미디어 아티스트의 작품을 선보일 예정이다. ‘모든 것이 하나로 통하는 무한 미학’을 통해 예술과 산업의 경계를 넘어, ‘미래의 예술’을 제안하고자 한다. 관객의 참여로 완성될 수 있는 작품이 주를 이루며, 예술과 산업기술의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컨텐츠를 제공하는 것이 노 감독이 그리고 있는 INDAF의 ‘큰 그림’이다. 세부 프로그램은 <모바일 아트> <웨이브> <블러> <공공미술 9경> <센스 센시즈>로 구성되어 강필웅 류병학 허서정 최두은, 유키고 시키타, 짱가가 큐레이터를 맡았다. 사실 INDAF는 인천 경제자유구역의 1단계 사업이 완료되었던 2009년, 시책 사업으로 개최된 인천세계도시축전의 일환으로 열렸던 미술 행사였다. 그러나 올해 송영길 인천시장이 새롭게 부임하며 2009인천세계도시축전을 둘러싸고 불거진 예산 낭비 시비에 대해 재정 감사를 청구하면서 올해의 모든 시 행사가 전면적으로 제동이 걸린 상태. 다행히 기자가 인터뷰하기 바로 전날, 노 감독은 송 시장을 직접 만나 INDAF만은 예정대로 개최하기로 확답을 받아 냈다. 그래서였을까. 노 감독의 표정은 밝고 의욕이 넘쳐 보였다. 물론 인천세계도시축전이 열리지 않아 행사 전체의 규모는 줄어들었지만, 오히려 유일하게 살아남은 문화 행사이기에 미술계 입장에서 보면 상대적인 집중도는 높아진 셈이다. “우리나라가 앞으로 세계적 수준으로 도약하려면 개방을 통해 내부와 외부가 서로 교류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야 하잖아요. 자기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예술과 기술을 융합시켜 화학반응을 일으켜야 하는데 송도가 그런 장소로 적절한 것 같아요. 공항과 항만, 그리고 국제자유무역신도시까지 갖춘 인천에서 새로운 예술 교육과 문화 교류의 발판을 만들고 싶습니다.” 지난 6월 12일 서울W호텔 내 레스토랑 ‘키친’에서 아트센터나비와 프랑스의 어갱래뱅아트센터가 각각 2010 INDAF와 <뱅뉴메리크>를 앞두고 프리 이벤트로 <Banquet Interactif>를 진행했다. 증강현실 3D기술을 동원해 양국의 거리와 시간차를 뛰어넘어 유명 세프의 요리, 무용, 라이브 퍼포먼스가 어우러졌다. 장맛비가 쏟아지는데도 불구하고 오세훈 배순훈 백지연 등 각계 인사들이 모여 INDAF의 성공적인 개최를 기원했다. 예술을 전공하지 않았던 그가 미술관을 운영하고 심지어 세계적 규모의 국제 행사를 맡을 정도로 미술과 밀접한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시어머니였던 고 박계희 여사의 영향이 컸다. 고 최종현 SK회장의 부인이었던 박 여사는 미술을 전공한 손꼽히는 컬렉터였을 뿐 아니라, 1984년 워커힐미술관을 개관해 국내 최초로 앤디 워홀의 전시회를 열고 젊은 작가 발굴에도 앞장섰을 만큼 선구적인 역할을 했다. 1997년 박 여사가 타계하면서 그를 대신해 워커힐미술관을 꾸려 나가기 시작한 노 관장은 박 여사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워커힐미술관 15년사》를 펴냈다. 또한 고인의 10주기였던 2007년, 노 관장은 소마미술관에서 <Trace & Grace-한 소장가의 꿈, 길>전을 마련해 박 여사의 컬렉션 중 선별해 뒤샹, 보이스, 칼더 등 주요 작품 80여 점을 전시한 바 있다. 사실 노 관장이 워커힐미술관을 맡기 이전에 미술과 인연을 맺은 계기가 한 번 더 있었다. 미국에서 경영학 경제학을 전공하며 대학원을 다니던 중 서울에 잠깐 들어와 있으면서 대전 엑스포에 통번역 자원 봉사를 했는데 당시 엑스포조직위원장을 맡았던 오명 전 부총리가 아트&테크놀로지 전시팀장을 맡긴 것. “의욕만 넘쳐 시행착오를 겪었던 행사였지요. 그래도 그 경험을 토대로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당시 예술을 전공한 사람은 전혀 없었고, 경제학이나 전자공학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재미있는 조직이었어요. 전 미술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바깥에서 보는 입장이 더 익숙하죠.” 사회 구조 안에서 예술을 이해하려는 노 관장의 마인드는 21세기 디지털 혁명 이후 예술과 문화의 문맥과 잘 상응한다.
미디어아트의 발신지, 아트센터나비 ‘대통령의 딸’ ‘재벌가의 안방마님’이라는 수식어가 늘 노 관장을 따라다니지만, 그는 언제나 새로운 것을 실험해 보고자 하는 능동적인 도전 의식이 강하다. 2000년 SK사옥 내 개관한 아트센터나비도 마찬가지다. “아트센터나비는 기존 아날로그 미술관이 아닌 디지털 미술관을 표방했습니다. 개관부터 추구했던 것이 기존 미술계의 전략과 약간 달랐어요. 더 잘했다 못했다가 아니고 그냥 다른 것이지요. 20세기의 예술이 걸어 왔던 길과 조금 다른 것을 개척해 보자 해서 시작했는데, 그 개척이 쉽지 않잖아요? 사람들이 이해도 못하고 ‘왜 저러지’ 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도 저는 그런 대안적인 방향이 옳았다고 생각해요.” 아트센터나비는 ‘미래의 미술관’이라는 비전 아래 매개자의 역할을 지향한다. 과거의 미술이 보고 읽는 것이었다면, 미래의 미술은 자기 스스로 갖고 보고 느끼고 재창조하는 것이라는 것이 노 관장의 지론이다. 그래서 아트센터나비는 매개자의 역할을 지향하며, 기술이 인간의 문화적 삶에 스며들어 열리는 새로운 창작의 차원에서 ‘기술의 인간화’를 실현하기 위한 과학기술과 인문학, 그리고 예술 사이의 상호 협력을 중개하고자 한다. 아트센터나비에서는 그간 SK이동통신사 매장에서 진행했던 <스펙트럼@TTL>, 싸이월드와 함께 했던 <러브 바이러스>, SK텔레콤 본사 1층 로비에 설치된 전광판 ‘코모’에서 세계적인 디지털 아티스트들을 소개하는 등 기업과 미술의 만남을 끊임없이 주선해 왔다. 또한 2006ISEA에서 <컬처 컨테이너>, 스페인 ARCO에서 <민박 프로젝트>를 개최하는 등 해외에 국내 미디어아트를 소개하기도 했다. 또한 탈북자 청소년과 미디어 아티스트들이 함께 꾸린 <프로젝트 I>, 카이스트 재학생 등 IT 전문가와 예술가 간 산학협동을 이끌어 내기도 했다. 특히 지난 2007년 남산드라마센터에서 진행했던 <p.Art.y>는 그 동안 아트센터나비에서 연구했던 예술적 실험을 페스티벌 형식을 빌어 총체적으로 보여 줬던 행사였다. 전시와 라이브 공연, 워크숍, 영화 상영, 도시 게임, DJ파티 등이 섞여 말 그대로 ‘컬처 리믹스’를 구현한 실험의 난장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아트센터나비에서는 전시는 물론, 교육적 아카데미와 실험적 프로젝트를 활성화시키고 국내외 미디어아트에 대한 방대한 아카이브를 꾸린 국내 유일의 미디어아트의 발신지가 되었다. 올 연말에는 아트센터나비 10년의 역사를 모은 책을 발간, 다가올 10년을 준비할 계획이다. “앞으로 미디어아트의 향방은 크리에이티브 산업 영역으로 보다 깊이 침투해 들어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술과 산업의 융합 속에서 우리의 미래, 즉 새로운 예술의 역할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어요. 그 융합의 성과는 직접적으로 드러나거나 물리적으로 측정할 수는 없겠지만, ‘보이지 않는 변화’야말로 가장 어렵고 중요한 것 아닐까요?” 글 | 호경윤 수석기자
art in culture 2010년 8월호 핫피플
Ho
2010/08/24 1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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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감도
전국적으로 레지던시 ‘배틀’을 벌이듯, 레지던시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한국 미술계에서 미술창작스튜디오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1991년 작가 이강소가 미국 뉴욕의 P.S.1국제레지던시프로그램에 참가하면서부터다. 그 이후 국내에는 1990년 후반부터 폐교를 활용한 창작스튜디오가 설립되기 시작했고, 10여년 동안 다양한 형태의 레지던시가 등장하고 있다. 2000년 이후 기하급수적으로 생겨난 레지던시들은 규모만 다를 뿐 일종의 ‘한국형 레지던시 모델’이 존재하는 듯 전반적으로 동일한 시스템으로 운영되고 있다. 특히 단순한 작업실의 개념을 넘어 각종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마련, 작가 재교육은 물론 시민 참여를 유도하고 있다. 특히 2009년 여름, 경기도 안산시 선감도에 개관한 경기창작센터는 국내 최대 면적의 부지에 스튜디오와 주거공간은 물론 작품 창고, 전시실 등을 구비하고, 다양한 프로그램과 네트워크 활동을 선보이며 국내 레지던시의 거점 역할을 하고 있다. 개관과 함께 전세계 레지던시의 연합체인 2009 레즈 아티스 컨퍼런스를 성공적으로 개최한 바 있는 경기창작센터는 이번에는 국내 레지던시의 관계자들과 함께 진행하는 포럼을 열었다. 2010년 경기문화포럼의 일환으로 <창작스튜디오 네트워크 포럼-창작지원의 패러다임 변화>가 지난 7월 21일 1박 2일간 개최된 것이다. 이번 포럼에는 전국 각 지역의 창작스튜디오 관계자, 사립 미술관 및 대안공간이 운영하는 레지던시 프로그램 운영자, 프로젝트형 레지던시 및 재래시장 레지던시 관계자는 물론 평론가, 작가 등이 참석하여 어떻게 레지던시가 예술가들을 프로모션 할 수 있는지, 지역적 컨텍스트는 창작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등에 대한 문제를 고찰하고 그 대안을 모색했다. 기조발제로는 정헌이(한성대 교수)의 ‘창작의 과정으로부터 새로운 대안 찾기’와 이영욱(전주대 교수)의 ‘새로운 공공미술과 지역 레지던시’가 발표해, 포럼의 시작을 알렸다. 정 교수는 한국 현대미술의 환경을 1990년대는 ‘대안공간의 시대’, 2000년대는 ‘레지던시의 시대’로 정의하면서, ‘세계화’라는 구호 아래 우리시대의 새로운 유목민-노마드로서의 작가의 초상을 설명했다. “글로컬리즘 시대의 예술가들은 경계선을 넘어 이 레지던시에서 저 레지던시로, 이 비엔날레에서 저 비엔날레로, 이 지역에서 저 지역으로, 여기서 저리고, 거기서 이리로 떠돈다”는 정 교수의 말은 레지던시가 노마드 작가들의 ‘오아시스’의 기능을 충족시켜 주는 곳이지만, 체류 기간이 제한되었다는 점과 입주작가의 상당수가 40대 미만이라는 점에서 어디까지나 “한시적인 오아시스”임을 역설하는 것이다. 또한 정 교수는 대안이라는 화두 아래 ‘활동하는 예술’ ‘연구하는 예술’ ‘커뮤니티에 참여하는 예술’이 내세우는 지역이라는 새로운 문제의식은 어떤 의미에서든 세계화된 자본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과 고찰을 요구했다. 한편 이 교수는 지역 레지던시의 성립과 역할을 공공미술의 컨텍스트에서 이해시키고자 할 포스터와 수잔 레이시의 비평적 관점을 인용했다. 또한 이 교수는 최근 1년 이내 국내 레지던시에 관련한 신문기사들을 임의적으로 발췌 및 소개함으로써 문화를 통한 지역과 도시를 활성화시키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에서 노출된 전문성과 지역적 소통의 부재를 지적하기도 했지만, 다소 현장감이 떨어지는 내용에 대해 아쉬움을 표하는 관객들이 눈에 띄었다. 기조 발제 이후, 라운드테이블 1과 2는 각기 다른 장소에서 동시에 진행되었다. 먼저 라운드테이블 1에서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에 있어서 ‘지역적’ 컨텍스트의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 김희진(대안공간풀 디렉터), 박찬응(안양 스톤앤워터 관장). 유승덕(안산 커뮤니티 스페이스 리트머스 대표), 박성현(광주대인시장 레지던시 디렉터)가 발제를 했으며, 이명훈(순천 돈키호테 디렉터), 백종옥(목포 대안공간 알렙 디렉터), 윤제(포천 아트밸리 총감독), 이정원(인천아트플랫폼 총괄팀장)이 토론자로 나섰다. 또한 “어떻게 레지던시가 예술가를 프로모션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한 라운드테이블 2에서는 김화용(안국동 가옥 레지던시), 유진상(계원예술대학 교수), 심상용(동덕여대 교수)가 발제했고, 김윤환(서울문화재단 창작공간추진단장), 서상호(오픈스페이스배 디렉터), 이윤숙(대안공간 눈/내건너 창작촌 대표), 김월식(작가), 김복수(충주미술창작스튜디오 매니저)가 토론했다. 한편 다음 날 개최된 라운드테이블 3과 4에서는 각각 “다양한 예술실험과의 만남-국제교류 네트워크”와 “학제적+크로스 장르적 실험을 위한 지원”에서는 레지던시의 기능이 이제는 더 이상 ‘작업실’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아트씬을 만들어 내고 전지구적 예술적 담론을 발신하는 거점으로 확대되었다는 지점을 짚어보자는 취지에서 기획되었을 것이다. 특히 라운드테이블 3에서 발제한 김홍희(경기도미술관장)의 “국제 네트워킹과 교류 프로그램 공유를 위한 소고: 아트레지던시와 국제 네트워크”에 관한 내용은 경기도미술관과 경기창작센터의 파트너십의 시너지 효과는 물론, 경기도미술관이 표방하는 ‘포스트 뮤지엄’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구체화할 때 경기창작센터의 효율적 운영 방식을 주를 이뤘다. 특히 최근 진행됐던 프랑스 팔레드도쿄 부설 레지던시 ‘르 파비용’과 경기창작센터의 교류 프로젝트 <우리시대의 다문화>에서는 이주 근로자들이 모여 사는 안산 원곡동을 부대 사이트로 선정해, 지역적 특성을 살리면서도 국제적 이슈로 발전시킨 좋은 모델이 되어 주었다. 그러나 각각의 라운드테이블에는 각각 명시되어 있던 주제가 충분히 논의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발제자와 토론자의 역할 분담도 무색하게 패널들이 저마다 운영/경험한 레지던시나 동시대 아트씬에 대한 입장을 펼치는 데에 급급했다. 그도 그럴 것이, 각 레지던시마다 처한 상황과 설립 배경이 제각각이다보니 패널마다 안고 있는 문제의식의 결과 깊이에 차이가 클뿐 더러, 이번 포럼의 주요 키워드였던 ‘지역석’ ‘프로모션’ ‘국제교류’이라는 단어 자체에 대한 정의도 각기 달라 보였다. 어쨌든 이 땅에서 레지던시를 운영하는 주체들이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는 것 자체도 큰 의의가 있기는 하지만, 국공립 레지던시의 ‘예술가 복지에 대한 소명의식’과 사립 레지던시의 ‘행동주의 예술적 취향’이 교묘히 엇갈리는 가운데, 다음 기회에는 좀더 현실에 당면한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질적 논의가 오갔으면 하는 마음을 안고 선감도를 떠났다. -예술경영지원센터 웹진 기사보기 링크 http://www.gokams.or.kr/webzine/main.as ··· dx%3D546
Ho
2010/08/20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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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우"
<보도자료 0211>
만인보(萬人譜 / 10,000 Lives) -제8회 광주비엔날레 주제 발표
제8회 광주비엔날레의 주제가 발표되었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은 11일 마시밀리아노 지오니(Massimiliano Gioni) 예술총감독이 참석한 가운데 기자회견을 열고 오는 9월3일 개막하는 제8회 광주비엔날레의 주제를 고은 시인의 연작시 ‘만인보(10,000 Lives)’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오니 감독은 주제를 고은 시인의 시집 제목에서 착안한 것에 대해 “올해는 5․18 광주민주화운동 30주년이 되는 해이고, 5․18의 정신성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광주비엔날레의 정체성이나 역사성에 비추어 매우 의미있는 일”이라고 밝혔다. ‘만인보(萬人譜)’는 고은 시인의 시집이기도 하지만 만인들의 삶, 특히 시각예술에 등장하는 온갖 이미지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따라서 올해 광주비엔날레에서는 이미지들이 어떻게 조작되고 순환되며, 훔쳐가고 교환되는 지를 관찰하는 ‘이미지의 일생’에 관한 미학적 담론을 펼쳐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지오니 감독은 “20세기 초부터 오늘날까지 활발하게 작업하는 100여명 작가들의 작품을 초청할 것이며, 광주비엔날레를 위하여 특별히 제작된 작품들도 전시작품에 포함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인물작품에 초점을 맞춘 다양한 영역의 미디어작품들을 비롯해 인물에 대한 대체 모형물, 아바타 등 다양한 형식의 재료와 표현들이 등장하게 된다. 지오니 감독은 “대부분의 미술사는 사람이 사람을 바라보는 것에 관한 것이거나 신체를 응시하는 시선, 또는 우리 자신을 대신할 수 있는 것으로 창조된 대상이나 인물들에 관한 것”이라고 피력하면서 “우리는 고대 신화로부터 이미지들이 연인의 그림자를 표현하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오늘날처럼 아이콘에 대한 숭배의 병이 지속되는 상태나 이미지에 대한 광적 탐닉의 상태를 광주비엔날레를 통하여 광의의 문화언어로 탐구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만인보’는 고은 시인이 1980년대 민주화 운동으로 투옥되었을 때부터 쓰기 시작하여 최근에 완간을 앞두고 있는 그의 대표작이다. 그 내용은 시인이 전 생애를 통하여 만난 인물들이 실명으로 거론되며, ‘인류애의 백과사전’으로도 불리고 있다. 최근 고은 시인은 광주비엔날레재단 이용우 상임부이사장과 지오니 감독을 만난 자리에서 “만인보의 취지와 광주비엔날레가 잘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제8회 광주비엔날레와 관련하여 도울 일이 있으면 나서겠다는 뜻을 밝히기도 하였다.
<참고자료 1>
시인 고은과 ‘만인보(萬人譜)’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고은은 1933년 전북 군산에서 태어났다. 1958년 현대문학에 ‘눈길’, ‘봄밤의 말씀’ 등을 발표, 문단에 나온 시인은 한때 승려의 삶을 살기도 했다. 문인으로서 삶과 함께 그는 항상 현실을 도외시하지 않는 행보를 보여왔다. 1970~80년대 민주화운동으로 수차례 옥고를 치렀을 뿐만 아니라 구금, 가택연금 등을 반복했다. 특히 1980년 5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일으킨 쿠데타에 저항하고 광주민주화운동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내란음모, 계엄법 위반 등의 죄목으로 육군교도소에 수감, 죽음 직전의 극한 상황을 체험했다. 군법회의에서 20년형을 선고받고 독방에 감금된 시인은 ‘미치지 않기 위해’ 그가 아는 모든 이의 얼굴들을 머릿속에 그리기 시작했다. 연작시 ‘만인보(萬人譜)’는 그렇게 탄생했다. 감방의 어둠 속에서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시인은 그의 어린 시절 마을에서 시작해 역사적 인물과 문학계 인사들, 그가 만난 모든 사람들을 포함할 아주 긴 시, 또는 연작 시집을 구상했다. 죽음에 대한 공포 앞에서 그가 만난 이들의 얼굴을, 그 이미지들을 기억하며 살아남았던 것. 그는 1982년 석방된 이후 1986년에 출판된 ‘만인보’ 1권을 시작으로 필생의 역작을 집필해 나갔다. ‘시로 쓴 인물사전’ 혹은 ‘시로 쓴 민족의 호적부’라 일컬어지는 ‘만인보’는 세계 최초로 사람만을 노래한 연작시로도 유명하다. 특히 작가가 유년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만났던 특정 인물들을 실명으로 다루고 있는 것이 큰 특징으로 영어, 독일어, 스페인어, 스웨덴어 등 7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 출간됐다. ‘만인보’는 25년여의 집필기간을 거쳐 올해 2월말께 3천800여편, 30권을 끝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 지난해 말 탈고한 마지막 원고는 80년 광주민주화운동기와 역사적 인물들을 주제로 쓴 시들이 담겨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Ho
2010/02/12 00:12
2010/02/12 0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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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폼 입은 소년/소녀가 들려 주는 이야기
‘써니 킴’하면 교복 입은 소녀들이 떠오른다. 그런데 한 동안 전시장에서 이 소녀들이 보이지 않았다. 2006년 일민미술관에서 열렸던 개인전 <완전한 풍경>(Perfectly Natural)에서조차 교복 입은 소녀 대신 전통 자수의 모티프를 얻은 회화가 주조를 이뤘다. 그리고 이후 한동안 활동이 뜸했던 동안 작가는 다시 유니폼(교복)을 입은 소년들과 함께 돌아왔다.
개념적 회화, 회화적 개념미술. 이 두 가지 미술의 형식 사이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써니 킴의 작품 세계를 더듬다 보면 자연히 그 차이에 대한 질문이 생긴다. 교복 입은 소녀에 대한 향수를 갖고 있는 다 자라버린 소녀의 그림. 이러한 써니 킴의 초기 작업은 회화라는 매체를 사용한 개념미술의 느낌이 강했다.
교복 입은 소녀를 그리는 이유 써니 킴이라는 이름에서부터 알 수 있듯 작가는 1.5세대 재미교포라는 성장 배경을 갖고 있다. 써니 킴이 미국으로 이민 간 것은 중학교 2학년 때. 작가는 유치원 때부터 초등학교, 중학교까지 계속 교복을 입어 왔고, 그래서 써니 킴은 자신의 가까운 미래 모습을 교복을 입은 ‘단정한 여고생 언니’로 떠올리곤 했다. 그러나 ‘이민’이라는 갑작스러운 환경의 변화는 어린 소녀에게 적응을 강요했고, 물론 교복 입은 여고생의 미래도 빼앗아 버렸다. 써니 킴에게 있어서 교복은 역사적 정치적 의미보다는 소속감을 부여하는 장치에 가깝다. 집단화는 구속을 주기도 하지만 명백한 정체성을 부여함에 따라 오히려 안정과 평안을 가져다 주기도 한다. 독립큐레이터 이은주의 말대로 써니 킴에게는 ‘규율’은 억압의 장치가 아니라 그의 흔들림을 잡아줄 수 있는 기준점이자 그에게 정체성을 부여하는 안전한 기반으로서 수용되었다. 당연히 찾아올 줄 알았던 미래의 초상을 겪지 못했던 트라우마 때문에 써니 킴의 유년기는 언제나 모호하고 누락된 시공간으로 남아 있다. 써니 킴은 초기 작업에서 이런 모호함과 불안정성을 역설적으로 표현했다. 오래된 졸업앨범에서 가져왔을 법한 여고생의 소풍이나 수학여행 사진 이미지들을 재조합해 외적 형태만 몽타주해 캔버스에 옮겨 그렸다. 치밀하게 계산한 도안을 그래픽디자인 이미지나 판화로 오인될 만큼 플랫한 느낌으로 그렸다. 또한 <Garden>(1998), <Underworld>(1999) 등 1990년대 후반의 작업에서 소녀들의 배경으로 이따금씩 등장했던 전통자수 배경은 이후 2006년 일민미술관에서 개최한 개인전 <Perfectly Natural>에서 동양과 서양이 합체된 ‘완전한 풍경’으로 발전한다. 제목부터 아이러니해 보이는 이 전시에서 선보였던 <수양버들> <바위와 구름> <Flying Birds Lavender>(2005) 등은 전통 자수를 모티프를 삼고 있지만 교복 입은 소녀들을 그릴 때와 마찬가지로 껍데기의 공허함을 좇을 뿐, 실재하지 않는 유토피아를 그려냄으로써 심리적 보상을 받는 공간에 다름 아니다. 의도적인 차용과 배제에 근간을 둔 작업 방식은 여전하다. ‘완벽한 자연스러움’이라는 이상을 표현하고자 하는 작가의 의지와 이를 표현하는 이성적이고도 다분히 의식적인 창작 방식은 명료한 의미 전달을 통해 주제를 강조하는 개념미술의 모습과 상당 부분 닮아 있었다.
열린 내러티브, 새로운 카논을 제시하다 개인사에서 출발한 써니 킴의 그림은 때로는 코리안 아메리칸이나 디아스포라 화두로, 때로는 전통의 현대화의 화두로 확대 해석되곤 했다. 그러나 담론은 유행을 타기 마련이고, 이러한 속성 때문에 작품의 생명력을 단축시키기도 한다. 그래서 일민미술관 개인전 개최 이후 한동안 써니 킴의 활동이 눈에 띄게 줄었다. “2년은 정말 힘들었었고, 그 후에는 정돈이 된 것 같아요. 일민미술관 개인전 이후 이전 작업을 그만두고 옛날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 처음부터 뒤집어서 생각하면서 태도와 작업이 변하기 시작했죠. 또한 과거에 비해 조금 더 자유롭고 관대해진 면이 있어서 그림 그리기가 훨씬 편해졌어요.” 그로부터 3년여의 시간이 지난 최근작은 이전의 그림과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최근작에서 작가가 머리가 아닌 손으로 그리고 있음이 확연하다. 그간 써니 킴은 그림의 매력에 한층 빠져 ‘회화’라는 고전적인 미술의 형식에 천착하는 시간을 가진 듯하다. 작가 역시 스스로 본인의 최근 작업이 ‘회화적’으로 변모했다고 고백한다. 가장 큰 변화는 그림의 레이어가 늘어났다는 점이다. 과거 한 겹으로 깔끔하게 떨어지는 그래픽 이미지 같은 질감이 아니라, 물감을 여러 겹 덧발라 작은 면적에서도 여러 가지 색깔이 중첩돼 드러나 보인다. 그 결과 전체적으로 몽상적이고 아련한 분위기로, 맛과 냄새가 나는 그림이 되었다. 레이어의 증가는 색감뿐만 아니라, 디테일을 살리며 대상의 움직임을 표현하는 효과를 가져왔다. 캔버스에 그린 것은 정지된 순간이지만, 그려진 대상에서는 약간의 미동이 포착된다. 과거 교복을 입은 소녀, 혹은 전통자수에 등장하는 오브제의 외곽선에 주목하게 했다면, 최근작에서는 캔버스 화면 전체를 바라보게 함으로써 이미지의 내러티브를 강화시킨다. 화면은 대상뿐만 아니라 공간감과 빛에 의해 완성되고, 아울러 관객의 시점을 의식하면서 거리감 역시 주요 구성요소로 가져왔다. 가령 <Window>에서는 창밖을 바라보는 두 소년의 양쪽에 흰 벽이 놓여 있는데,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소년들과 함께 같은 곳을 바라보는 기분을 주기도 하고, 건너방에서 이들을 지켜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잃어버린 기억을 현재화시키는 것, 혹은 상상의 미래를 끄집어내어 현재에서 해석하기 위해 그에게 중요한 연구 방법은 영화와 소설을 보는 것이다. 실제로 그의 그림에서 등장하는 이미지는 영화에 나온 장면을 가져오는 경우가 종종 있을 뿐 아니라, 영화와 소설 특유의 서사적 구조에서 아이디어를 착안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써니 킴의 회화에서 구체적인 스토리텔링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마치 움직이고 있는 이미지의 한 장면처럼 보여 전후 상황이 궁금해진다. “대상보다는 현재 그 대상이 처한 상황 자체를 그리고 싶어요. 이야기가 한참 전개되고 있는 중간을 잠깐 멈춰 놓은 듯한 느낌말이에요. 움직임을 살려서 이 이미지의 전은 뭘까, 후는 뭘까, 나는 어디에 있나…. 그 주위를 생각하게 되는 거죠.” 또 다른 차이점은 과거 소녀들과 달리 소년들의 얼굴을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그리고 있는 인물은 정면이 아니라 뒷모습만 그리거나 머리 아래로만 그린 옆모습들이다. 표정이 없어 소녀들의 표정에서 목격되던 인위적이거나 가식적인 느낌은 없지만, 그들의 동작에서 여전히 경직되고 어색한 느낌이 의도적으로 들어가 있다. 하지만 여전히 소년들은 소녀들과 마찬가지로 유니폼(교복)을 입고 있다. 소년들의 복식은 소녀들이 입었던 1960년대의 교복이라기보다는 흰 셔츠에 검정색 반바지에 멜빵을 맨, ‘단정한 차림’으로 보인다. 최근작에서 소년들의 외양을 보고 나니, 과거의 소녀들도 달리 보인다. 등장인물이 입은 교복은 물론 그동안 써니 킴의 작품에서 충분히 이야기됐던 근대사, 집단성을 말하기도 하지만 그 밖에 다른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대상에게 같은 옷을 입힘으로써 작가의 비감정적 상태를 표현하기도 하고, 어쩌면 작가의 미적 취향이 반영된 회화적 장치일 수도 있겠다. 유니폼을 입은 대상들은 하나 같이 꽤 균형 잡힌 일정한 체형이다. 여기서 오는 또 다른 경직성은 동시대의 새로운 회화적 ‘카논’(Canon)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미술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가진 ‘회화’라는 형식에서 화가가 새롭게 시도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또한 개념적 실험으로 점철된 동시대 미술에서 회화는 어떻게 수용, 이해될 수 있을까. 그럼에도 동시대 미술에서 그림이 가지는 힘은 유효하다. 단, 과거의 회화와 달리 훨씬 내밀한 사유와 선택적 장치가 필수조건으로 마련되어 있어야 한다. 이 난제 때문에 작가는 그간 꽤 오랜 고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써니 킴은 작업이 지금처럼 더욱 회화적으로 변모하기까지 그림을 그릴 때 갖는 ‘태도의 변화’가 가장 컸다고 말한다. 그의 그림은 열린 내러티브와 새로운 카논을 통해 회화적 개념미술에서 개념적 회화로 한 걸음 또 나아가고 있다.
art in culture 2010년 1월호 <아티스트 인사이드>
Ho
2010/02/10 15:27
2010/02/10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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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민욱
2009년 페스티벌 봄 <S.O.S-Adoptive Dissensus> 프로젝트 진행작가 임민욱을 알게 된 것은 꽤 오래 전 일이다. 광주비엔날레와 에르메스에서 수상을 하고, 국내외에서 열리는 굵직한 전시에 참여하는 작가다보니 그녀는 미술 전문잡지 기자로서 모르면 안 되는 한국 현대미술 작가 중 하나이다. 게다가 필자가 꽤 자주 찾던 인사미술공간에서 잠깐씩 마주친 적도 많았는데, 여자치곤 훤칠한 키에 밝은 미소가 기억에 남는다.
한국인, 여자, 미술가로서의 삶 그러다가 임민욱 작가에 대한 강한 인상을 받았던 것은 시간이 좀 지나서다. 2007년, 당시 신사동에 문을 연지 얼마 안 되었던 아뜰리에에르메스(에르메스에서 운영하는 현대미술 전시 공간)을 찾았을 때였다. 작품 <너무 이른 혹은 너무 늦은 아뜰리에>를 설치하던 작가 옆에 다가가 조심스럽게 인터뷰를 청했다. 작품에 몰입한 상태여서일까, 작가는 그 동안 보아왔던 것과는 사뭇 다른 진지한 눈빛으로 작업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때 작가가 했던 말 중 지금까지도 잊혀지지 않는 말이 있다. 바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말이다. 그녀는 가정에서 혹은 사회에서 벌어지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의 ‘전복적 지점’을 이번 작품에 반영했다고 설명했다. 처음엔 그 말이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후로 가끔씩 그 말을 혼자서 곱씹게 되었다. 잡지를 만드는 과정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터지는 여러 가지 일들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면 임민욱 작가의 그 말이 떠올랐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 바로 이런 것일까’하고 말이다. 이번에 다시 인터뷰를 할 때도 작가는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며, 프랑스인 남편 사이에 둔 딸아이가 얼마 전 학교에서 다문화가정에게 나누어준 5만원짜리 상품권을 받아온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임민욱이라는 사람의 정체성에는 한국인, 여자, 미술가라는 기본적 조건부터 외국인 남편의 아내, 딸아이의 엄마, 미술대학의 강사 등 사회적인 맥락이 함께 얽혀 있다. 작가가 아니라도 사람과 어울려 사는 이는 누구나 여러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 모두는 삶 속에서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을 종종 접하게 된다. 이 상황을 좀 더 풀어서 이야기하자면, 상대적 가치와 규율의 아이러니한 충돌과 교란 앞에서 한 개인이 겪게 되는 복잡다단한 감정일 것이다.
가정사와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을 주목하다 임민욱의 작품은 그가 한국인으로서 줄곧 보고 듣고 체험한 것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작가는 과거 프랑스에서 체류했고, 지금도 국내외 작가들과 교류를 이어가면서 다양한 문화를 온몸으로 흡수했다. 그러나 그녀의 부모님 세대는 새마을운동 같은 급속한 근대화를 경험한 주인공이고 여전히 민족주의적 가치관이 깊이 남아 있다. 이렇게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살을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물론 거기에는 갈등이 있다. 사실 이러한 세대적․문화적 갈등은 도처에 도사리고 있다. 작가는 이 점에 주목한다. 그녀는 가정사와 역사가 교차하는 지점, 바로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민감하고 애매한 상황, 즉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을 상실감이 공존하면서 동시에 이를 뒤집기도 하는 잠재적 어휘로 작품에 담아낸다. 그래서 작품의 주요 모티프는 그러한 그녀의 삶의 현장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그의 작품 <뉴타운고스트>는 그가 살고 있는 영등포 지역에서 이뤄졌고, <테너와 고구마>는 2004년 당시 그가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던 하자센터에서 촬영한 것이다. <뉴타운 고스트>는 2005년 영등포로터리를 기점으로 재개발 대상 지역에서 펼쳐진 프로젝트다. 확성기를 든 한 명의 래퍼가 드러머와 함께 트럭을 타고 누비는 장면을 담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매우 지엽적으로 보일 수 있는 이 작품이 4년이 지난 지금까지 해외 주요 미술관으로부터 초대를 받아 상영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그녀의 작품에 드러나는 우리 삶의 단면이 시공간을 초월해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임민욱은 그녀의 주변인을 작품 속에 종종 등장시킨다. <잘못된 질문>, <스무고개-‘장마 도깨비 여울 건너가는 소리’>에서 보이는 예쁘장한 소녀는 작가의 딸이다. 특히 <제4회 다문화축제>에 천막 디자인을 의뢰 받아 참여하면서 만든 <스무고개>는 다문화축제 현장을 배경으로 이주와 노동, 차별과 소외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서 작가는 딸의 시선을 통해, 혹은 “질문) 나는 높은 곳에서 내려간다. 나는 낮은 곳에서 올라가기도 한다. 여기서 나는 누구일까? / 보기) ①피 ②혼혈 ③잡종 ④튀기 ⑤해당 없음” 같은 스무고개를 통해 집단 속의 개인, 외국인들 사이에 또 다른 이방인을 바라보게 한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가정사를 이야기하면서도 결과적으로 한국사회, 혹은 글로벌사회의 첨예하게 드러나는 호명(呼名)과 경계 등의 문제를 건드리고 있는 것이다.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녀는 “내 안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이야기들, 가까이 있으면서도 멀게 만 느껴지는 관계들, 내 이야기이면서도 내 이야기일 수 없는 역사들이 어떻게 교차되고 있는 지 거리 두면서 바라보려고 한다. 즉 사적인 것과 공적인 것이 어떻게 경계선을 이루고 있는지를 더듬으면서, 무언가의 이면, 또는 양가적 측면을 들춰내고 있다”고 말한바 있다. 그렇게 삶의 양가적 측면에 주목해서일까, 그의 작품은 표현 방식에서도 이중 구조가 확연히 드러난다. <너무 이른 혹은 너무 늦은 아뜰리에>에 등장하는 피켓은 ‘ON’을 가리키기도 하고, 뒤집으면 ‘NO’를 가리키기도 한다. 또한 영상 작품을 보여줄 때도 2개, 3개의 화면을 제시하여 관객들이 같은 상황이라도 다면적으로 바라볼 것을 유도한다. 그녀의 작품에서 자주 드러나는 또 다른 표현 방식은 일시적이거나 즉흥적인 것이다. 고인 물위에 물감을 풀어 놓은 뒤 수면 위에 우연히 맺히는 모양을 종이에 찍어내거나, 형광색의 우레탄이 제멋대로 부풀어 굳는 식이다. 의도하지 않은 대로, 다시 말해 세상사 내 뜻대로만 되지 않음을 시각화하려는 것처럼 말이다. 이는 동시에 큐레이터 김선정이 지적한 바 있는 ‘운동성, 역동성’이 느껴지는 대목이기도 하다. 작가는 여러 다른 문화 사이의 교차나 시차에 주목한다. 전시장이 아닌 주어진 상황을 이용하며 공감각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한강을 무대 삼은 공감각적 퍼포먼스 이러한 접근은 최근작 <S.O.S-Adoptive Dissensus>에서 가장 극적으로 드러나는 듯하다. 지난 3월, 임민욱은 딱 이틀 간 관객들을 여의도 한강 유람선으로 초대했다. 마침 선착장 주변은 땅이 갈아엎어진 채로 엉망이었고, 그럼에도 군데군데 나와 있는 불꽃놀이나 장미꽃 행상들, 선착장 특유의 조악한 조명 장치 등이 한데 어우러져 자아내는 분위기는 그야말로 을씨년스러웠다. 약속된 정각 밤 9시, 유람선은 예정대로 출항했다. 물론 늦게 온 사람은 배를 놓쳐 그냥 집으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일주일이고 한 달이고 열어 놓고 관객을 기다리는 미술관에 비하면 매우 불친절한 전시 방식이다. 시간을 잘 지킨 부지런한 관객은 을씨년스러웠던 선착장의 기억을 간직한 채 유유히 흐르는 한강 물결에 몸을 실었다. 유람선의 출발과 함께 선장은 환영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한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한강 다리들을 순서대로 통과해 노들섬, 양화대교 옆 절두산 성지 및 중단된 잠두봉 선착장 등을 지나오는 동안 유람선 외부에 설치된 조명은 교각 구석구석, 강변의 아파트와 대형 빌딩, 공사 현장 등 한강 주변의 풍경을 쉴 새 없이 쏘아댔다. 또한 중간 중간에는 유람선 바깥의 특정 장소에 작가가 미리 준비해둔 비전향 장기수 출신 보안관찰 대상자, 갈 곳 없는 연인, 거울시위대들의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관객들은 가만히 앉아서 선장의 이야기를 듣거나, 야경과 퍼포먼스를 바라보기만 했지만 결코 정적인 존재가 아니었다. 작품의 일부가 되어, 마치 고래 뱃속에 들어간 듯한 공감각적 경험을 만끽했다. 동시에 관객들은 ‘한강의 기적’이나 ‘한강 르네상스’보다 더욱 진기하고 아름다운 기억을 가지고 집에 돌아갈 수 있었다. 전시장을 한강으로 옮겨오고, 관객을 작품의 일부로 받아들일 정도로 무모하리만치, 실험적이고 자유로운 작가 임민욱. 사실 그는 예중, 예고, 여대라는 다소 ‘모범적’인 미술 교육 코스를 밟았다. 그러나 대학 시절 군사정권에 저항하던 사회 분위기는 임민욱을 현실과 미술에 대한 괴리감에 빠트렸고, 그 즈음 까뮈나 사르트르 등의 프랑스 실존주의 철학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졸업을 포기하고 프랑스 유학길을 떠나기 이르렀다. 그 후 그녀는 파리에 약 10여년 간 체류하면서 동료 작가들과 ‘제너럴 지니어스’라는 집단을 조직했다. 협업을 통해 디자인, 아카이브, 공공예술 등 다양한 활동을 펴나가면서 본격적인 작가의 길로 들어섰다. 1998년 귀국한 임민욱은 당시 국내에서는 보기 어려웠던 급진적인 작품들을 여럿 선보였다. 그 해 개최된 <도시와 영상_의.식.주>전에서 서울 시내에 버스 정류장의 홍보판을 자신들의 이미지로 채웠고, 1999년 문예진흥원미술관에 <사회적 고기>, 2000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주관적 이웃집>을 발표한다.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 3년 간 체류를 한 다음 2004년 ‘제너럴 지니어스’의 멤버이자 지금은 남편이 된 프레데릭 미숑과 함께 ‘피진 콜렉티브’를 다시 조직하고 대학로의 아르코미술관 앞에 컨테이너를 갖다 놓고 일종의 현장 사무실을 차리고 미술관 방문객부터 노숙자까지 이용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한 작품 <LOST?>, 대안관광가이드북 <피진 버스 투어-가리봉동>을 발표했다. 공동 작업이나 액티비스트에 가까웠던 과거 활동에 비해 조금은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는 임민욱은 작년 연말에서야 단독 개인전을 처음 개최하게 되었다. <점프 컷>이라는 제목을 단 개인전에서 임민욱은 한국의 산업화 근대화 문제를 구체적으로 건드리는 메시지를 던지며 미술의 사회적 책임을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근자에는 과거의 팀 형태가 아닌 ‘임민욱’이라는 이름으로 작업하는 것에 대해 그는 “임민욱은 그저 이름일 뿐이다. 그러나 이름 석자 밖에 내걸 게 없는 단독자로서, ‘어떻게 하면 겸허하게 나를 낮출 것인가’를 고민하는 임민욱은 작업 속으로 내장시켜 오히려 질식을 피하려하는 것이다”면서, “공동 작업이 ‘사랑의 행정화’를 가져왔다면 개인 작업은 아무 것도 없을 때 시작되는 윤리적 질문과의 싸움이다. 최근 혼자서 진행하는 작업 방식은 작가적 신화나 욕망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세상의 고통을 알고 있다고 나서지 않아도 여전히 타자로부터만 확인되는 나를 스스로 키우거나 줄이거나 하려는 형태이자 고민의 장치이다”라고 답했다. 그리고 이번에도 역시 필자가 앞으로 곱씹을 만한 말을 덧붙였다. 울지도 웃지도 못하는 상황일 때 대응할 수 있는 미덕은 부정과 긍정이 아닌 ‘인정’, 그리고 도덕과 윤리의 차이를 인식한 상태에서 가능한 ‘침묵’이라고.

-naver <한국인-미술가> 시리즈 -기사보기 http://navercast.naver.com/korean/artist/1180
Ho
2009/11/12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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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Adoptive Dissensus
<바자> 12월호에서 "구입하고 싶은 미술작품"에 대한 짧은 글을 부탁해서 쓰게 되었다. 근데 500자를 원고지 5매로 알아들은 데다가, 쓰다보니 1.5매 더 쓰게 되었다. 아직 책이 안나왔지만 대략 많이 짤릴 것으로 예상된다. 어쨌든 임민욱 작가의 에스오에스를 중심으로 썼다는 것만 전달되면 그만이다. -----------------------------------------------------------------------------
미술잡지에서 일을 하다보면 정말 수많은 작품을 보게 된다. 가령 베니스비엔날레를 갔다 치자. 전세계에서 마련해 놓은 국가관만 해도 100곳을 훌쩍 넘고, 각 국가관마다 작품이 10개만 나왔다손 쳐도 이미 1천개의 작품을 본 셈이다. 그 뿐인가. 아르세날레에서 열리는 본전시와 특별전에 나오는 작품 500점, 베니스 시내에는 세계 최고의 컬렉터 프랑수아 피노가 잘 나가는 작가들의 ‘신상’만 모아 놓은 미술관이 두 곳이 있으니 또 100점 추가요! 그래도 사고 싶은, 갖고 싶은 작품은 없었다. 본디 기자는 소유욕이 없어야 한다는데, 최고의 명성을 떨치는 작품을 봐도 ‘저 작품은 꼭 갖고 싶다’는 생각이 든 적이 전혀 없다니, 이건 좀 너무하다. 설치 작품이 주를 이루는 ‘비엔날레형 아트’가 아니라 팔리기 위해 나온 ‘아트페어형 아트’를 봐도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정말 ‘갖고 싶은 작품’이 나타났다. 그건 올해 3월의 일이다. 평소 급진적이고도 예측불허의 작업을 발표해온 임민욱이 한강으로 사람들을 초대했다. 이제 막 시작하는 연인들의 촌스러운 데이트장소, 바로 한강유람선 선착장으로 말이다. 작가는 유람선 한 척을 빌려 약 한 시간 남짓 관객을 태우고 유람에 나섰다. 유람선의 출발과 함께 선장은 환영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한강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놓았다. 한강 다리들을 순서대로 통과하면서 유람선 바깥의 특정 장소에 작가가 미리 준비해둔 비전향 장기수 출신 보안관찰 대상자, 갈 곳 없는 연인, 거울시위대들의 퍼포먼스가 벌어졌다. 잘 짜인 각본처럼 일어나는 일련의 상황들은 관객들은 선내 좌석에 앉아 가만히 보기만하면 되었다. 그러나 정적인 관람법과 달리 관객(나)의 마음속은 여러 가지 교감들이 얽혀 요동치고 있었다. 나는 처음으로 느낀, 이 감동을 영원히 소유하고 싶었다. 그 이후로도 그 날만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저릿저릿했다. 그러나 지난 봄, 딱 이틀 동안만 열렸던 이 공감각적 작품을 어찌 다시 볼 수 있고, 가질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작가는 당시 퍼포먼스를 촬영, 편집해 비디오 작업을 남겼다. 그리고 그 비디오는 현재 어느 미술관에서 상영되고 있으며, 또한 어떠한 컬렉터는 그 비디오 영상을 갤러리를 통해 구매했다고 한다. 내가 사고 싶은 건 결국 잔해가 아니라, 비디오 영상도 아니고 똑같은 퍼포먼스를 재현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이른 봄의 을씨년스러웠던 ‘그 날 밤’을 소유하고 싶다. 결국 나는 가질 수 없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Ho
2009/11/12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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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더풀 픽쳐스展
세상 참 좋아졌다. 미술가도 TV 버라이어티 프로그램에 나오는 세상이다. 영화 <팩토리걸> 덕분에 ‘앤디 워홀’ 쯤은 “아, 그 미국에서 마약하고 ‘팩토리걸’이랑 이용해 먹은 현대미술가” 정도는 대답할 수 있다. 미술이 대중화된 요즘,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그림은 무엇일까? 일민미술관에서 열리는 <원더풀 픽쳐스>전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국내에서 ‘화가’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는 174명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아 놓고 보면, 자연스럽게 유행과 유형이 파악되기 때문이다. 그동안 미술이라는 영역은 참으로 고독했다. 음악이나 무용은 노래나 춤 같은 인간 고유의 유희적 본능 때문에라도 비교적 친근한 예술 분야다. 그러나 미술은 굳이 붓을 들어야 하는 부수적이고도 지적인 특성 때문에 무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그래서 미술가들은 대중들과 친해지기 위해 여러 가지 모습으로 스스로를 변모시키고 어필하려고 노력해왔다. 설치미술, 공공미술, 환경미술, 미디어아트 등 새로운 매체와 기술을 동원해 보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림은 미술의 바탕이다. 조각을 할 때도 에스키스를 그려야 하고, 영상이나 사진을 다루려 할 때도 기본적으로 이미지(그림)에 대한 감각이 갖춰져 있어야 한다. 특히 관객 입장에서는 ‘미술’이란 곧 ‘그림’으로 등식을 깨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그림이란 무엇일까? <플란다스의 개>에서 주인공 네로는 삶의 마지막에 꿈에 그리던 루벤스의 그림을 보면서 행복한 죽음을 맞는다. 일반적으로 ‘그림’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절한 대상은 못 될지라도 그림은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어렸을 적 엄마 아빠를 그려 보이거나, 좀 더 커서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낼 때 글로 다 표현하지 못한 마음을 종이 한켠에 그림을 그려 넣기도 했다. 그리고 어른이 되어서는 새 아파트를 장만하면 빈 거실 벽면을 보면 ‘그림 하나 놓을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게다가 그림은 보관과 이동이 간편하기 때문에 전문적으로 미술 작품을 사 모으는 사람들에게 그림은 소유물 혹은 재산이 될 수도 있다. 이번 전시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미술의 ‘원형’을 찾아내려고 한다. 미술의 다양한 얼굴 중에서 가장 보편적인 표현 방식이고, 친근한 영역인 ‘그림’의 매력을 되짚어 보는 것이 이번 전시의 목적이다. 1, 2층으로 된 전시장에 들어가면 빈 벽이 없을 정도로 빽빽하게 그림이 걸려 있어 그 전시 전경 자체가 놀라움이다. 낯설기만 한 디스플레이는 사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보면 미술관 ‘원형’의 모습이다. 르네상스 시대, 진귀해 보이는 물건(박제, 민속품, 그림)을 한 방 안에 몽땅 몰아 놓아 구경하던 ‘호기심의 방(Cabinet of Curiosities)'이 오늘날 미술관의 시초였다. 대개 작가 한 명의 작품 세계를 찬찬히 보여주거나, 특정한 주제를 정하고 그에 걸맞은 작가들을 초대하는 것이 요즘 전시를 만드는 일반적 방식이지만, 이번에는 미술관의 역할이 좀 다르다. 그저 멍석을 깔아줄 뿐이다. 사실 174명의 작가를 한두 가지의 가늠자를 두고 보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다. 전시를 위해 미술관 학예팀에서는 국내 20~40대 작가들을 성실하게 리서치하면서 1차적으로 800명을 확보했고, 그 중에서 어렵게 선별한 작가가 현재 참여 작가들이다. 출품작의 수만큼이나, 그림의 스타일도 각양각색이다. 인물화와 풍경화, 추상화와 구상화, 유화와 수채화, 동양화와 서양화 등으로 무궁무진하다. 또한 전시장 입구에 따로 마련된 공간에서는 소위 ‘이발소 그림’이라 불리며 무시 당했던 삼각지 지역의 화랑(표구사)에서 사온 작품들도 걸려 있다. 수많은 작품 중에서 당신의 눈을 사로잡는, ‘원더풀 픽쳐스’는 무엇인가? 화려한 꽃이 그려진 그림, 앙증맞은 캐릭터들을 그린 그림, 예쁜 여자를 그린 그림…. 미술관에서는 관람객을 대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작품을 고르는 앙케트를 실시, ‘그림’을 매개로 관람객과 소통을 시도한다. -<주간동아> 711호 CULTURE 기고 원문
Ho
2009/11/1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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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하사탕展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현대미술관. 국가에서 설립하고 운영하는 미술관이라는 점에서라도 과연 합당한 말이다. 따라서 한국을 세계에 알리는 일은 국립현대미술관이 맡고 있는 주요 역할 중 하나일 것이다. <박하사탕>전은 그런 측면에서 “임무완수!”를 우렁차게 외치고 있다. 이 전시는 ‘한국미술의 세계화’라는 모토를 달고 국립현대미술관 강승완 학예연구관이 기획하여, 2007년과 2008년에 걸쳐 칠레 산티아고현대미술관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미술관에서 성공리에 전시를 마치고 돌아왔다. 그리고 현재 개관 40주년을 맞아 과천에서 귀국보고전이 열리고 있다. 중남미 지역은 한국과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서로 생소하기는 하지만, 경제적인 교류에 힘입어 양국 간의 관심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게다가 군부 독재 체제의 종식과 민주화로 이어지는 유사한 현대사를 겪으면서 정서적 이해의 폭도 넓다고 파악된다. 중남미 지역에 본격적으로 한국미술을 알린 <박하사탕>은 첫 번째 시도임에도 불구하고, 탄탄한 기획력과 엄선된 작품을 바탕으로 현지에서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냈다. 특히 2007년 칠레 일간지에서 그 해에 가장 주목을 받았던 7대 전시에서 상파울로비엔날레를 제치고 1위로 꼽힌 일은 가히 한국현대미술이 이뤄낸 쾌거라고 일컬을 만하다. 또한 아르헨티나의 한 매체에서도 “<박하사탕>전은 한국미술의 핵심 키워드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이다. 한국의 미술작품들에 대한 풍부한 파노라마를 보여줄 뿐만 아니라, 절정기를 맞고 있는 한국미술이 세계현대미술계에 제시하는 흥미로운 여러 제안들과 큐레이팅의 기준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라고 보도한 바 있다. 귀국전은 앞서 중남미에서 열린 전시보다 훨씬 큰 규모로 마련되었다. 23명의 참여 작가수는 그대로 유지하되, 보다 넓어진 장소에 맞게 50여점을 추가시켜 총 140여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물론 전시의 기본 틀은 변하지 않았다. 제1부 ‘메이드 인 코리아’는 1980년대가 남북분단, 군사주의, 민족주의, 자본주의 등의 이데올로기가 경직된 모습으로 정착된 시대였다면, 1990년대에는 세계화 시대로 진입하면서 보다 유연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음을 배경으로 깔고 있다. 이 섹션에는 강용석, 김홍석, 배영환, 서도호, 송상희, 옥정호, 전준호, 조습이 출품했다. 제2부는 참여작가 임민욱의 작품명이기도 한 ‘뉴 타운 고스트’라는 제목을 달고 도시 개발과 산업사회에 따라 변화한 생활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한 작품들을 대거 소개한다. 특히 경제 발전이라는 미명 아래 경시되어 왔던 환경, 인권, 여성, 소수자 문제와 아울러 비주류 문화를 직설적으로 건드리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참여작가로는 공성훈, 김기라, 김옥선, 박준범, 오인환, 임민욱, 정연두다. 제3부는 ‘플라스틱 파라다이스’. 구성수, 권오상, 김두진, 김상길, 이동욱, 이용백, 최정화, 홍경택의 작품은 1990년대 이후 대중 소비문화가 폭발하면서 전근대/근대/탈근대가 다층적으로 공존하는 한국 특유의 메커니즘과 혼종 양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세 가지 섹션의 개념 틀은 한국을 잘 알지 못하는 외국인들에게 제공되는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전시작들은 섹션뿐만 아니라 시각과 청각,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들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 관객들은 어떤 점에 주목해서 전시를 봐야할까? 우선 이번 전시를 본다면 근 몇 년 간 국내외의 주요 전시공간이나 비엔날레에서 주목 받았던 작품을 한 자리에서 보며 2000년대 한국미술을 총정리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미술관의 중앙홀 천정 전체를 붉은 천으로 덮어 버린 서도호의 <계단>, 플라스틱 파라다이스 섹션에서 최정화가 근래 열을 올린 플라스틱 바구니 작업 대신 내놓은 <신사숙녀 여러분>, 지난 봄 딱 이틀 동안 한강유람선을 탄 승객만 볼 수 있었던 프로젝트를 영상으로나마 볼 수 있는 <S.O.S-Adoptive Dissensus> 등이 주목할 만하다. 그 밖에 박준범, 옥정호, 권오상, 이동욱 등이 올해 새롭게 제작한 작품을 처음으로 보는 것도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즐거움이다.
-<주간동아> 710호 CULTURE 기고 원문 -기사보기 http://weekly.donga.com/docs/magazine/w ··· 1_1.html
Ho
2009/11/1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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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에서 보내온 사진
볼수록 마음이 훈훈해진다.
Ho
2009/03/2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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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한 달 기자간담회
질문을 올려주시면, 대신 물어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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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9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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