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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tegorized under art in culture* & written by Ho
출판형 아트 활동 보고서
미술과 출판은 오래 전부터 뗄 수 없는 관계로 서로 공생해 왔다. 미술계에서 가장 보편적인 출판물은 전시 도록일 것이다. 1년 동안 열리는 전시의 횟수만큼 수많은 도록이 발간된다. 물론 여기에는 홍보를 위한 엽서나 리플릿도 포함된다. 도록은 ‘전시’라는 한시적 형식에 대한 기록물이자, 기획의 목적과 의도를 활자화시킴으로써 미술사적 알리바이 역할을 맡기도 한다. ‘남는 건 도록밖에 없다’는 말이 있듯이, 전시기획자나 작가가 전시 도록 제작에 큰 애착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원로 작가는 자신의 평생 작품을 한 권의 책으로 모으는 화집, 즉 ‘카탈로그 레조네’(Catalogue Raisonne)를 만드는 일을 작가 일생에서 큰 영예로 여긴다. 그러나 우리 미술계에서 도록 문화가 오늘처럼 일반화되기 이전에 이미 미술은 출판 매체를 통해 널리 보급되곤 했다. 출판이라는 메커니즘과 가장 관련 깊은 장르는 바로 문학이다. 문학은 기본적으로 텍스트에 기반하고 있는 예술 행위지만, 그 텍스트를 모아 ‘책’이라는 형태로 제작하려면 미술과의 만남이 불가피했다. 바로 이미지 때문이다. 과거의 미술은 표지화는 물론 삽화 등으로 문학과 만나면서 출판 메커니즘에 ‘슬쩍’ 기대어 발전해 나갔다. 그 만남의 시간만큼,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라는 도식은 이제 상투적일 만큼 보편화되었다. 여기서 파생해 표지의 원화를 전시하는 정도가 가장 적극적인 두 장르의 만남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과거 미술과 문학의 만남이 지금의 일러스트 업계처럼 분업적인 방식으로 이루어졌던 것은 아니다. 한국 근대미술사를 되살펴보면, ‘문화 예술’이라는 이름 아래, 미술인과 문인 등이 동인이 되어 문예운동을 벌이거나(김복진의 KAPF), 문사적 취향을 배경으로 한 친교(구본웅과 시인 이상, 나혜석과 소설가 이광수의 인연처럼)의 산물이 많이 남아 있다. 아예 미술인들이 수필 시집 소설 등을 발간한 예도 있다. 대개 화가들은 자전적 에세이나 그림을 책으로 묶어 발간했고, 미술평론가는 문학을 통해 등단한 경우도 적지 않아 평론 활동을 겸하면서 본래의 특기를 살려 시집이나 소설책을 펴내기도 했다. 이우환과 방혜자 등의 수필집, 오광수와 윤범모의 시집, 최울가의 그림일기, 김병종의 화첩기행, 한풍렬의 카툰 에세이 등 미술인들의 문학적 재능을 엿볼 수 있는 출판물도 아주 많다. 이러한 사례들을 모아 얼마 전 〈미술인의 운문과 산문〉전(2009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이 열리기도 했다. 이 전시에는 희귀본인 월북화가 김용준의 《근원수필》(1948) 초판본, 고유섭의 《전별의 병》(1958), 이중섭의 편지를 모은 책 《그대에게 가는 길》, 천경자의 수필집 등 작가와 이론가들이 쓴 시집과 수필집 80여 권이 선보였다. 역시 미술과 문학의 ‘만남’의 예에서 가장 흔한 방식은 미술가가 그린 표지화나 삽화일 것이다. 고희동과 배운성이 그 대표적인 예로 근대 화가들이 문학지의 그림을 맡는 일은 당시 아주 흔한 일이었다. 이 분야에서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는 김환기로, 그는 특히 1950년대에 가장 활발하게 표지화를 그렸다. “나는 신문 잡지에 커트 같은 것을 그리는 데도 땀을 뻘뻘 흘린다. 번번이 약속 기일을 넘기는 것도 성의가 없어서가 아니라 재미난 생각이 안 나고 잘 되지가 않아서이다”(1963년 4월《현대문학》)라는 말처럼 그는 청탁에 의한 수동적인 접근이 아니라 본격적인 작품에 임하는 태도로 접근했다고 전해진다. 실제로 그가 그린 표지화나 삽화를 보면 해당 책의 내용을 반영한 오브제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김환기 유화 특유의 추상적 패턴으로만 그린 것도 많다. 환기미술관에서는 이따금씩 이런 표지화와 장정을 모아 기획전을 개최하며, 작가의 이러한 특색에 따라 현대 북아트 전시도 열곤 한다. 그 밖에 〈목판화 출판미술〉전(2007~2008 제비울미술관), 〈문인과 화가의 만남, 책과 그림〉전(2008 청계천문화관) 등에서 미술가의 표지화들을 모아 전시했다. 이러한 ‘문학과 미술의 만남’은 점점 그래픽디자인이나 북아트, 일러스트레이션 등으로 전문화되어 그 사례가 줄어들고 있지만, 여전히 여러 미술가들에 의해 그 역할이 지속되고 있으며 젊은 작가 중에서는 아르바이트 삼아 동화책이나 잡지의 일러스트 작업을 겸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작가 고낙범이 2003년 《지그문트 프로이트》 전집 20권의 표지를 그린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꼭 그림이 아니어도 조습, 옥정호 등의 작품이 《월간 문화연대》의 표지로 쓰였던 것처럼 설치미술, 사진 등 다양한 시각 이미지로 확장되었다. 그러나 2004년 쌈지스페이스에서 개인전 〈무형경제〉전을 열며 《노트북》이라는 책을 펴낸 이슬기는 시인 이원의 글과 자신의 작업을 담아내면서 “이원 시인의 시와 저자의 미술 작품이 융화되지 않음을 감상할 수 있다”는 말로 이 책을 소개하는 것처럼 미술과 만남의 ‘만남’은 쉬우면서도 또 어려운 일이다.
미술과 출판이 만나는 또 하나의 갈래는 북아트 장르다. 북아트는 실크스크린을 기본 매체로 한 인쇄물을 소량 발간하거나 혹은 예술제본이라는 독자적 분야로 전개된다. 여기서는 판화를 전공한 미술가들의 활약이 크다. 1999년 발간된 《예술가가 만든 책》은 고충환 김찬동 임영길이 공동 기획하여, 미술가들의 책 만드는 행위를 ‘대안적 판화의 모색’으로 수용하고 있다. 이 책에는 판화가를 포함하여 강애란 박화영 신장식 오이량 윤동천 정상곤 등 58명의 미술가를 참여시켰다. 참여작가들은 ‘책’이라는 소재에 다양한 방식으로 접근하고 있는데, 판화가들은 대개 디지털 기법을 사용한 새로운 판화의 흐름을 선보였으며 순수미술 작가들은 책을 ‘오브제’로만 받아들이는 등 본격적으로 출판의 프로세스를 수용한 작품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한편 기획자 고충환은 그의 글에서 아트북, 아티스트북, 아트북메이킹의 정의를 영미권과 프랑스의 경우를 참고하면서 ‘책’을 조형적 대상, 혹은 오브제로서 인식시키려는 시도를 했다. 한편 art in culture는 그 이듬해인 2000년 3월호에서 ‘책 속의 책’ 혹은 ‘잡지의 패러디’라는 개념으로 특집 〈Artist's Book〉을 마련했다. 작가들이 스스로 페이지 컨셉트를 잡고 디자인에 적극 참여하도록 해, 국내 최초로 대량 인쇄매체가 가지는 재료와 기법의 한계를 수용하면서 파격적인 잡지 생산 시스템을 시도했다. 이때 참여한 고낙범 김두섭 김홍석 이중재 노석미 홍지연 이윰 서상아 총 8명의 작가들은 ‘책’에 대해 훨씬 현대적인 개념으로 접근, 흥미로운 작업을 선보였다. 그러나 이 특집에서는 여전히 판화와 책이 갖는 공통분모에 주목하고, 판화의 연장선상으로 이해하고 있음이 일부 발견된다. 처음에는 같은 곳에서 출발했을 법한 북아트 장르는 1권 혹은 10권 이하 소량으로 제작하는 독자적인 예술 행위로 점차 미술과는 다른 길로 전개된다. 북아트와 관련된 연구소와 공방, 협회까지 설립되고 있음이 이를 대변해 준다. 또한 비슷한 시기 유럽과 미주로부터 북아트 작품을 들여와 전시하기도 하고, 한 권에 몇 백만 원씩 하는 고가의 아트북도 수입되어 유통되기 시작했다. 특히 2005년 설립된 국내 출판사 마로니에북스는 타셴사의 〈베이직아트〉 시리즈 64권과 파이돈의 〈The Art Book〉 시리즈 등의 판권을 정식으로 허가를 받고 번역해 내고 있다. 북아트도 아트북도 아닌, 출판물을 이용해 현대미술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한 대표적인 사례는 (주)쌈지에서 발행한 〈쌈지북 프로젝트〉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출판물을 이용한 예술적 시도가 기업 메세나 차원에서 시작된 것이 흥미롭다. 1998년 가슴시각개발연구소에 맡긴 《쌈지스포츠》 첫 호는 〈여름 生生〉으로 주제를 잡았다. 이 책에는 쌈지의 브랜드 정신과 신상품을 소개하는 카탈로그의 성격도 있지만, 그러한 요소는 지극히 일부이며(천호균 전 쌈지 대표의 글 2페이지가 전부) 지면을 이루는 대부분의 사진에서는 모란시장 살바 낙원상가 등이 촬영 장소로 쓰이는 등 작가 최정화의 색채가 강하게 묻어난다. 같은 해 창간한 《쌈지책》 시리즈는 《쌈지스포츠》보다 훨씬 완벽한 이미지북의 성격을 띠고 있다. 독자들이 보낸 이미지를 조합하여 만드는 방식으로 이 책에서도 가슴개발연구소가 많은 부분 기여했으며, 안상수의 참여도 눈길을 끈다.
2000년을 넘어 서면서 다양한 형태의 출판 프로젝트들이 작가들에 의해서 본격적으로 등장하기 시작한다. 노석미나 현태준처럼 정식 출판사를 통해 ‘베스트셀러’에 등극한 사례도 있지만, 그보다 주목할 만한 움직임은 ‘자가 출판’으로 출발하는 인쇄물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기존의 출판사가 작가를 섭외하거나 반대로 작가가 원고를 들고 출판사에 의뢰하는 식이 아니라, 작가가 스스로 기획부터 제작과 유통까지 맡는 것이다. 사실 이러한 움직임은 예술적이든 사업적이든 ‘거창한 목표’보다는 매체의 확장에 따라 대량 제작과 이동성이 유리한 인쇄물로 작가들이 눈을 돌린 데서 시작됐다. 또한 작가들이 삼삼오오 모여 협업 체계로 작업을 하는 분위기가 조성된 데다 컴퓨터의 보급과 인디자인이나 포토샵 등 편집이 비교적 용이한 프로그램이 개발된 상황도 한몫했다. 작가들은 스티커 버클 찌라시 엽서 포스터 같은 단순한 인쇄물부터 이미지북 드로잉북 사진집 수필집 잡지 등 제본을 한, 제법 책의 격식을 갖춘 출판물을 만들어 냈다. 특히 이 시기를 뜨겁게 달군 공공미술의 맥락을 실행하는 데 출판하는(Publish) 것만큼 공공의(Public) 성격이 강한 매체도 없었다. 마치 삐라나 전단지처럼 인쇄물은 일반인에게 보급하기 쉬울 뿐더러 급진적 메시지를 담기에도 적합했다. 그 효시는 2000년 제3회 광주비엔날레에서 외국인 방문객을 위한 관광안내 책자로 발간된 《Rolling Stock》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자를 제작한 작가는 임민욱이 참여한 ‘피진기록’ 팀이다. 이 책은 한국의 사회문화적 특질 중 구르는 이동성(Rolling)에 주목, 아기 업은 엄마부터 포장마차 지하철 배 등 온갖 ‘탈 것’에 대한 이미지와 텍스트를 모았다. 이후 2004년 임민욱이 작가 프레드릭 미숑과 함께 조직한 ‘피진컬렉티브’에서는 보다 적극적으로 출판물을 이용했다.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이 (식민지 등에 의해) 토착 어휘들과 결합되어 만들어진 단순한 형태의 혼성어를 뜻하는 ‘피진’(Pidgin)이라는 팀 이름이 말해 주듯, 피진컬렉티브는 공식화되지 않은 언어들 ‘풀뿌리 정신’의 거친 메시지들을 담아낸다. 《피진버스투어:가리봉동》은 《Rolling Stock》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관광 가이드 책자의 형식을 띠고 있다. 마스터인쇄 등 저예산으로 제작된 출판물이지만, 액티비즘적인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며 ‘소통’의 기능에 충실한 책이다. “5714번 시내버스의 노선에 따라 이동해야 한다” 등의 행동 강령에 따라 가리봉동 공단 지역을 안내하는 이 책자는 개발주의의 어두운 이면을 들춰내며, 소외된 도시 풍경을 사회적 철학적 컨텍스트로 가져온다. 이러한 시도는 이후 《피켓》 《스크랩북》 등의 작업뿐만 아니라, 하자센터 교육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학생들과 함께 가리봉동에 이어 영등포, 창신동 등의 안내책자를 제작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이때 제작된 인쇄물은 집에서 프린터를 이용해 인쇄하거나, A4용지를 반으로 접어 B5 사이즈의 판형을 만들고, 직접 스테이플러를 박아 제본하는 등 매우 소박한 형태의 자율출판물, 에디션프린트가 대부분이다. 한편 피진컬렉티브는 인미공 아카이브가 창설될 무렵 기관의 비전과 방향을 구성하는 자문으로 참여했다. 이때도 피진컬렉티브는 ‘바코드’를 벗어난 비주류의 유통망을 따르는, 그래서 쉽게 소개되지 않았던 해외 작가들의 출판물을 리스트에 올렸다. 이후 프레데릭 미숑은 작가 윤사비, 여다함과 함께 ‘AC퍼블리싱’을 조직했다. 물론 AC퍼블리싱에서 제작한 출판물 대다수는 역시 전문적인 편집 기술 없이 필요 없는 노래가사집, 플립북 등이다. 그 동안 이곳에서 제작한 책은 10권 내외, 혹은 훨씬 더 많을 수도 있다.(매우 유동적인 조직이기에 이들의 출판물 수를 정확하게 세는 것이 어렵다.) 2001년 배영환이 제작해 노숙자에게 무료 배포한 〈노숙자 수첩〉도 공공미술의 성격이 강한 출판물의 대표적 예로 소개할 수 있겠다. 이 수첩에는 무료급식소 숙소 화장실 병원 등 노숙자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생활 정보가 수록돼 있으며, 노숙자의 80%가 알코올 중독자인만큼 자가건강체크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이 프로젝트는 2006년 한 일간지에서 거대한 공공 조형물을 제치고 ‘공공미술 베스트 5’에 꼽히기도 했다. 최근 배영환은 〈도서관 프로젝트〉를 벌이고 있다. 컨테이너 박스 형태의 도서관을 제작해 농어촌 같은 소외 지역에 공급하는 프로젝트다. 작년 3월 〈플랫폼 서울〉의 일환으로 아트선재센터에서 목재와 골판지로 만들어진 도서관 설계 모델을 전시 형태로 선보인 후, 5월 경기도미술관에서 처음으로 실행시켰다. 한편 수첩이라는 비슷한 외형의 출판물로, 작가 최소연의 공공미술 팀 ‘접는 미술관’에서 2006년 제작한 《명륜동》 《청파동》 등의 시리즈가 있다. 이 수첩은 주민 참여 워크숍과 공공미술 제안 드로잉 전시 등의 과정을 통해 8명의 연구원들과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주제별로 만들었다. 흥미로운 점은 수첩 끝 부분에 크레딧 난에 “이 수첩은 복제와 배포를 적극 권장합니다”라고 적혀 있는 것이다. 적어도 이 출판물에 있어서 오리지널리티는 완전히 사라졌다.
작가들은 기본적으로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한다. 메모지나 냅킨, 이런저런 종이에 그린다. 생전에 박이소도 설치미술을 하는 젊은 작가에게도 “평소 드로잉을 해라”고 종종 일렀던 것처럼, 작가들의 드로잉은 아이디어 스케치이자 이미지로 된 스테이트먼트이기도 하다. 단, 드로잉의 ‘가벼운’ 특성상 보관이 어렵고, 낱장으로 있어 서사 구조를 읽어내는 데 불편하다. 또한 그 수많은 드로잉을 모두 액자에 끼워서 전시하기도 어렵다. 그래서 작가들은 드로잉을 모아 책으로 묶어내곤 한다. 이는 단순히 마음에 드는 드로잉을 무작위로 고르기보다는, 어떤 주제를 놓고 그리거나 배열함으로써 책 위에서 펼쳐지는 또 하나의 개인전이 된다. 작가 이주요는 2000년 《일단 한 번 눕기만 하면》이라는 책을 펴냈다. 키 작은 작가가 서구 사회에서 살면서 일상적으로 겪게 되는 어려움에 대한 대안을 고안하여 수록한 책이다. 또한 2002년 《가습과 난방》이라는 책은 실내 공기뿐 아니라 사람의 몸 자체를 따뜻하게 하는 방법, 촛불을 이용해 몸을 덥힐 수 있게 고안한 온열 기구 등을 실었다. 2005년 《Two》에서는 작가가 1999년 이후 3년간 겪어 온 근육통을 해소하기 위해 시도했던 마사지 방법을 소개한다. 큐레이터 김현진은 이주요가 펴냈던 일련의 드로잉북을 두고 다음과 같이 언급한다. “책은 아무래도 짧은 시간 존재했다가 사라지는 전시보다는 시공간의 제약을 덜 받으면서 많은 사람들과 만날 수 있다. … 비교적 개인화된 매체라는 점에서 책 작업은 친밀하고 구체적인 관계 형성에 의미를 부여하는 작가의 성향에 부합했다.” 사실 이러한 개인적인 성향은 많은 작가들에게 해당될 것이다. 작업실에서(작업실 없는 작가들은 자기의 방에서) 외톨이로 틀어 박혀 조용히 드로잉을 하는 작가의 모습이란 얼마나 전형적인가? 그 밖에 작가 김을과 김태헌의 드로잉북이 주목을 받았고, 젊은 작가들 중에서는 김혜나 최은경 등도 전시를 겸해서 드로잉북을 출간한 바 있다. 드로잉북을 펴낼 때 글을 함께 써서 싣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표적인 예는 안규철을 들 수 있다. 안규철은 2001년 《그 남자의 가방》에서 발표한 글과 그림 중 일부를 2004년 로댕갤러리 개인전에서 전시하기도 했고 같은 제목의 산문집을 같은 해 ‘현대문학’에서 다시 펴낸 바 있다. 남화연의 《작전하는 희곡》 《제3세계 심포니》 등도 비슷한 구성을 띠고 있다. 한편 그림 없이 오로지 글만 써서 책을 내는 경우도 있는데, 작가 김범의 1997년 《변신술》은 이미지 없이 텍스트로만 국문, 영문, 일문, 중문으로 출간되었다. 그의 또 다른 책 《고향》은 〈도시와 영상: 의식주〉전(서울시립미술관, 1998)에서 “고향이 어디인지 모르시는 분, 고향을 알아도 감추고 싶어 하시는 분, 어딘가 작은 산촌 같은 곳이 고향이었더라면 하시는 분”을 위해 제작됐다. 전시에서 광고 전단지를 보고 작가에게 엽서를 보낸 관객에게 무료로 선물했던 《고향》은 이제 좀처럼 구하기 어려운 ‘희귀본’ 중 하나가 되었다. 그 이후 박주연 김주현 박화영 구민자 김영은 김범 유병서 등 최근 텍스트로만 책을 내는 작가가 꽤 많아졌다. 특히 최근에 발간된 《본문 없는 주석》은 미술가들이 직접 쓴 소설을 모은 책이다. 기획자는 “텍스트를 드로잉으로 사용하는(것처럼 보이는) 16명의 작가들에게 ‘글쓰기’의 의미을 살피면서, 매체 전환에 따른 상상력의 활성화와 전환을 꾀했다”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러한 작가의 글들은 어쩌면 전시장을 찾은 관객보다 많은 수의 독자를 확보하게 되면서도, 전시장에 놓인 작품처럼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아직 시각예술 중심의 미술 현장에서 작가의 텍스트를 평가할 만한 가늠자도 없을 뿐더러, 미술저널에서 조차도 이러한 사례를 다루기가 방법적 측면에서 어렵다. 그렇다고 해서 문학계의 주목을 받는 것도 아니다.
이렇게 공공미술의 방편으로 출판물을 활용하거나, 글과 그림을 모은 책 외에도 ‘인쇄’라는 매커니즘을 살려 프로젝트화하는 출판물 아트의 형태는 너무도 다양하다. 카테고리화하기에 애매모호한 점도 많고 여러 가지 특성이 동시적으로 드러난 경우도 많다. 가령 작가 Sasa[44]는 지독한 수집증과 편집증으로 정평이 나 있는데, 그가 평소에 모은 음식점 영수증, 은행의 순서대기표, 영화표, 교통카드 사용 집계, 통화 내역 등을 ‘연감’으로 모아 2006년부터 매년 내고 있다. Sasa[44]는 2006년 《쑈쑈쑈: 쇼는 계속되어야 한다를 재활용하다》 책자를 시작으로 ‘슬기와 민’과 박미나의 협업으로 《A Revised Inventory of Curating Degree Zero Archive》(2007), 《Heavy Metal (News) Around the World》(2008), 《人事書》(2009),《Our Spot: Tokyo》(2010) 등 여러 권의 책을 출간한 바 있다. 또한 작가 홍승혜는 평론가 배리 슈왑스키와 공저의 시집 《Ways》와 플립북 《말나무》, 작품집 《Method of Space Cultivation》(2007)과 《Organic Geometry》(2009)를 펴냈다. 서울문화재단에서 지원한 《지금 여기 서울》(2005)과 미디어버스가 제작한 《공공 도큐멘트: 서울》,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발행한 《+82》와 《커뮤니티 프로젝트》 등은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 활동가들이 워크숍을 기반으로 한 활동 사항을 ‘출판물 아트’로 정리한 경우다. 미술평론가 반이정이 작가 최경태와의 협업으로 대안공간풀에서 열린 경원대 졸전에 서양 고전 명화를 포르노그라피로 패러디한 책자 《예술에 있어서 외설적인 것에 대하여》(2003)도 특이한 사례이며, 《D.T》의 1,2권은 디자인 분야로 분류되어 있지만 미술평론가 임근준 이영준과 작가 구동희 잭슨홍 김상길 박윤영 이동기 권오상 등이 참여해 책 위에서 다양한 실험을 펼쳤다. ‘출판물’을 이용한 작업들은 이제 미대생들의 졸전 작품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신진 작가들 사이에서 트렌드화되고 있다. 특히 이들에게는 포트폴리오를 대신하는 홍보물의 역할도 되어 주고 있으니 일석이조다. 이렇게 출판 프로젝트의 다양화, 활성화 현상을 목격한 작가들은 전시 도록이나 화집을 만들더라도 책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출판 프로젝트가 될 수 있도록 제작하기도 한다. 양혜규의 2009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도록과 《절대적인 것에 대한 열망이 생성하는 멜랑콜리 》는 한 작가의 개인 저작물이라기보다는 동시대 미술의 흐름을 읽는 단행본에 가깝다. 또한 우순옥 양아치 김주현 임흥순 김상돈 등은 전시 도록이면서도 하나의 기록물이나 전시의 배경을 이루는 스크립트로 기능하고 있다. 이러한 양상은 물론 전시를 만드는 기획자들 사이에서도 종종 발견되는데, 아예 출판물 자체에 주목하는 급진적인 전시도 기획되었다. 2004년 큐레이터 최빛나가 아르코미술관에서 기획한 〈이것은 연애편지가 아닙니다〉전은 참여 작가들에게 전단지를 제작하게 해, 전시 기간 동안 대학로 주변에 배달되는 신문에 이 전단지들을 끼워 배포되도록 했다. 또한 2008년 갤러리팩토리에서 개최된 〈출판_기념회〉전은 ‘선출판, 후전시’라는 방법으로 작가들에게 각자 출판물을 먼저 만들고, 그 부산물로서 전시를 여는 것이었다.
현재 ‘출판물 아트’의 필드에서 가장 뜨거운 분야는 독립잡지다. 사실상 위에 기술한 다양한 형태의 출판물 아트의 축약본이라고 봐도 무방하다. 독립 잡지(혹은 대안 잡지)는 문화예술 전반으로 주제를 확장, 사진 드로잉 글 그래픽디자인 등 지면에 담을 수 있는 모든 것을 수록하되, 광고를 받지 않고 비영리에 가깝게 운영되고, 매니아층을 위해 소규모로 정기/비정기로 발행되는 책들을 일컫는다. 이러한 움직임의 시초는 1990년대 후반 평론가, 이론가 등이 글을 모아 잡지 형태로 발간하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 1998년 후반 온라인 게시판에서 확대된 《포럼A》는 동시대 미술과 사회 문화 전반을 잇는 교량 역할을 하며 새로운 담론의 창으로 큰 역할을 했다. 미술평론가뿐만 아니라 작가, 문화활동가 등 다양한 이들의 의견을 개진하는 소통의 창이었다. 실질적으로 《포럼A》를 제작했던 대안공간풀에서는 현재 보다 가벼운 포맷으로 《6페이지》를 제작하고 있다. 2004년 미술평론가 김장언 김현진, 작가 양혜규 이주요, 디자이너 별이 조직한 ‘우적’(Friendly Enemies)은 2005년 비정기 간행물 준비호 《마돈나 루이자 베로니카 치치오네》를 발행했다. 이 잡지는 변모하고 있는 국제 미술 현장과의 상관 관계 속에서 국내 현대미술의 제 문제를 짚어 냈다. 잡지는 우적의 멤버들이 실제로 만나거나 온라인 채팅 등에서 나눈 대담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 재미있는 점은 화자를 따로 적지 않고 전체 텍스트가 ‘콜렉티브 라이팅’이라는 방식을 최하고 있다. 이 간행물은 이후 2007년에 2-1호를 국문과 영문으로 출간했다. 《워킹 매거진》은 2006년 여름 현시원 안인용 황사라가 창간, 지금까지 7권의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젊은 예술가들과 함께 사회적, 문화적 이슈에 대한 작업을 하면서 ‘작가-작품-독자’가 직접 소통할 수 있는 창의적인 방법을 찾고자 하는 데서 출발하고 있다. 또한 갤러리팩토리에서 발간하는 비정기 간행물 《VERSUS》는 작가 최승훈, 박선민이 아트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이 잡지는 특집이나 주제 없이 제호처럼 ‘이미지 vs. 이미지’ ‘텍스트 vs. 텍스트’ 등 두 가지를 병치시켜 보여주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또한 2009년 계원디자인예술대학 내 H-Center에서 발행하는 《양귀비》는 ‘디자인 저널’을 표방하고 있지만 첫 호의 주제 ‘지리 정보와 지리 감각’에서 느껴지듯이 작가와 디자이너, 인문학자와 디자인 연구자, 공학자들이 참여하는 문화지라고 볼 수 있다. 그 밖에 젊은 디자이너, 문화예술 애호가들이 교류의 통로로 제작되는 독립 잡지들은 홍대 앞 등에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한다. 그 가운데 《가짜잡지》 《칠진》 《Nazine》 《쎄진》 《원피스》 등은 비교적 고정적인 발행 기간과 두터운 애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독립잡지는 태생적으로 영세한 프로세스와 저예산 등의 문제로 운영에 곤란을 겪기 일쑤다. 대형 서점에 입고되기 어려워 유통에 곤란을 겪던 중 최근에는 이러한 출판물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곳이 생겨나고 있다. 아트선재센터의 더북숍, 효자동의 헌책방 가가린, 대학로의 이음 등이 있으며, 온라인숍 유어마인드(www.your-mind.com) 등에서 판매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독립 출판의 생태를 발전시키기 위해 소규모 출판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 전시나 북페어를 개최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출판물 자체의 수집과 보관에 대한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김달진자료박물관, 아르코미술관의 인미공아카이브, 원서동의 인문학박물관 등이 주목 받고 있다.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커미셔너를 맡았던 주은지는 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어떤 나눔: 공공 재원〉 프로젝트를 마련, 주은지의 개인 소장 도서와 전세계 곳곳에서 활동하고 있는 동료와 기관들에게 기부한 자료들이 모아 ‘자가 구성된 도서관’(Self-organized Library)을 아트선재센터에서 9개월간 꾸렸다. 현재 이 도서들은 한국예술종합학교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책은 시작과 끝이 있는 무엇이며, 독자가 들어가서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심지어 길을 잃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 하나의 출구를, 혹은 여러 개의 출구를 찾는,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 가능성을 찾는 공간이다.”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의 말처럼 책은 미술가에게 자유로운 공간이며, 무한한 우주가 되어준다. 앞으로 출판물은 어떤 모습으로 또 다시 진화하며 새로운 예술을 담아낼 것인가. 출판물 아트의 행보를 ‘독자’로서 지켜만 볼 일이 아니다. 지금 바로 당신도 ‘저자’가 될 수 있다.
-artinculture 2010년 3월호 특집 <Publising Art> 중에서
Ho
2010/03/10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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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련
지난 달 9일, 아트선재센터에서 ‘뉴욕현대미술관 최초 한인 큐레이터’로서 정도련이 강연을 열었다. 이날 강연은 250석의 좌석을 훨씬 넘는 380여명의 신청자가 몰릴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 자칫 ‘한국인의 미국 성공 신화’를 읊기 십상인 자리었지만, 정도련은 오히려 오랜 해외 생활로 퇴화된 한국어 실력에 대한 양해를 부탁하며 발표를 시작했다. 그리고는 <악기 연주를 배우는 것처럼: 큐레이팅과 미술기관>이라는 주제로 미리 정리해 온 발제문을 차근차근 읽어 나갔다. ‘악기 연주를 배우는 것처럼’이라는 말은 정도련이 과거 근무했던 워커아트센터의 관장이 자주 사용하던 표현이라고 한다. 2005년 증축을 마친 미술관은 시각적으로는 훌륭한 건축물이었으나 실제로 그 공간을 전시장으로 사용할 때는 여러 가지 문제가 많았다. 여기 저기서 터져 나오는 스태프들의 불만에 관장은 “새 건물은 새 악기처럼 길들이고 소리를 내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법이다”라고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참으로 단순한 비유이지만 큐레이터로서 막 성숙기를 거쳐 가고 있던 그에게는 기억에 남은 말이었다고 한다. 또한 워커아트센터와 MoMA를 악기에 비유한다면 자유분방한 아코디언과 화려하고 다소 고압적이기까지 한 그랜드피아노를 꼽으면서 “이제 새로운 악기를 손에 넣었으니 제대로 배워서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MoMA라는 중압감과 경직성을 탈피하고 싶다” 강연을 마친 소감에 대해 물었다. “막상 강연을 하고 보니까, 사람들이 MoMA에 대해 갖고 있는 상징적 의미가 얼마나 큰지 알 수 있었고, 그래서 중압감이 더 크게 느껴졌던 것 같습니다. 제가 있는 위치가 어쩔 수 없이 단순화되고 상품화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거리감도 들었구요.” 현대미술의 도시 뉴욕, 그리고 그 뉴욕의 중심에 있는 미술관 MoMA. 1929년 창립되어, 현재까지 15만 여점의 소장품을 가지고 있는 이 미술관은 현대미술을 모르는 이도 뉴욕 여행을 가면 꼭 찾는 랜드마크다. (연 관람객수가 200만 명을 상회하고, 흥미롭게도 외국인 관람객 중에서 한국이 3위를 차지한다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제가 MoMA로 옮긴 것을 두고 승진 혹은 출세했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오히려 저는 MoMA가 가진 경직된 인상 때문에 그쪽에서 제게 제안이 들어왔을 때도 그 기회에 확 달려들지 못했었습니다.” MoMA의 학예팀 구성은 회화와 조각, 드로잉, 판화와 삽화, 사진, 건축과 디자인, 미디어와 퍼포먼스까지 총 7개의 부서로 나뉘어 있고, 정도련은 가장 핵심적이라고 할 수 있는 회화조각 부서에 소속되어 있다. “특히 회화조각 부서라는 점이 더욱 경직된 인상을 가장 많이 주었어요. 그러나 막상 안에 들어와 보니 그 구조가 매우 유연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MoMA 내부에서는 생각보다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일한 지 100일이 좀 지났는데요, 지금은 그 모든 일에 익숙해지는 단계인 것 같아요.” 그가 요즘에 MoMA에서 하는 일은 비서구 국가의 전후 미술을 연구하는 것이다. 일본의 영화와 미술 분야를 시작으로 중요한 마니페스토나 평론 문서들을 분석하며 연구자료집을 출판해 내는 것이 1차 목표. 뿐만 아니라 MoMA가 어떻게 하면 글로벌하게 발전할 수 있을지에 대한 비전과 대안을 세우는 것도 그의 몫이다. MoMA의 수장고는 서구 모더니즘 미술품으로만 점철되어 있을 듯하지만, 사실 MoMA는 오래 전부터 아시아, 동유럽, 남미 등 비서구의 미술에 대한 연구와 수집을 진행해 왔다고 한다. 다시 말해, MoMA는 다른 지역에 분점을 세우는 방식이 아닌 컨텐츠의 교류를 통한 ‘내적인 글로벌화’에 미래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MoMA가 정도련을 영입한 이유도 아마 미술관의 이런 특징 때문일 것이다. 정도련은 이미 워커아트센터에서 한국, 중국, 일본 출신 작가의 대규모 개인전을 성공적으로 기획한 바 있다. 가장 최근의 전시부터 언급하자면, 이번 서울 강연을 마치자마자 뉴욕이 아닌 미네아폴리스로 날아가야 했던 이유이자, 워커아트센터에서 마지막으로 기획한 전시 <양혜규: 온전한 내부자>이다. 사실 양혜규가 워커아트센터에서 전시하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다. 역시 정도련이 기획했던 <Brave New Worlds>전은 17개국 24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대규모 전시로, 한국 작가로는 양혜규와 김홍석이 참가했었다. 또한 지난 해 열렸던 <쿠도 테츠미 회고전: 메타모르포시스의 정원>은 1935년에 태어나 1999년에 사망한 일본 작가의 미국에서의 첫 개인전이자 회고전이었다. 한편 2005년에 기획했던 <황용핑 회고전: 신탁의 방>은 미국, 캐나다 등지를 순회하고 2008년 올림픽에 맞춰 베이징에서 다시 열리기도 했을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아시아를 넘어 선 큐레이터 “MoMA에서 아시아 미술의 스페셜리스트로서 저를 영입한 것은 맞을 겁니다. 그러나 제가 현대미술에 관한 일반적인 지식과 능력을 키우지 않고 오로지 아시아 미술에만 집중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거에요.” 정도련이 워커아트센터에서 소개했던 한국, 중국, 일본 출신의 작가들도 마찬가지다. 비서구 출신, 즉 ‘타자’로서 아시아 작가들은 서구 모더니즘과 아방가르드의 장구한 흐름 속에서 ‘특수성’과 ‘보편성’이라는 두 끈을 쥐고 그들의 예술적 신념을 단련시켰을 것이다. 그리고 정도련은 큐레이팅을 통해 그들의 존재 방식과 태도를 자연스럽게 배웠을 것이다. 사실 ‘특수성’과 ‘보편성’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은 큐레이터의 기본 조건이다. ‘진행자이면서 번역가이고, 역사가이면서 편집자’라는 정도련의 정의처럼, 큐레이터는 전문성을 주장할 수 있으면서도 보편성을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하는 사람이다. 특히 독립 큐레이터가 아닌 미술관에 소속된 큐레이터라면 더욱 그러하다. “큐레이터는 보물을 찾는 사냥꾼이 아닙니다. 작가의 커리어를 만들고 작품의 가격을 올리는 딜러나 경매상은 더더욱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큐레이터가 하는 역할은 담론을 개발하고 포장하기 위한 매개자입니다. 저는 미술관을 장애물로 생각하지 않고, 그렇다고 이용만 하는 악기로 생각하는 것도 아닙니다. 미술관도 새로운 것을 발견할 수 있는 도구로 생각하고 제 역할에 임하고 있습니다.” 큐레이터에 대해 확고한 철학이 있는 정도련에게는 비슷한 일을 하면서 서로에게 힘이 되고 함께 꿈을 키워가는 친구들이 있다. 뉴욕 뉴뮤지엄의 주은지와 LA 레드캣의 클라라킴이다. 한국계 미국인인 이들과는 대학, 대학원 시절 처음 만나 친구가 되었고, 첫 전시를 함께 기획하기도 했었다고. 이제는 각자 다른 성격의 기관에서 경력을 쌓으며 영향력을 키워가고 있다. 신뢰를 바탕으로 한 소중한 친구들과 끊임없이 고민하고, 토론하고 그것을 발전시켜 실체화시킬 수도 있는 지금의 상황이 참으로 감동적이라고 그는 말한다. 한편 정도련은 1년에 한두 번 한국에 방문하면 작가들을 만나곤 하는데, 오랜 시간동안 만나지 못해 매번 아쉽다고 한다. 그러나 그 역시 시간과 경험이 축적되면 ‘조우’를 넘어선 ‘기회’로 발전되곤 한다. 내년 LA레드캣에서 클라라킴과 공동 기획하는 <박찬경, 션 스나이더 2인전>이 좋은 예이다. 리서치를 기반으로 냉전에 대한 작업을 해온 두 작가를 처음 미국에 소개하는 전시다. “이런 주제의 전시를 해야겠으니, 당장 이번에 한국에 들어가면 어떤 작가를 물어와야겠다, 라는 식의 생각을 하지는 않아요.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네트워크를 넓혀나가면서 관심 있는 작가들과 ‘일’로써 친해질 기회를 만들어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트인컬처 2009년 10월호 <핫피플> 원문 기사보기 http://www.artinculture.kr/content/view/595/31/
Ho
2009/11/12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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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성 엄마는 싫어요
백남준의 회고전이 또 한 번 열렸다. 물론 백남준의 전시는 세계 곳곳에서 끊이지 않고 열린다. 백남준의 이름으로 헌정된 아트센터가 있는 한국에서나, 그렇지 않으면 교과서에도 실렸다는 일본에서 그의 전시가 열리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다름 아닌 중국 베이징에서, 그것도 매년 수천 명의 작가를 배출하고 있는 중앙미술학원에서 백남준의 회고전이 열렸다는 것은 그 의미가 조금은 다르게 다가온다. 이번 전시는 독립큐레이터 문인희가 기획한 전시다. 특히 그는 백남준의 유작 <엄마>에 등장하는 세 소녀의 실제 ‘엄마’이기도 할 정도로, 말년의 백남준과 각별한 인연이 있었다. 그런 그는 이번 전시의 제목을 <백남준: Vision and Television>이라고 짓고, 대형 비디오 설치작품 3점과 싱글채널비디오 9점, 임영균 작가가 1980년대부터 찍은 백남준의 퍼포먼스 사진 42점을 중국 관객에게 선보였다. 아트페어 등 산발적으로 소개된 것을 제외하고, 본격적으로 백남준을 중국에 소개하는 자리에서 큐레이터는 무엇을 관객에게 어필하고 싶었던 것일까? 이번 전시는 비디오 조각 및 설치 작업보다 영상 작업이 부각된 것이 특징이었다. 특히 <Button Happening>, <Cinema Metaphysique: No. 2, 3, 4>, <Violin Dragging>과 같은 초기 작품을 베이징에서 처음 소개된 것은 더욱 의미 있는 일이다. 또한 데이빗 앳우드(David Atwood), 프레드 바직(Fred Barzyk), 올리비아 태펀(Olivia Tappan)과 공동작업 한 <Experiment with David Atwood>은 80분이라는 긴 분량의 작품을 주목해야 한다. 백남준과 전자공학자인 데이빗 앳우드가 선과 색상의 움직임에 대해 처음 시도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일종의 레디메이드의 이미지에서 발췌한, 최초의 ‘전자 추상’이라고 불릴 만하다. 춤을 추는 듯 미묘하게 변하는 곡선의 형태는 아름다워 보이기까지 하다. 큐레이터가 영상 작업을 집중적으로 가져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 싱글채널비디오 작품이야말로 작가의 의식적인 표현뿐만 아니라, 무의식적인 욕망까지 유형화되어 나오는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백남준 예술의 모든 것을 알고자 한다면, 그의 펼쳐내는 내러티브 방식에 익숙해지는 것이 선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관객들은 일차적으로 대형 설치작품 앞으로 다가간다. 물론 당연한 반응이다. 전시장 한 가운데 우뚝 서있는 <Tower>는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램프코어에 있는 <다다익선>을 떠올리게 한다. 앤틱 텔레비전 수상기와 네온 조명을 탑 모양으로 쌓아 올린 이 기념비적 작품은, 통신과 소통에 대한 백남준의 예술 이념을 함축시킨다. 또한 <In-Flux House>는 백남준이 젊은 시절 심취했던 플럭서스 예술의 단면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52대의 텔레비전 수상기를 통해 플럭서스 퍼포먼스 이미지들이 다채롭게 편집되어 재생되고 있다. 멀리서 보면 집 모양인데, 과연 제목처럼 ‘플럭서스의 집’이다. 또한 지붕에는 레이저디스크의 뒷면을 이용해 만든 무지개빛이 전시장의 아치형 천정에 반사되어 시각적 효과가 더욱 극대화되었다. “여기 온 사람들이 집에 돌아갔을 때 백남준의 이름과 얼굴만이라도 명확하게 기억하게 되었으면 좋겠다”는 큐레이터의 말마따나, 중국에서 백남준과 비디오아트는 아직 낯섦 그 자체였다. 여전히 따샨즈에서는 ‘차이나 아방가르드’ 1세대 작가들과 그의 아류 같은 작품이 즐비했고, 백남준이 시도했던 매체적 실험과 아울러 미술을 넘어선 음악, 퍼포먼스, 철학과의 정신적 교류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한때 전세계적으로 끓어올랐던 중국 현대미술에 대한 관심이 순식간에 내려앉은 이유도 그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미국 및 아시아 등지를 떠돌며 활동하는 큐레이터는 중국 미술계에 대해 싸늘하기보다는 ‘엄마’의 마음처럼 따뜻한 시선을 보내는 듯 했다. 그가 백남준의 예술 세계에서 “인간에 대한 존중과 열린 마음, 그리고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는 당당함”을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특히 <Tiger Lives> 등 영상 작품 대부분에서 등장하는 샤먼적 모티프의 장면들은 한국(아시아) 출신의 작가가 국제적 작가가 되기까지 사유의 근원을 아시아 토착 문화와 사유 방식에서 찾고 있음을 중국 작가에게 전파하려는 큐레이터의 의지가 드러나는 대목이다. 이러한 측면은 백남준이 남긴 말에서도 강하게 드러난다. “매년 10월이 되면 어머니는 1년 동안 액을 떼어내기 위해 무당을 부른다. 혼을 부르는 것이기 때문에 철저히 밤에 이루어지는 예술이 된다. 그 리듬은 싱코페이션(당김음)이 있는, 3박자 5박자 7박자로 이어지는 홀수가 많다. 내가 작곡하면 3박자 5박자로 되는 것은 결국 나의 미술은 한국의 미술, 그중에서도 민중의 시간예술과 춤, 무당의 음악에 가까운 것이다.” 한편 사진작가 임영균이 1980년대부터 기록한 백남준의 퍼포먼스 사진에서는 백남준의 인간미가 그대로 드러난다. 피사체로서의 백남준은 신화적인 모습으로 본인을 이미지화했던 앤디 워홀이나 요셉 보이스와는 달리 자연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백남준의 스스럼없고 가식적이지 않은 성품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이다. 전시장 곳곳에는 42점의 사진 중에서 선택, 확대 인화된 백남준의 모습이 붙어 있어, 중국 관객들이 백남준의 얼굴을 또렷하게 기억할 수 있도록 했다. 결국 큐레이터의 바람대로 백남준은 감성적이고, 부드럽고, 따스하고, 은밀하고, 무의식적이고, 직관력 있는 천진난만한 아이 같은 모습으로 각인될 것이다. 백남준: Vision and Television展 4. 5~5. 5 베이징 CAFA미술관
-art in culture 2009년 7월호 리뷰
Ho
2009/07/16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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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
지난 6월 13일 장충동 만해NGO교육센터에서 미술인들이 모여 <문화예술의 자율성 회복을 위한 미술인 공개토론회>를 개최했다. 이동연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박명학 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사무처장, 이영욱 전주대 교수가 발제를 했고, 청객들이 자유롭게 발언했다. 유인촌 장관의 자진 사퇴를 골자로 내세우고 아르코미술관 및 인사미술공간 운영,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대한 부당한 간섭과 아울러 문화예술정책 전반에 대한 문제를 구석구석 살피는 자리였다. 한편 공개토론회 개최에 앞서 ‘상상력에 자유를!’이라는 모토 아래, 6월 10일부터 인터넷 홈페이지(freeimagination.kr)을 통해 온라인 서명 운동이 펼쳐지고 있다. 현재까지 약 2주 동안 서명인이 1000명을 훌쩍 넘은 상태다. 기자도 역시 서명에 동참했다. 공개토론회 날 만난 한 관계자는 “언론인이 중립을 지켜야지, 서명에 참여하면 어떡하느냐”라는 말을 농담 삼아 건넸지만, 언론 역시 탄압 받는 ‘시국’이 아닌가? 특히 ○○협회, ○○비대위 등의 특정한 주체 없이, 자발적인 단체 행동은 평소 모이는 것을 싫어하는 ‘아름다운 개인주의’의 소유자인 미술인들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이번 서명운동의 배경에 깔려 있는 그들의 간절함은 충분히 설명된다고 봐도 무방할 것이다. 미술계 전반에서는 국립현대미술관장, 한국문화예술위원장 등의 해임 사건부터 미술계에 벌어진 비논리적 행태들이 이어짐에 따라 더 이상 좌시할 수는 없다는 기색이 역력하다. 게다가 각개 분야에서 잇따른 시국선언 등 정부에 대한 불만이 곳곳에서 튀어 나오는 가운데, 미술계는 서명 운동을 지속하면서 문학계나 기타 영화, 대중음악 분야들과 연대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문화예술계와 정치권의 갈등은 앞으로 더욱 고조될 것으로 예상된다. ‘정치적 미술’을 부르짖는 이는 많지만, 정작 실제의 ‘정치’ 앞에서는 경험이 적은 우리로써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미술인들은 ‘상상력에 자유를!’ 웹사이트에 현 정부에 저항하는 작업을 제작해 올리거나, 개인 블로그에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있다. 정치적 저항 행동으로는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으나, 공개토론회에서 한 청객의 말처럼 ‘주도하는 특정 단체 없이, 젊은 사람들에 의한’ 자발적 변혁이 이루어지는 과정이라는 점에서 과거의 방식보다 진일보한 것으로 보인다. 단지 아쉬운 것은 유명 감독이나 배우들이 나서서 포털사이트에서 이슈가 되는 영화계의 ‘언론 플레이’가 이곳 미술계에서는 좀처럼 이루어지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특히 총천연색 작품을 하는 어떤 이는 이럴 때는 유독 ‘회색’으로만 일관하고 있으니 말이다. -art in culture 2009년 7월호 <기자의 눈-상상력에 자유를!>
Ho
2009/07/16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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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s is so temporary(not contemporary)!
작가 티노 세갈(Tino Sehgal)은 2005년 베니스비엔날레 독일관에서 작품 <This is so contemporary!>을 발표한 바 있다. 얼핏 전시장 지킴이로 보이던 퍼포머들은 약속한 듯 일제히 “This is so contemporary!"를 외치며 춤을 춘다. ‘동시대’ 혹은 ‘당대’ 미술로 번역되곤 하는 컨템포러리 아트. 어렵다는 이유로 일반 대중들에게 천덕꾸러기가 된 이 아이를 애지중지 보살펴서 키워내는 곳이 바로 대안공간이다. 한국 대안공간 역사의 시작을 두고 1998년과 1999년 사이에서 다소 혼란을 겪기도 하는데, 그 이유는 1998년 암사동에서 먼저 문을 열었던 쌈지스페이스 때문이다. 그에 반해 ‘대안공간’이라고 명시한 풀과 루프라 오픈한 것은 1999년. 그래서 통시적으로 그 시작을 1999년이라고 친다면, 올해는 ‘한국 대안공간 10주년’의 해이다. 10주년을 맞는 지금, 대안공간의 풍경을 두루 살펴보면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우선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산하기관으로 운영되었던 인사미술공간(이하 인미공)이 사실 상 폐쇄되었다. 인미공은 2009년 5월 1일자로 기관 운영혁신 차원에서 아르코미술관과 통합 운영된다. 작가 인큐베이팅, 아카이브운영 등 그간 인미공의 사업들은 아르코미술관에서 수행하게 되며, 2011년까지 임대 기간이 남아 있는 동안 외부 기획 전시지원 공간으로 운영될 예정이다. 이러한 논의가 위원회에서 일어나기 시작할 즈음 미술관련 인터넷 게시판에는 인미공 폐쇄를 막아달라는 청원 글이 올라왔다. “제도 기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존재하면서 서로 경쟁도 하고, 색깔로 만들어내면서 예술계에 다양한 숨구멍들을 만들어주어야 할 것입니다.”(정헌이) “아르코미술관의 계획대로 ‘대관 공간’이 될 운명에 있는 인미공은 그 이름만 있는 껍데기에 불과할 것이니까 말이죠.”(남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원회는 인미공의 기능을 아르코미술관으로 흡수하는 방침을 굽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인미공의 ‘기능’이란 무엇이었을까? 사실 쉽게 정의 내리기는 어렵다. “미술판에서 가장 문화수준이 높은 곳. 우리가 쉽게 접하기엔 좀 거리가 느껴지고, 그 곳에서 하는 일이라는 게 조금은 우리를 긴장하게 하는 그런 곳”(최진욱)이라는 다소 애매모호한 인상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현대미술이라는 것이 그렇지 않은가? 저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왜 하는 것인지 명쾌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을 담아내는 현대미술 공간의 성격 역시 비슷할 것이다. 인미공의 기능 혹은 업적을 구체적인 실적이나 수치로 설명할 수 없지만 적어도 기자는 몇몇 작가 및 해외 행사와 관련된 구하기 어려운 자료를 찾고자 할 때면 인미공으로 갔고, 워크숍이나 공연 등의 행사에 찾아가면 요즘 해외에 돌아가는 이야기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소식통이었다. 그래서 기자 또한 인미공의 부재가 아쉽다. 2000년 인사동에서 개관한 이래 펼쳐왔던 여러 가지 프로젝트와 이슈는 작은 씨앗이 되어 미술계 곳곳에서 자라나고 있다. 인미공에서 발간하던 잡지 《볼》 역시 10호를 마지막으로 최근 폐간됐다. 또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홍대 쪽에 운영하던 다원예술매개공간도 지난 2월 말 문을 닫았다. 미술인을 위해 만들어진 공공 미술기관이 공공(이용자, 다시 말해 미술인)의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도 없이 문을 닫았다. 한편 인미공보다 조금 먼저 문을 닫은 쌈지스페이스는 공공 기관이 아닌 한 기업의 문화사업처였다. 그래서 운영 주체의 결정을 두고 왈가왈부할 수 있는 사항은 아니다. 그럼에도 일종의 사랑방 역할을 톡톡히 해온 쌈지스페이스의 폐관에 대해 아쉬워하는 이가 많다. 홍대 앞이 젊은 예술의 메카로 등극하기까지 쌈지스페이스는 그 초석을 닦은 터줏대감이었으며, 다리가 아프면 부담 없이 스튜디오에 들러 작품의 뒷얘기(작가의 작업 과정)을 가감 없이 보고 들을 수 있었다. 그 밖에 몇몇은 외부 사업으로 확장시키며 운영비를 충당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의 대안공간은 올라가는 임대료와 예산 부족으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국내의 대표적인 대안공간으로 손꼽히던 두 곳의 연이은 폐관과 더불어, 공공 기금의 단절로 인해 일명 ‘대공넷’으로 불리던 ‘비영리전시공간협의회’의 운영도 쉽지 않다. 2006년, 2007년 국제적 규모로 개최된 바 있는 AFI 행사는 작년부터 열지 못하고 있으며 홈페이지도 공사 중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이 있지만, 하루아침에 있다가 사라지는 대안공간의 아트씬은 ‘Contemporary’가 아니라 꽤 ‘Temporary(일시적인, 임시변통의)’해 보인다. 이제 ‘대안’이라는 말은 공간보다 문화에 붙이는 게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이즈음, 차라리 이러한 ‘Temporary’적 속성을 춤추듯 즐기며 새로운 전략을 짜는 게 나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야말로 암중모색이다. -art in culture 2009년 5월호 프리즘
Ho
2009/05/13 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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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세상이 예술을 바꿉니다"
새 정부에서는 보수 성향을 숨김없이 드러내고, 언론법은 개악으로 치닫고 있는데, 기자라고 이 지면에서 중립을 지킬 필요가 있을까? 다소 ‘장르 이기주의’로 비칠 수도 있겠지만, 국립현대미술관장에 이어 벌어진 지난 12월 5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김정헌 전 위원장의 해임 사태에 대해 미술인의 입장에 가까이 서서 바라보고자 한다. “이전 정권의 정치색을 가진 문화예술계 단체장들은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나는 것이 자연스럽다.” 지난 해 3월, 유인촌 문화부장관의 이 발언은 “문화예술의 독립성 보장을 위해 문화예술위 위원은 문예진흥법에 따라 결격 사유에 해당하거나 심신상 장애로 직무를 수행할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의사에 반하여 면직되지 아니한다”는 조항보다 효력이 있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위원장 말고도 한국언론재단 이사장, 국민체육진흥공단 이사장, 한국방송광고공사 사장, 한국문화관광연구원 원장, 국제방송교류재단(아리랑TV) 사장 등 15곳의 전임 기관장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사임했다. 한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신문유통원의 경우 전임 기관장이 임기를 채웠지만, 후임 기관장으로 각각 뉴라이트 단체인 자유주의연대 운영위원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대변인실 자문위원을 지낸 사람이 맡아 논란이 일기도 했다. 지난 연말, MBC 프로그램 <100분 토론> 400회 특집에서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장관은 “정권이 바뀌었으니, 보수 정치는 마땅히 존중 받을 자격이 있다”면서, “하지만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아무리 미운 놈이 있어도 때려서 내쫓으면 안 된다. 적법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문화부에서 ‘특별 감사’를 통해 밝힌 김정헌 전 위원장의 해임 사유는 영 석연치 않다. 먼저 문화예술위가 메릴린치 증권 등에 700억 원을 예탁해 101억 원의 평가 손실을 냈다는 사유는, “상대평가를 통해 C등급 이하는 투자하지 않는다”는 규정이 없고, 경제 한파로 인해 문화부의 관광기금마저도 손실이 났으니 타당한 근거가 될 수 없다. 그보다도 안타까웠던 해임 사유는 전시공간 제공 목적으로 지원받은 방송발전기금 10억 원 중 3억 원을 당초 목적과 다르게 작가 주거용 빌라 임대에 썼다는 것, 그리고 아르코미술관의 카페 운영 사업자를 경쟁입찰이 아닌 수의계약으로 선정했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 미술계의 특수성과 전문성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판단이다. 우선 전자의 경우를 짚어보자. 바로 인사미술공간이다. 인사미술공간은 처음 인사동에 가나아트갤러리 소유의 인사아트센터를 거쳐, 학고재 건물에 있었다. 그러나 점점 상업화 관광화되어 치솟는 임대료 때문에 원서동으로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게 되었다. 지금 들어가 있는 건물은 원래 10억 원짜리 매물이었다. 그런데 뒤늦게 문화예술위에서는 재산을 소유할 수 없다는 규칙이 불거져 나와 전세로 돌려 7억여 원에 계약하게 됐다. 여기서 생겨난 차액으로 인사미술공간 뒤편 건물을 추가 임대해 작가들의 레지던스로 사용하게 한 것이다. 덕분에 인사미술공간, 아르코미술관의 전시와 행사에 온 해외 작가들은 따로 숙소를 마련할 필요가 없었다. 그 후 해외 전시를 자주 여는 다른 기관에서도 빌라 운영을 따라할 정도로 좋은 선례가 됐다. 후자는 테이크아웃드로잉 아르코점의 이야기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성북동에서 먼저 자리를 잡아 적극적인 기획을 선보이던 프로젝트형 갤러리 까페다. 테이크아웃드로잉 대표 최소연이 작가이자 기획자로서 참여했던 공공미술 프로젝트 <접는 미술관>은 2006년 문화예술위가 제정한 ‘올해의 예술상’에 선정되기도 했다. 다시 말해 아르코미술관에 입점한 테이크아웃드로잉은 ‘요식업주’가 아닌 미술단체로 봐야 마땅하다. 테이크아웃드로잉이 들어온 이후 각 전시 컨셉트에 맞는 오프닝리셉션을 달리 열 수 있었고, 최근 열린 <안규철 테이블>전도 좋은 반응을 얻었다. 결과적으로 아르코미술관 지하 1층과 2층 전시장과 떨어져 있어 그동안 자료실이나 부대전시실 등으로 쓰이며 정체성이 애매했던 공간이 비로소 독립적인 예술 장소로 탈바꿈했다. 사실, 이 모든 내용은 많은 미술인들이 이미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정헌 전 위원장은 3년의 임기 중 15개월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고, 뒤이어 백지숙 아르코미술관장과 박명학 사무처장은 각각 사직, 면직 처리됐다. “예술이 세상을 바꿉니다”라는 문화예술위원회의 표어는, 이제 주어와 목적어의 위치를 바꾸어야 할 듯하다. 위원회-사무처-미술관의 수장이 한 순간에 날아가 버린 지금 상황은 우리 미술계에 적지 않은 정신적 실질적 박탈감을 안겨 준다. 상대적으로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 공연계 때문에 더 그럴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공연계에 활력을, 국민에게 감동을!’이라는 제목으로 기자회견까지 직접 개최한 유인촌 장관. 그의 집권 이후, 각종 문화예술 관련 행정기관의 중심이 공연 분야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느낌을 좀처럼 지울 수 없다. -art in culture 2009년 1월호 프리즘 ----------------- 이후 돌아가는 상황 1.험한 사냥을 마치고 난 개에게 고기를 던져 주듯, 기무사 건물을 턱하니 내줬다. 2.인미공의 초청장을 한번도 못 받아보셨다고 아예 문을 닫으라고 하는 건 좀...주소록 수정만 하라면 될 것이지.
Ho
2009/01/16 21:17
2009/01/16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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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페이 비엔날레
연이어 열린 광주, 부산의 비엔날레 프레스 프리뷰에서 쌓인 피로를 풀기도 전에, 기자는 다시 짐가방을 싸야 했다. 목적지는 대만의 수도, 타이페이. 베이징올림픽 덕분에 세계의 이목이 한껏 몰려 있던 중국 본토에 비해 상대적으로 긴장감이 떨어질 뿐만 아니라, 나라에 대한 기본 정보부터 부족해 더욱 멀리 느껴지는 곳이다. 국기가 무슨 색인지도 모르고, 대통령(나중에 알고 보니 총통 체제)이 누군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당대 국제 미술계에서 대만의 위치는 어디이고, 또한 그들은 어떻게 비엔날레라는 국제 미술행사를 그들의 토양에 맞게 번역했을까.
실속파 ‘휴먼 스케일’ 비엔날레 올해로 6회를 맞는 타이페이비엔날레의 감독은 만레이 수(Manray Hsu)와 바시프 코르툰(Basif Kortun)이 공동으로 맡았다. 각각 대만과 터키에서 태어났지만 유럽을 주무대로 활동하는 이들의 ‘궁합’은 역시나 잘 맞았다. 이들은 그동안 국제 미술계를 온몸으로 겪으며 유럽 혹은 미국으로부터 축적된 콤플렉스와 매너리즘을 동시에 날려버리려는 듯했다. 우선 두 감독이 직접 선정한 참여작가 리스트에서부터 그런 의도가 드러난다. 30명(팀)의 참여작가 중에서 레바논 루마니아 터키 슬로바키아 슬로베니아 사이프러스 이스라엘 한국 대만 등 동유럽, 중동, 아시아 권역의 출신 작가가 많았으며 상대적으로 미국, 중국은 적었다. 심지어 일본이나 프랑스, 영국처럼 국제 미술계에서 귀족 대접을 받던 나라의 작가는 찾아볼 수 없었다. 국적뿐만 아니라 경력 면에서도 소위 ‘비엔날레 작가’라고 불리는 작가를 선택하지 않은 것 또한 두 감독 간에 사전 협의된 사항이 아닐까 싶다. 실제로 한국에서 참가한 두 작가 역시 타이페이가 첫 비엔날레였다. 참고로 최원준은 만레이 수가 인사미술공간에서 발굴했고, 구민자는 바시프 코르툰이 심포지엄 참석 차 쌈지스페이스에 방문했을 때 섭외됐다고 한다. 비엔날레 취재 일정은 오전의 프레스컨퍼런스부터 시작됐다. 인포데스크로 기자 등록을 하러 갔더니 홍보팀 직원이 보도자료, 프레스카드, 엽서 등이 들어 있는 프레스킷과 함께 작은 종이 상자를 건넸다. 상자를 열어 보니 샌드위치와 음료수가 들어 있었다. 하루 종일 진행된 비엔날레 투어 일정 중 따로 점심시간이 잡혀 있지도 않았다. 간간히 버스로 이동하는 시간을 틈 타 각자 먹고 싶을 때 먹으면 됐다. 오찬과 리셉션, 파티로 이어지는 먹고 마시고 떠드는 ‘투어’로서의 비엔날레와는 다른 모습에서 기자는 여타의 비엔날레와 다른 분위기를 예감했다. 십여년 전 바시프 코르툰은 캐롤리 테아와의 인터뷰에서 “여행객처럼 한 전시에서 다른 전시로 뛰어 다니고, 같은 사람들을 보는 전문가들에게 비엔날레는 만만한 경기장이다. 그러나 별 효과가 없다”(《큐레이터는 세상을 어떻게 움직이는가?》 김현진 옮김, 원제 foci)면서, 비엔날레 신드롬을 지적한 바 있다. 단지 넉넉지 않은 비엔날레의 접대비용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혹시 코르툰의 지시로 도시락을 싸게 된 것은 아닐까? 의외로 해외에서 초대된 큐레이터들은 행사 전반에 디테일하게 관여하는 편이다. 언론사에게 참여작가 당 단 한 컷의 이미지만 허락했거나, 어느 사진작가에게는 액자까지 다시 해오라며 간섭했던 광주의 오쿠이 엔위러 감독을 보라. 사회 분위기를 반영하듯 동시대 미술 현장에서도 대만이 중국 본토에 밀리는 것은 어쩔 수 없어 보였다. 상하이비엔날레나 광저우트리엔날레를 들려온 미국 기자에게 듣자니 오프닝에 온 해외 기자단이나 미술관계자들의 숫자도 현저히 적었다고 했다. 물론 광주, 부산과도 비할 바가 못 됐다. 다시 말해 ‘잔치집’ 분위기가 덜 났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이미 비엔날레의 들뜬 분위기에 쩔어 있던 기자에게, 소박하면서도 실속 있는 타이페이비엔날레는 오히려 신선하게 느껴졌다. 감독의 인맥을 자랑하는 듯한 ‘셀러브리티’ 대신 참여작가들이 대부분 프레스오프닝에 참석했다. 감독, 참여작가, 기자 모두가 함께 미술관에 전시된 작품을 하나하나 둘러봤다. 또한 두 감독이 번갈아가면서 작가 및 작품 설명을 했고, 출품작가의 인터뷰와 관객(다른 참여작가와 기자)의 코멘트도 즉석에서 이루어졌다. 너무나도 ‘모범적인’ 모습에 처음에는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이렇게 심도 있는 투어가 가능했던 것은 무엇보다 행사 규모가 작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부터 타이페이비엔날레가 ‘휴먼 스케일의 비엔날레’라는 말을 강조하면서 관람자가 현대미술의 난해함에 매몰되지 않고 섬세하게 경험할 수 있도록 배려한다던 말의 의미를 그제서야 알 수 있었다.
신자유주의에 대항하는 예술 행위 광주와 마찬가지로 타이페이비엔날레의 주제는 없었지만 ‘주제 없음’을 통해 비엔날레 전시 방법론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던 제스처는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제 없이도 광주가 탈식민주의를 암시했다면, 타이페이는 신자유주의에 맞서 일어나는 복잡다단한 양태들을 주목했다. 미술관 로비에서부터 ‘인터내셔널 마니페스토’를 외치는 강렬한 ‘테러 액션’으로 시작했다. 2005년 조지 부시가 아르헨티나에 방문했을 때 처음 조직된 인터내셔널 에러리스타(International Errorista)라는 이 그룹은 구호, 삐라, 깃발 등 테러리스트의 외형을 취함으로써 자본 시스템과 권력 구조에 균열을 일으킨다. 마치 뱅크시를 연상시키는 그래피티 작업을 하는 대만작가 비브라더(Bbrother)는 미술관 한 벽면을 군인 보호색(일명 개구리복 패턴)으로 가득 채웠다. 또한 스코틀랜드 출신의 로드릭 부차난(Roderick Buchanan)의 작품 <Here I am>은 군악부대의 연주 연습 모습을 다소 유희적으로 비디오로 보여줬다. 전시장 곳곳에 산발되어 있었지만, 군사적 모티프를 삼은 작품들의 반복적 배치는 자본주의 일상 속에 각기 다른 모습으로 존재하는 (공)권력을 고발하는 듯했다. 이런 점에서 한국작가 최원준이 참여한 것은 일견 필연으로 보인다. 여의도공원 아래 아직도 원형의 모습에 가깝게 남아 있는 대형 벙커를 찍은 <Un finished_Island> 시리즈와 야산, 뉴타운 등에서 우연히 발견되는 위장된 군사시설을 찍은 <Under cooled> 시리즈는 자본화와 세계화 속에서도 여전히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국가주의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몽타주와도 같다. 그럼에도 국가주의가 붕괴되는 장면은 여기저기서 포착된다. 거대 자본의 유입과 다국적 기업화 현상은 물론, 불법 이주노동자와 “베트남 처녀와 결혼하세요!”의 국제결혼 같은 개별적 이동도 막을 수 없는 현실이다. 구민자는 <직업의 세계>라는 작품을 위해 대만 현지에서 이주노동자를 자처했다. “몸이 튼튼하고, 영어와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자신을 써 달라”는 구인광고를 들고 타이페이 시내를 누볐다. 결국 그는 어느 대만 할머니의 도우미가 되어 며칠간 할머니의 일거수일투족을 도우면서 돈을 벌었다. 비엔날레를 준비하면서 구민자는 타이페이에서 장기간 체류하게 됐다. 직업을 구하러 다니면서 또한 작가의 눈에 띈 것은 바로 타이페이의 독특한 창문 양식이었다. 보안과 미관의 기능을 동시에 수행하는 다양한 양식의 철창을 한데 모아 미술관의 큰 창에 설치한 작품 <비밀 정원>은 현지 사람들에게서 큰 인기를 끌었다. 대만 작가 유 쳉타(Yu Cheng-ta)는 타이페이에 체류 중인 외국인들을 섭외해 그들에게 대만어를 가르쳐 낭독하게 하는 비디오를 출품했고, 슬로베니아에서 온 그룹 어윈(Irwin)은 현장에서 비공식적 국가 NSK(Neue Slowenische Kunst)의 여권을 발급하는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미국 작가들로 구성된 IAA는 일명 ‘로보틱 오브젝터’로 불리는 소형 페인트차가 바닥에 그래피티를 찍어내며 글로벌 시대가 도래한 이후에 벌어지는 재영토화 현상을 재치 있게 표현한다. 그러나 기자의 개인적인 취향 때문인지 몰라도 올리버 레슬러(Oliver Ressler)가 기획한 특별전 <A World Many Worlds Fit>이 보여준 너무나도 직설적인 화법은 오히려 거부 반응을 일으켰다. 반민주적 자본주의의 현상을 고발하는 작품이 대부분이었던 이 섹션에서는 앨런 세큘러(Allen Sekula)의 작품까지 3류 다큐멘터리로 보이게 했다. 다시 본전시로 돌아와서, 다소 진지해 보이는 슬랩스틱 비디오 작업을 한 호주 작가 숀 글래드웰(Shaun Gladwell)이나, 스탈린이나 피카소 등이 등장하는 콜라주 애니메이션을 만든 르네 버그(Lene Berg)같은 재기발랄한 작품이 좋은 기억으로 남는다. 작은 일화를 통해서도 충분히 거대 담론을 엿볼 수 있는 아름다운 가공 능력이야말로 ‘비엔날레용 아트’의 미덕이 아닌지…. 해질 무렵부터 한두 방울씩 떨어지던 빗방울이 저녁이 되어 개막식이 시작되자 마구 쏟아 부었다. 그래도 개막식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비엔날레 개막식은 마잉주 총통이 참석할 정도로 ‘국가 행사’에 버금갔다. 나중에 들은 이야기지만, 이번 비엔날레가 예년에 비해 예산이 많이 늘어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술관뿐만 아니라 맥주공장, 지하철역, 타이페이 아레나, 일본 적산가옥 지대 등 다른 사이트로의 확장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래도 여전히 하루면 모든 전시를 다 볼 수 있다.
아직 척박한 대만의 아트씬 역시 전날 내렸던 비는 예사의 것이 아니었다. 태풍 실라코가 오고 있었던 것이다. 다행히 다음 날은 태풍이 심하지 않아, 타이페이 시내의 전시장을 둘러볼 수 있었다. 대만 아트씬에 대해 거의 백지 상태에서 가장 먼저 찾은 곳은 국립현대미술관 MOCA. 전시장에 들어가기 전에 제일 먼저 들르게 되는 미술관 입구의 사물함이 재밌었다. 사물함이 번호가 아닌 피카소 장팅겔리 미니멀리즘 퓨처리즘 등의 단어로 구분돼 있었는데, 한국에서 온 기자는 주저 없이 ‘리얼리즘’을 택했다. 정작 전시는 실망스러웠다. 미술관에서는 디지털아트페스티벌이 열리고 있었는데,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와 애니메이션 작품이 주를 이루고 있었다. 근대 건축물을 리노베이션한 점과 같은 시기에 미디어시티서울이 열리는 점 등으로 서울시립미술관이 묘하게 오버랩되더니, 신기하게도 그 이후 찾은 공간들에서 ‘한국’과 관련된 우연한 만남이 이어졌다. 미술관을 나와서 국제 레지던스 프로그램 타이페이 아트 빌리지로 향했다. 전체적으로 쾌적하고, 작가들이 작업을 하는 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마침 1층 전시장에서는 한국 입주작가 진시영과 공태윤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다. 그 다음 행선지에서는 대만 젊은 작가들이 자비를 모아 만든 VT살롱이다. 이곳은 오후 2시부터 새벽 2시까지 문을 열며, 간단한 술과 차를 파는 바와 전시장이 혼합된 형태다. 당시 전시 중이었던 작가 우 따쿠언(Wu Ta kuen) 역시 VT살롱을 창립한 멤버 중 한 사람이었다. 마침 그는 광주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감각의 지형>전의 참여작가로 며칠 전 광주에 다녀왔다며 한국에서 온 기자를 반갑게 맞았다. 우 따쿠언은 뉴욕 ISCP 레지던스에 입주한 적이 있어 작가 정연두와 윤정미 등과 알고 지내는 사이였고, 기자와 동행한 다른 한국 작가에게는 “홍대 나왔냐, 서울대 나왔냐”고 물을 정도로 한국 미술계를 잘 알고 있었다. VT살롱에서 몇 걸음 떨어진 IT파크는 1988년 세워진 대안공간으로 타이페이 현지에서 가장 실험적이고 유의미한 전시장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2002년 광주비엔날레 대안공간 심포지엄에 참여했던 IT파크는 한국의 대안공간과 마찬가지로 공간은 협소하지만 많은 작가들을 배출해냈다. 마침 기자가 방문했을 당시에는 잘 알려진 마이클 린(Michael Lin)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었는데, 이 작가 역시 IT파크에서 데뷔했다고 한다. 대만은 기자의 선입견보다 훨씬 가까운 나라였다. 운 좋게도 초행길이지만 헤매지 않고, 중요한 전시공간을 단시간에 섭렵하는 데 만족감에 취해 있을 무렵 문득 딴 생각이 들었다. “과연 서울이라면 하루 만에 주요 기관을 둘러볼 수 있을까?” 불가능한 소리다. 며칠 동안 만난 대만미술 관계자나 작가들이 토로하듯, 대만에는 현대미술을 다루는 곳이 턱없이 부족하다. 타이페이비엔날레에서 대만 작가 양준(Yang Jun)은 작품 대신 타이페이에 현대미술센터를 짓자는 제안서를 냈다. 그 심정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을 것 같다.
-art in culture 2008년 11월호 중에서
 Shaun Gladwell
Ho
2008/12/30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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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못미 이어폰
쌈지가 문을 닫는다. 물론 패션잡화 브랜드 (주)쌈지가 폐점한다는 것은 아니다. 미술인들에게 있어 쌈지는 (주)쌈지 산하의 문화예술 사업 프로그램 이상의 큰 의미가 있는 고유한 미술기관이었다. 1998년 암사동에서 레지던시 스튜디오 프로그램으로 시작된 쌈지는 한국 초유의 본격 레지던시로 주목을 받았다. 쌈지는 2000년 홍익대 부근으로 이전, 전시장 기능까지 대폭 강화된 쌈지스페이스를 오픈하면서, 명실공이 청년미술의 산실로 발돋움 했다. 신진작가의 등단을 촉진하는 <이머징>전, 중진급 작가와 신진작가의 대화와 교류를 유도하는 <타이틀 매치>전, 또한 그 즈음 생겨난 루프, 풀, 사루비아다방, 인사미술공간들과 함께 대안공간의 시대를 일궜다. 특히 쌈지 개관 초기에는 IMF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유학길을 접고 한국에 들어온 신진 작가들이 활동을 시작할 수 있는 발판 구실을 했다. 1기의 손봉채 박혜성 박찬경 이주요 고낙범 김홍석 장영혜 정서영 홍순명, 2기의 유현미 박용석 이미경 김유선 강운 김창겸 정혜승 함경아 안성희, 3기의 유승호 윤주경 오인환 이미혜 이경 김상길 김지현 정연두, 4기의 이상준 윤정미 신미경 레이몬드한 박미나 박경주 구동희 함양아, 5기의 성낙희 플라잉시티 이세정 정수진 44[Sasa] 정정주 함진 이형구, 6기의 홍영인 고승욱 최두수 데비한 최소연 김세진 이슬기 김윤환, 7기의 최진기 정은영 잭슨홍 송상희 성낙영 박준범, 8기의 서동욱 신창용 박지은 손동현 낸시랭 김인배, 9기의 김지섭 권순관 이수경 윤사비 진기종 김혜나 구민자. 이 중 대부분은 현재 갤러리, 미술관, 비엔날레 등의 안정적으로 제도권에 안착했으니, 쌈지레지던스의 의미는 ‘공짜 작업실’이 전부가 아니다. 쌈지가 문을 닫는다는 소식에 가장 놀란 사람은 현재 그곳에 머물고 있는 10기 작가들(김희정 이은실 유쥬쥬 옥정호 양연화 김시내 권경환)이었을 것이다. 또한 내년에는 쌈지스튜디오 공모에 내려고 마음먹고 있던 신진 작가들과 이미 오래전에 머물렀던 선배 작가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사실은 직접적으로 입주와 관련된 작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당혹스러웠다. 홍대라는 위치 때문에라도 쌈지는 우리 모두의 ‘놀이터’였기 때문이다. 맥주 몇 캔만 사가지고 가면, 그곳은 바로 클럽이 되었고 복덕방이 되었다. 더욱이 1년에 한 번 있던 오픈스튜디오는 그야말로 잔칫날이었다. 그런데 쌈지의 소식에 대해 느끼는 안타까운 감정은 좀 복잡하다. 단순히 한 전시장, 한 레지던스의 끝이 아닌 한 시대의 종언을 고하는 듯한 기분이랄까. 아쉽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시대가 바뀐 지금, 이렇게 쌈지를 아련한 추억으로 흘려보내는 것이 어쩌면 더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9월호 아트와에 실릴 "기자의 눈-▶◀지못미, 쌈지" 중에서 발췌
Ho
2008/08/30 0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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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라시
 왼쪽부터: 호경윤, 광화문 네거리를 지키는 늠름한 경찰 아저씨, 아이리스 문, 조앤 기, 임근준, 장승연
art in culture 2008년 1월호, 혹은 통권 100호의 홍보물.
조금 늦더라도, 기다려 주세요. 기대해 주세요...
Ho
2008/01/03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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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헌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신임 위원장
“예술이 세상을 바꿉니다. 우리 문화예술위원회는 사랑받는 국민의 기관이 되겠습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모토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미술 음악 무용 문학 연극 등 문화예술 전반에 걸친 활동을 지원하는 기구다. 특히 좋은 기획안이 있어도 예산이 없어 실행에 옮기지 못하는 창작인에게는 ‘구세주’역할을 해주는 중요한 기구다. 연간 예산이 1,100억원, 11개 분과 소위원회 위원만 77명, 예술극장 미술관 예술정보관 예술인력개발원 등 직속 기관이 7곳…. 그 어떤 문화예술 기관보다도 규모가 크고, 힘이 막강한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총괄하는 위원장으로 김정헌 공주대 교수가 임명됐다. 시각예술분과 소위원장이었던, 아니 그 이전에 화가인 그가 정말 중요한 직책을 맡았다. 지난 9월 7일 문화관광부(장관 김종민)에서 제2대 위원장 임명식을 가진 이후, 업무 파악 및 각종 회의 일정 속에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정헌 위원장을 만났다. 예술은 정치다?
민중미술 1세대 혹은 문화운동 1세대라고 불리는 김정헌 위원장은 민예총 이사, 민미협 공동의장, 문화연대 상임집행위원장 및 상임공동대표를 지낸 바 있다. 1997년 학고재에서 열었던 개인전을 통해 작가로서 예술의 소통 문제에 대해 다시 한 번 재고하게 됐고, “공공성과 대중 소통 없는 예술은 존재 가치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예술가의 작품 외적인 사회 활동에 대한 그의 의견을 물었다. “예술가들의 책무를 자기 작품의 창작에만 몰두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나는 예술가들의 사회적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하면 예술가도 공인으로 규정돼야 한다. 작품 또한 사회적 발언의 형태여야 한다.” 민중미술 작가의 말답다. 정치적 예술이라고 해야 하나, 예술은 정치라고 해야 하나? 어찌 보면 삶이 정치다. 특정한 미술 장르를 옹호하는 입장을 떠나 이러한 예술가적 태도야말로 문화예술과 공공을 잇는 기관의 수장으로서 가져야 마땅한 가치관이다. 또한 대학에서 미술교육과 교수를 맡아왔기에 김 위원장이 ‘예술가를 위한 예술’보다는 ‘감상자를 위한 예술’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언론과 위원회 일부 직원들은 새로운 위원장을 반갑게 맞기보다는 ‘코드 인사’라고 비난하며, “앞으로 정부의 예술 지원이 좌파 단체 쪽으로 기울 것”이라고 넘겨 짚었다. 여기서 김 위원장의 선임 과정과 그 배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제1대 위원장 선임 때와 달리, 김 위원장은 공모제에 의한 문화관광부의 임명 절차(금년 4월부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를 포함한 300여 곳의 준정부 기구는 ‘공공기관 운영 관련법’이 적용됐다)를 거쳐 선정됐다. 그 역시 노무현 정권 내내 따라 붙는 ‘코드 인사 논란’의 화살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또한 지난 2005년 문예진흥원에서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되면서 초대 위원장을 맡았던 김병익 씨가 임기를 1년이나 남긴 채 그만 두고 그 후임을 뽑는 것이어서, 어느 누가 선정된 들 뒷말이 생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사실 김병익 전 위원장이 그만 두기까지 이미 위원회 내의 심각한 내분이 벌어진 상태였다. 전 위원장의 퇴임 후에도 원월드뮤직페스티벌 개최와 관련해 위원회 내부에서 책임을 묻는 등 뒤숭숭한 분위기는 지속됐다.위원회 바깥의 원성도 크다. 장르 이기주의, 시대에 뒤처지는 예술 지원 제도, 행정 중심의 업무 방식 등은 문예진흥원에서 문화예술위원회로 전환한 이후에도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주요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현재 문화예술위원회는 합의제 구조로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분과별 11명의 소위원장의 의사 결정이 순탄치 못하고 위원회와 사무처 간의 소통 또한 원활하지 않다. 게다가 민간 기구임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통제가 강화되어 기관 자체의 자율성 또한 제한되어 있는 상태다. 예술과 대중의 ‘소통’을 위한 기구인데, 의사 ‘소통’이 잘 안 되는 듯하다. “상담식 지원 늘리고, 기금 마련에 주력할 것”
김정헌 위원장은 “2년 전 민간자율기구로 출범한 문화예술위원회가 현장성과 효율성을 함께 갖춘 예술정책기구로 자리잡도록 하겠다. 무엇보다 문화예술위원회가 합의제 기구라고는 하나 그동안 자문위원과 다를 바 없던 위원들의 역할을 재배치하고 사무처 조직과 성격도 개선해 나가는 것이 급선무다”라면서, 3년간의 임기 동안 보다 전략적 혁신과 그에 따른 실천으로 위원장 선임을 둘러싼 논란들을 불식시키겠다는 굳은 의지를 밝혔다. 김 위원장은 2년 간 소위원회에 몸담으면서 누구보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속사정을 잘 알고 있다. 그는 이미 지난 2월, 본지의 프리즘 코너에서 ‘문화예술위원회 개혁은 맴돌고 있다’는 글로 위원회의 문제점을 자성적인 글로 피력한 바 있다.
김 위원장은 임명식에 즈음해서 몇 가지 개혁안을 내놓았다. “기획 발굴을 통한 지원이나 컨설팅센터를 통한 상담식 지원제도를 정착시켜나가겠다”는 것이다. 애초부터 이야기됐던‘집중과 선택’의 지원 시스템이 여전히 자리 잡지 못하고 공모를 통한 소액다건 식의 지원방식이 지속되면서 문제가 개선되지 않았다는 점이 그 이유다. 즉 정기 공모사업보다는 계기성 지원사업이 늘어날 전망이다. 또한 김 위원장은 “상담식 지원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향후 2-3년간 사무처 직원들을 전문가로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운영할 것”이라는 방안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위원회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는 출범 초기부터 제기된 재원 조달 문제”라고 했다. 현재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운영할 수 있는 기금은 약 4천억 원 정도로 알려져 있다. 문예진흥원 시기에 조성해 놓았던 5천억 원에서 지난 2년 동안 1천억 원이나 까먹은 것이다. 문예진흥원 때의 주 수익처가 영화, 공연 티켓으로부터 떼어온 문예진흥기금이었다면, 현재 문화예술위원의 주 수익처는 복권기금이다. 그러나 복권기금의 액수가 초반에 300억 원에서 올해 130억 원으로 급격히 저하된 것을 볼 때 재원 마련은 시급한 문제다. 김 위원장은 “마음 같아서는 나라에서 ‘문화세금’ 같은 것을 만들었으면 좋겠지만, 국민의 반발이 강할 테고 법안 통과 과정부터 순탄치 않을 것”이라면서 “결국 정부나 기업을 상대로 문화예술의 공익성을 강조해 후원금을 발로 뛰어 끌어올 수밖에 없다. 근데 당장 신정아 사건 때문에 큰일이다”라며 솔직한 심경을 토로했다.
2008년 정기 공모사업 지원공고가 떴다. 벌써부터 주변에는 부랴부랴 지원 양식을 쓰는 이들이 많다. 우리 미술인들이 꿈을 펼치고, 예술을 펼치는 데 ‘날개’를 달아주는 곳이 문화예술위원회인 만큼, 사람들의 안테나는 항상 그 곳을 향해 있다. 그래서 위원회의 행보는 언제나 조심스럽다. 위원회의 행보를 이끌어 가는 김정헌 위원장의 탁월한 행정력이 그 어느때보다 필요하다.
| 호경윤 수석기자| art in culture 10월호| 핫피플 
Ho
2007/10/04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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