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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또 2012년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모르게 지금에 이르렀으니...
뒤늦게 연말 정산을 마치고, 제발 남은 한 해에는 돈 때문에 쓰는 원고로 인해 피폐하게 살지 말자고 다짐해본다.
(근데 맥북에어 11인치가 좋을까, 13인치가 좋을까? )

2012/02/06 14:01 2012/02/06 1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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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간의 비행 끝에 마침내 뉴욕 JFK공항에 도착했다. 로비 천정에 거대한 알렉산더 칼더 모빌이 걸려 있는 이 공항은 원래 1948년 개항 당시에는 뉴욕국제공항이라고 명명되었으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 당한 1963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공항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맨해튼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차창 밖으로 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에서 본 듯한 대형 공동묘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잠시 후 휴대폰을 켜보니, 비행 동안 확인하지 못한 트위터의 타임라인은 바로 전날인 1월 18일자 《빌리지 보이스》지에 실린 데미언 허스트의 부고 기사로 떠들썩했다. <Damien Hirst (1965~ 2012): In Memoriam>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이 기사에서는 허스트가 1월 12일 뉴욕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리며, 적지 않은 분량으로 그의 업적을 서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다. 온라인 상에서는 사망의 진위 여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왔다. 무라카미 다카시 역시 이 기사에 “가고시안갤러리에서의 지나친 상업적 전시에 대한 페이크 기사일 것”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기실 가고시안갤러리에서는 세계 11개 지점에서 1월 12일부터 일제히 데미언 허스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던 터다. 물론 믿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특종 욕심에 내심 정말로 그가 죽었기를 바라며 첼시에 있는 가고시안갤러리를 가 보았다. 역시 너무나도 평온하게 전시가 열리고 있었고, 사망 기사는 가짜로 판명났다.
구겐하임미술관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회고전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All>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서 카텔란은 지난 28년 동안 제작했던 작품 128점 모두를 미술관 중앙의 로툰다 홀에 줄로 매달아 놓았다. 마치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기 직전의 사후 세계를 표현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도상을 떠올리게 했다. 이러한 충격적 디스플레이는 엄청난 시각적 스펙터클을 선사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 양식을 따라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는 동안, 마치 교수형에 처한 것처럼 걸려 있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게 된다. 그 중에는 관 속에 누워 있는 케네디 대통령도 있고, 바위에 맞아 죽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흰 천으로 덮인 시체, 박제된 각종 동물들(말, 당나귀, 비둘기 등)이 있으며, 심지어 작가 자신의 얼굴을 닮은 인형도 매달아 자살을 암시하는 듯 보였다. 카텔란은 이번 전시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데 올해로 51세 밖에 되지 않은 그의 은퇴설은 진짜일까? 그동안 온갖 거짓말과 사기성 짙은 작업들로 악명 높은 그가 아니던가.
전시가 끝나기 하루 전인 1월 21일에는 일종의 ‘은퇴식’으로 저녁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총 7시간에 걸쳐 마라톤 심포지엄 <The Last Word>가 진행됐다. 심포지엄 관련 인쇄물의 표지에는 카텔란이 ‘The End’라고 적힌 묘비를 팔에 끼고 걷는 사진이 실렸다. 카텔란이 작가로서 어떤 ‘마지막 말’을 남길지 궁금해 하던 관객들은 미술관 바깥까지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 심포지엄에는 예술의 ‘종말’을 이야기한 아서 단토부터, 작가 트레이시 에민, 이론가 브라이언 오도허티, 가수 코트니 러브 등 30명이 넘는 화려한 출연진이 등장했다. 말 많은 장례식 같았다. 그러나 정작 카텔란은 일을 핑계로 행사장에 오지 않았고, 이 전시를 담당한 큐레이터 낸시 스펙터의 입을 통해 카텔란의 거취가 알려졌다. 그는 곧 뉴욕에서 ‘가업(Family Business)’이라는 새 화랑을 운영할 것이고, 이 사업에는 과거 롱갤러리를 함께 했던 뉴뮤지엄의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도 참여한다는 소식이었다.
2012년 뉴욕, 그곳에서는 예술가의 죽음 혹은 예술가의 은퇴조차 한낱 ‘쇼’로 이용하는 해프닝들로 새해의 첫 포문을 열고 있었다. 한편 9.11테러가 일어났던 세계무역센터에서 몇 블럭 떨어지지 않은 주코티공원에서는 지난해 가을부터 월가 점령 시위(Occ upy Wall Street)가 시작되어 그 여파가 전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시위대가 피켓에 쓰는 핵심 단어는 ‘1%와 99%’이다. 온갖 경제적 혜택이 집중된 상위 1%를 탐욕과 부패의 집단으로 상정하고, 나머지 99%는 철저히 소외당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미술계도 마찬가지다. 《미술수첩》에 의하면 뉴욕과 런던에 살고 있는 예술가는 8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연간 작품매매가 10억 원 이상의 작가는 단 75명에 지나지 않는다. 0.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뉴욕 작가들 대부분은 생업을 따로 둔 채, 주말이나 자투리 시간을 쪼개어 작업하며, 제2의 데미언 허스트나 마우리치오 카텔란을 꿈꾼다. 그러나 1%의 성공한 예술가들은 세습 기업주나 갱단 두목과 다를 바 없이, 젊은 작가에게 자신의 명예와 부를 나눠 줄 아량 따위는 없다. 심지어 그들은 죽었고, 은퇴했지만 망령으로 떠돌며 99%의 예술가들을 괴롭힐 뿐이다. 그야말로 ‘예술 지옥’이다.
-2012년 2월호 <프리즘>

(이 기사를 탈고한 이틀 뒤, 한 작가가 "진짜로" 자살했다. RIP, Mike Kelley)


2012/02/06 12:01 2012/02/06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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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한 은사께서 해 주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잘 쓴 글이란, 수려한 문체나 수사적 기교를 잘 부린 글이 아니라, 정말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쓴 글이다.” 글을 직접 쓰거나, 혹은 남이 쓴 글을 편집하는 일을 업으로 삼고 사는 지금, 종종 뇌리에 스치는 말이다. 그렇다면 ‘잘 그린 그림’은 무엇일까? 무릇 글이나 그림, 둘 다 마찬가지 아닐까? 화려한 색채나 신기한 재료를 쓰는 그림이 아니라, 정말로 그리고 싶어서 그린 그림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성식의 그림들은 참 잘 그린 것 같다. 문성식의 그림은 실물처럼 보이기 위한 회화적 기교보다는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는 데 집중하는 듯하다. 다시 말해 원근법이나 일루전 등 오랜 세월 동안 회화의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요소에 문성식은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대신에 문성식의 그림에는 진심이 느껴진다. 먼저 문성식의 연필 드로잉 작품 <형과 나>를 보자. 연필로 박박 그은 검정색 원이 화면의 8할 이상을 차지한다. 이 그림은 작가 문성식이 친 형과 함께 낚시하던 풍경을 그린 것인데, 가운데 있는 저수지에 비해 주변에 둥그렇게 둘러쳐진 나무들과 한켠에 서 있는 인물은 매우 왜소해 보인다. 분명 추상화는 아니지만 사실적 표현과는 좀 거리가 있어 보인다. 낚시터에 가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기다림의 연속일 뿐 도대체 언제나 물고기가 잡힐 지 막막하기만 하다. 여기서 낚시하는 사람은 수동적으로 기다릴 수밖에 없는 미미한 존재다. 물속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저수지의 존재는 더더욱 거대하게 느껴진다. 연필로 시커멓게 칠한 저수지는 마치 블랙홀처럼 빠져들 것만 같다.
단지 연필로만 그린 그림인데도, 또 비율과 모양도 제멋대로인데도 저수지에서 형과 낚시를 했던 당시에 작가의 마음만은 잘 드러난다. 또 다른 작품 <굴과 아이>에서도 마찬가지다. 간결하게 표현한 그림이지만 어두운 터널이 굴다리에서 느껴지는 끝없이 펼쳐진 듯한 캄캄함 앞에 선 두려움이 전해져 온다. 수많은 미술사학자나 미술평론가가 언급했듯, ‘사진’의 등장 이후 회화의 목표는 사실의 재현이 아니라, 작가의 주관적 표현으로 바뀌었다. 대개 풍경화라 하면, 화가가 이젤과 화구를 들고 나가서 풍경을 보고 그 자리에서 모두 그리거나, 혹은 스케치만 하고 채색은 들어와서 천천히 완성하는 걸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문성식의 풍경화는 과거의 경험을 그리는 것으로, 기억을 더듬어 그리는 방식이다. 다시 말해 문성식의 풍경화는 심리적 풍경화인 셈이다.
그런가 하면, 연작 <노인의 집 1>과 <노인의 집 2>는 바라보는 시점이 뒤섞여 있다. 그림의 아랫부분은 정면에서 똑바로 집을 바라봤을 때의 모습이 그려진 반면, 윗부분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다본 옥상 혹은 지붕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집은 실재하는 것이지만, 이 그림의 구도는 실재하지 않는다. 역시 이번에도 사실과 다른 그림이다. 전개도를 펼쳐 놓은 듯한 이 그림에 대해 물었더니, 작가는 집의 정면만큼 옥상의 바닥이나 기와로 된 지붕도 재밌어 보여서 이렇게 그렸다고 한다. 결국 작가 ‘마음대로’ 그린 것이다. 하지만 마음대로 그렸다고 해서 절대로 쉽게 그렸다는 말은 아니다. 연필로 그린 그림은 물론, 유화나 아크릴화로 그린 그림까지 나뭇잎 한 장, 풀 한포기 어느 곳 하나 쉬이 넘어가지 않고 세세하게 그려나간다.
문성식의 그림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는 시골 풍경이나 그곳의 사람들이다. 동네 잔치, 숲 속에서의 사냥, 교미하는 개들 등등. 대부분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극히 평범한 풍경이다. 문성식은 김천에서 태어났다. 그는 그곳에서 자랐고, 부모님은 여전히 김천에서 살고 계신다. 쉽게 말해 문성식의 그림은 시골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작가의 향수가 묻어나는 그림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시골 풍경을 그린다고 해서, 무조건 따뜻하고 정겨운 시골의 정경을 그린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우리는 어쩌면 시골에 대해 지나치게 미화시키고 있을지도 모른다. 문성식은 자신의 작품 <청춘을 돌려다오>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 <마더>에서 김혜자가 마지막에 고속버스에서 춤추는 장면을 보고 나서 그리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이 그림에 등장하는 시골 잔칫집에서 흥에 겨워 노래하고 춤추는 노인의 모습은 마냥 즐거워만 보이지만, 그들에게도 각자 고통스러움과 슬픔이 웃음 뒤에 감춰져 있을 것이다. 마치 김혜자가 아들을 위해 살인을 하고도 그것을 잊기 위해 춤을 췄듯이 말이다.
<무심한 교차>는 고향에 내려갈 때 차창 밖으로 보이는 도시 개발 중의 공사장 풍경을 떠올리며 그린 작품이다. 이리저리 제 속살을 드러내며 파헤쳐진 땅 틈으로 강한 생명력을 보이며 뿌리 내린 작은 꽃나무와 잡초, 그 사이로 날아다니는 새와 이 와중에 교미하는 동물까지…. 황폐화된 도시 개발의 모습이 어쩌면 오늘날 가장 일상적인 ‘풍경’이고, 그곳에서 버거운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이 현대인의 ‘초상’임을 역설하는 듯하다. 특히 종이 위에 아크릴 물감으로 한 겹 한 겹 쌓아올리듯 그린 이 작품의 독특한 표현 방식은 마치 초상화에서 사람의 피부를 그리는 것처럼 땅의 표면을 스캔하듯 적나라하게 보여 준다. 문성식은 지난 2011년에 개최한 개인전의 제목을 <풍경의 초상>이라고 지었다. 그리고 이 전시를 열면서 다음과 같은 노트를 적었다.
“세상은 말이 없다. 세상엔 하늘에 떠 있는 별의 개수만큼의 무엇인가가 존재한다. 그리고 그것들은 각자의 시간을 살아내고 빛은 그것들의 모습을 만들며 그것들은 내 안에서 풍경이 된다. 우리에게 모든 것이고 동시에 아무것도 아니다. 이들은 아름답기도 하고 추하기도 하며 절실함과 동시에 무심하다. 이 모든 것은 세상의 일부이며 생겨나고 또 사라진다. 내 그림이 된 것들은 그런 것들이다. 그림은 나에게 다른 이들과의 대화이며 일기이다. 동시에 잡을 수 없는 시간 앞에서 언젠가 죽어야만 하는 생명으로서 시간을 붙잡는 불완전한 하나의 방법이다.”
문성식은 소년과 영감의 모습을 동시에 갖고 있다. 큐레이터 이은주의 ‘소년의 감수성을 지닌 채, 불편한 삶의 진실을 바라보고 있는 어른스러운 관찰자로서의 시선’이라는 언급이 문성식의 작품에 대한 적확한 해석이다. 문성식은 평범하고 심지어 평화로워 보이기까지 하는자연의 모습에서 잔혹과 비극을 찾아낸다. 반면 2002년에 그린 <봄날은 간다 간다 간다>처럼 어린 시절 집에서 증명사진을 찍는 모습처럼 가족의 소소한 즐거움을 전하기도 한다.    생사가 반복되는 대자연의 순환과 그 면면의 감성까지 세심하게 표현하는 문성식의 손끝은 자신의 할아버지를 그린 <노인>이나, 교미 중인 개를 그린 <어미와 아들> 등에서 더욱 노련하게 움직인다. 특히 그의 초기 작업 <런치 타임>, <말을 걸어오는 나무> 등에서 등장하는 향나무의 묘사는 재현, 그 이상이다.
그의 그림에서는 된장 맛이 난다. 단순히 문성식이 시골 그림을 곧잘 그려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가 그림을 대하는 태도 때문이다. 문성식은 마치 도 닦는 사람처럼, 고행하듯 그림과 정면으로 맞서는 화가다. 한동안 문성식을 따라다녔던 꼬리표는 ‘최연소 베니스비엔날레 한국관 참여 작가’였다. 그는 2005년 개최됐던 베니스비엔날레에서 당시 대학원생 신분으로 참여하며, 세간의 관심을 받았다. 특히 그 즈음이 미술시장이 한참 무르익어 가던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당시 그에게 러브콜을 보낸 화랑도 적지 않았을 것이다. 문성식의 개인전을 기다리는 관객도 많았다. 그러나 문성식은 2006년 첫 번째 개인전을 개최하고 무려 5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나서야 두 번째 개인전을 열 수 있었다.
그림을 그린다고 모두 화가가 아니다. 진정한 화가란 그림 자체가 당면한 문제의식, 동시대 미술에서 그림이 차지하는 현재적 위치를 숙고하며 붓을 드는 사람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성식은 확실히 화가다. 요즘 젊은 작가의 경우 뭐든지 많이, 그리고 빨리 해치우라는 요구를 받고, 그리고 그 요구에 부응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곤 한다. 하지만 화가 문성식의 그림은 된장처럼 숙성할 시간이 필요하다. 문성식의 새로운 그림이 궁금하지만, 좀 더 인내심을 갖고 기다려 보자. 그는 ‘더 잘 그린 그림’을 가지고 나올 것이다.
-네이버캐스트 <한국미술 산책>
http://navercast.naver.com/contents.nhn ··· 3Dseries

2012/02/06 11:58 2012/02/06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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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명의 공동 큐레이터가 기획한 전시 <파동, the forces behind>전이 열렸다. 이들은 김민애, 정윤석+강정석+스클라벤탄츠, 옥인콜렉티브, 이완 총 4팀의 작가를 초청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다소 썰렁한 느낌이 드는 것이, 어떤 ‘공백’이 있는 듯했다.

이 전시는 두산갤러리에서 신진 기획자를 양성하는 취지 아래 2011년부터 시작한 ‘두산 큐레이터 워크숍’의 결과물로, 약 1년여의 준비 기간을 거쳤다. 강소정, 김수영, 조은비 이상 3인의 큐레이터는 당대의 사회현상과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연결짓는 키워드로 ‘공백’을 선택했다. “사회 구조에는 존재하지만 드러나지 않는 ‘공백’과 같은 것들이 있다. 주민등록 말소자와 같이 ‘없는 것’으로 치부되는 존재나 급변하는 산업사회에서 제 기능을 상실해 버려진 공간은 ‘공백’이다.” 공동 큐레이터의 기획 글 중 일부다. 특히 이들은 요즘 세대의 ‘잉여’라는 독특한 문화현상에 착안했다. 경제적 생산활동과 무관해 ‘쓸데없이 남아도는 것’으로 치부되는 ‘잉여적’ 행위들은 단지 청년 실업자의 할 일 없는 인터넷 활동 같은 것만을 지칭하는 것은 아니다. 어쩌면 먹고 사는 문제로부터 조금은 떨어져 발생하는 ‘예술’ 역시 근본적으로 ‘잉여’에 가깝다. 기획자들은 다소 부정적이면서도 희화화된 뉘앙스를 풍기는 ‘잉여’라는 용어 안에 머무르지 않고, 인터넷 방송이나 촛불시위 등 사회 시스템을 바꾸는 사건으로 폭발되어 나오는 구체적 현상에 더욱 주목한다.

달리 표현하면 ‘잉여’라는 가치는 신자유주의 이후 강조되는 경제성이나 효율성에 대한 반작용 현상과 저항 의지로 발현되는 것이며, ‘잉여짓’은 그들 나름대로의 주체적 모색 방식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번 전시는 잉여적 존재들의 공동체적 연대, 혹은 잉여문화 자체에 내재한 ‘숨은 세력(the forces behind)’의 가능성을 다각도로 조망한다. 작가 겸 영화감독 정윤석, 도시음악가 그룹 스클라벤탄츠, 강정석의 공동작업 <Siren Night>는 서울 변두리의 폐쇄된 빗물 펌프장에서 즉흥적으로 벌인 사운드 퍼포먼스를 영상으로 기록한 작업이다. 공간의 조건과 제약을 이용해 다양한 소리의 울림을 만들어 내어 버려진 공간을 위한 진혼곡을 연주한다. 공간 안에서 그 공간을 연주하는 것이다. 어두컴컴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쇳소리와 무언가를 내려치는 둔탁한 소리가 들린다. 오히려 소리를 통해 공간이 명확해 진다. 죽어 있던 공간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는다는 측면에서, 이들의 퍼포먼스는 사제나 무당이 벌이는 제의식과 같다. 작품 속에서 강정석과 함께 자주 등장하는 ‘콩알탄’은 작은 소음과 불꽃을 튀기며 젊은 무직자인 친구들의 신세를 상징한다. 이 퍼포먼스 혹은 공연은 사전 협의나 리허설 없이 즉흥적으로 연주되었고, 녹음도 원테이크로 진행되었다. 세 팀의 작가들의 협업은 방치되어 있던 공간을 가시화하는 동시에 어둠 속에서 일시적 연대와 교감의 정서를 만들어 낸다.

옥인콜렉티브는 옥인 인터넷 라디오 스테이션[STUDIO+82]의 신년 특집 기획 방송 <바닥의 노래를 들어라>를 선보인다. 전시 기간 중 다양한 게스트를 초대해 총 5회에 걸친 방송녹화를 진행, 인터넷 라디오로 순차 방송한다. ‘예술과 생계’라는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생을 모색해야 하는 예술생산자들의 삶과 그 이면을 주목한다. 전시장 바닥에 놓인 설치 작업은 방송녹화 시 스튜디오로 변모하는 구조물로, 옥인콜렉티브는 전시 기간 동안 이 구조물의 안쪽의 바닥은 왁스와 광택기로 ‘광’을 내면서 관객들을 초대/환대한다. 김화용 이정민 진시우로 구성된 옥인콜렉티브는 종로구 옥인동 옥인아파트의 지명을 딴 작가 그룹이다. 2009년 7월 옥인아파트의 철거 현장에서 시작된 옥인콜렉티브는 이번 라디오 스테이션에서 2011년 4월 철거 투쟁의 현장인 두리반에서 발기한 자립음악생산조합의 박다함과 한받을 초대하는 등 ‘바닥’과 ‘노래’에 관한 대화의 장을 펼친다.

이완은 불가항력적으로 부과된 구조 체계를 또 다른 기준으로 전환시켜 모종의 역설과 모순을 만들어 낸다. 이번 전시에서 이완은 <절대적 기준에 대한 내면의 불가항력적 엔트로피>를 선보인다. 전시장의 벽면과 천정을 이용해, 국기봉 형태의 스테인리스 스틸 소재나 전신주의 콘크리트 소재로 된 길쭉한 막대를 기울여 놓았다. 또한 오래된 이발소 그림, 미술 관련 서적 등 주변에 있는 일상적 사물을 천정까지 쌓아 올렸다. 이 작품들은 언뜻 보기에는 꿋꿋하게 서 있는 듯 보이지만, 사실 손 끝 하나로 살짝 밀기만 하면 무너져 내릴 만큼 불안한 상태다. 작가는 설치 과정 중 붕괴 직전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함을 즐기며, 절대적인 불안정함을 시각적으로 표현한다. 즉 사회 구조가 그러하듯 겉으로는 절대적인 기준에 의해 안정적으로 조직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그 이면에는 절대적인 불안정함이 내재되어 있으며, 나아가 개체의 사소한 일탈에도 붕괴될 수 있음을 환기시킨다. 작가는 구조 속에 은폐된 불안정성과 내부의 긴장감을 시각적으로 표출하여, 그것이 야기하는 위험하지만 동시에 잠재적인 가능성에 대한 상상을 제안한다.

김민애의 작업 <gallery in the>는 전시 공간 안에 존재하는 또 하나의 화이트큐브다. 흰 벽과 조명 등으로 구성된 구조물은 실제 전시 공간의 안내데스크와 마주보고 있다. 이 작업은 구조물 위에 놓여 있는 인쇄물을 가져가고 방명록에 이름을 남길 수 있는 등 기능적 측면이 있다. 김민애는 공간을 활용하는 특유의 구조물들을 통해 보이지 않던 것을 보이게 하거나, 친숙했던 것을 낯설게 만드는 새로운 시선을 제안해왔다. 이번에는 갤러리 안에 또 하나의 갤러리 만들어, 실제로 체현되지 않는 존재에 대해 시각화함으로써, 전시공간은 물론 사회 전체를 둘러싼 구조에 대해 논평하는 것이다. 특히 이 작업 안으로 관객이 들어가게 되면 원래 갤러리를 지키고 있는 직원과 마주하게 된다. 미대생 혹은 큐레이터 지망생의 주된 수입원인 ‘지킴이 알바’ 역시 미술계 인력구조에서 볼 때 ‘공백’에 속한다. 하루 종일 멀뚱히 앉아 갤러리를 지키다 보면, 오히려 미술계의 일원이 바라던 꿈을 갉아 먹는 기분이 든다.

‘잉여 문화’를 조망한 이번 전시를 기획한, 즉 두산갤러리의 공모에 응한 신진 큐레이터들 역시 청년 백수가 아닐까 싶지만 사실 기획자 3명 모두 직장이 있다. 잡지사 기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한 명은 국내 메이저 화랑의 갤러리스트, 또 다른 한 명은 공기업에서 운영하는 비영리 전시기관의 큐레이터라는 점에 고개가 갸우뚱하게 된다. 하루 종일 전시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퇴근 후 시간과 주말을 쪼개 외부의 기획프로그램에 참여한다는 것은 마치 지킴이 알바와 다를 바 없이 이들 역시 일터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전시를 만들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이 아니겠나. <파동, the forces behind>전의 가장 큰 미덕은 그러한 전시기획자로서 펼치고픈 담론의 갈급함을 달래는 데 있어 서두르지 않고, 욕심을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여기에 더하여 단 한 명의 총괄 지도 큐레이터(김현진)를 내세운 큐레이터 워크숍의 구성 방식 역시 이러한 결과에 중요한 작용을 미쳤다고 생각된다. 이번 전시의 키워드로 사용된 ‘공백’은 전시장에서 절제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현대 사회가 쏟아 내는 화려한 이미지들과 엄청난 정보량은 오히려 이 시대의 주인공인 젊은이들이 더욱 맥을 못 추게 하는 장애물이다. 우리는 좀 더 선택의 제스처를 취할 필요가 있다.

-아르코 웹진 201호
http://webzine.arko.or.kr/sub3/content_4170.jsp

2012/02/06 11:52 2012/02/0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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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임진년 용띠해에는 어떠한 일이 펼쳐질까. 다소 조용하게 지나간 2011년에 비해, 2012년은 마치 잠자던 용이 용틀임을 하듯 벌써부터 기대를 모으는 굵직한 전시와 행사들이 여럿 눈에 띈다. 특히 2012년은 미술계 바깥으로도 총선과 대선, 런던 올림픽 등 중요한 일정이 포진돼, 새해를 맞이하는 마음이 더욱 설렌다.
무엇보다 올해에는 비엔날레가 많이 열린다. 잘 알고 있듯이 짝수 해에는 한국을 대표하는 3대 비엔날레로 꼽을 수 있는 광주, 부산, 서울이 동시에 열린다. 정확한 날짜는 아직 나오지 않았지만, 세 비엔날레 모두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9월에 열릴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비슷한 시기에 개막일을 잡는 이유는, 한국으로 전시를 보러 오는 해외 인사들이 한꺼번에 3개의 비엔날레를 보고 갈 수 있도록 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다. 이때 국내 최대 아트페어인 KIAF가 열리는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따라서 9월에는 전시에 참여하기 위해 들어온 작가는 물론, 저명한 큐레이터와 평론가, 기자, 그리고 컬렉터까지 해외 인사들로 북적일 듯하다.
그 중에서 가장 오랜 전통과 큰 규모를 자랑하는 제9회 광주비엔날레는 6명의 여성 감독이 함께 전시를 기획한다. 한국의 김선정, 일본의 카타오카 마미, 중국의 캐롤 잉화 루, 카타르의 와싼 알-쿠다이리, 인도의 낸시 아다자냐, 인도네시아의 알리아 스와스티카가 바로 그 주인공이다. 광주비엔날레가 ‘공동 감독제’라는 특정한 형식을 채택한 이유는 다양한 문화적 특성에 기반을 두고 세계를 무대로 활동해 온 아시아의 젊은 기획자들의 다각적인 시각을 통해 세계 시각문화의 현장을 폭넓게 통찰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공동 감독들은 비엔날레 개막 이전에 E-저널 발행, 국제 심포지엄 개최 등을 통해 비엔날레의 외형적 결과보다는 전시 기획의 과정 자체에 무게를 두고자 하는 데 뜻을 모은 것으로 알려 졌다.
올해로 6회를 맞이하는 부산비엔날레는 독일 출신의 로저 M. 브뤼겔이 총지휘를 맡았다. 2007년 카셀도큐멘타의 예술감독으로 잘 알려진 그는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주제로 <배움의 정원> 을 내놓았다. 그는 얼마 전 비엔날레 준비를 위해 부산에 방문, 아직 부산/한국을 잘 모르는 자신부터 배우겠다는 전제를 깔고, 비엔날레를 보러 온 관객들이 단순히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해 ‘배움’을 얻어 가는 장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또한 세계 유일의 미디어아트 전문 비엔날레로 꼽히는 미디어시티_서울은 유진상 계원디자인예술대학 교수를 예술감독으로 영입했다. 지난 12월 8일 비엔날레의 전초전으로 마련된 국제심포지엄에서는 <뉴미디어아트: 새로운 이슈와 상황들>을 주제로, 루스 베인(엑스페리멘타 액팅 디렉터), 마크 그뢰드(바젤아트페어 큐레이터, 유키코 시카타(미디어아트 큐레이터), 올로프 반 빈든(네덜란드 미디어아트 인스티튜트 제너럴 디렉터) 등이 참여했다.
한편 해외의 비엔날레는 주로 상반기에 몰려 있다. 가장 먼저 뉴욕 뉴뮤지엄에서 열리는 트리엔날레에는 재미 교포 큐레이터인 주은지가 기획을 맡아, 젊은 작가에 주목하는 전시를 펼친다. 여기에는 한국 작가 박보나가 참여한다. 또한 2008년 광주비엔날레의 예술감독을 맡아 국내에도 잘 알려진 오쿠이 엔위저가 기획하는 트리엔날레가 파리에서 4월에 열리고, 임민욱이 참여할 예정이다. 그런가하면 1992년 작가 육근병 이후, 20년 동안 한국 작가가 참여 작가 리스트에 오르지 못했던 카셀도큐멘타에 올해에는 작가 전준호와 문경원이 참여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해외 비엔날레에 참여하는 것 외에도 해외 주요 미술관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는 작가들도 있다. 오는 2월 4일 도쿄 모리미술관에서 작가 이불이 대규모 회고전을 연다. <From Me, Belongs to You Only>라는 주제로 신작은 물론 그간의 주요 작품들을 한자리에 선보인다. 이 전시는 9월에 아트선재센터로 순회할 계획을 갖고 있으니, 도쿄까지 보러 가지 못한다고 서운해 하지 않아도 된다. 또한 작가 임민욱은 5월 미국 미니애폴리스의 워커아트센터에서 개인전을 연다. 개인전은 아니지만, 한국과 독일의 대규모 교류전도 열린다. 국내 기관으로는 국립현대미술관, 대안공간루프, 아르코미술관 등이 협력하여 국내 작가들을 선정해 독일 NRW의 주요 미술기관에서 전시를 개최하는 것은 물론,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적극적으로 프로모션하는 기회다.
국내에서 열리는 주요 개인전으로는, 3월 삼성미술관 리움에서 열리는 서도호 개인전이 벌써부터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왜냐하면 리움 개관 이래 국내 작가의 개인전은 처음 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작고작가 이인성, 원로작가 하종현과 임충섭의 회고전이 예정되어 있다. 또한 아직 그 주인공이 정해지진 않았지만,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올해의 작가’를 후보 작가의 전시로 바꾸고, 거기서 최종 1인의 작가를 선정하는 방식으로 대폭 개편하는 계획을 갖고 있어 많은 미술인의 관심이 몰려 있다. 그밖에 학고재의 강요배와 김태호, 아틀리에에르메스의 박진영과 홍승혜의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또한 해외 작가들의 국내 개인전 소식도 풍성하다. 국제갤러리의 폴 매카시, 에바 헤세, 가다 아메르, 루이즈 부르주아, 애론 영, 아트선재센터의 오타케 신로, 토니 아우슬러 등 쟁쟁한 작가들의 작품을 국내에서 볼 수 있다.
또한 미술관의 기획력이 돋보이는 전시들도 눈길을 모은다. 우선 2013년 개관을 앞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프리오픈 전시를 11월에 개최할 예정이다. 특히 2012년은 한중수교 20주년으로, 이를 기념해 중국현대미술전도 기획 중이다. 백남준아트센터에서는 백남준 탄생 80주년을 기념하는 특별전을 그의 생일 7월 20일에 맞춰 개막한다. 그보다 앞서 3월에는 백남준이 존경해 마지않았던 음악가이자 플럭서스 그룹의 일원이었던 존 케이지의 탄생 100주년을 맞아 사운드아트에 관련한 기획전을 개최한다. 또한 일민미술관에서는 2011년 동아미술제 전시기획공모 당선작 <여의도비행장에서 인천공항까지(기획: 이혜원, 고동연)>전이 열린다. 여행과 이주를 키워드로 삼아, 한국인이 다른 문화와 조우하는 방식과 그 속에 내재된 스스로의 문화에 대한 인식을 ‘물건’을 중심으로 펼쳐낸다는 기획이 흥미롭다. 토탈미술관에서는 한국의 신보슬, 독일의 한스 D.크리스트 등 태국, 체코, 헝가리, 인도, 폴란드 등의 큐레이터들이 공동으로 기획, 장기 프로젝트로 준비해 온 <Re-designing the East>전이 하반기에 열린다.
최근 국내외 컨템포러리 아트씬에서 가장 열기가 뜨거운 다원예술 분야에 있어, 한국에서 그 발전소 역할을 해온 페스티벌봄은 4월에 열릴 예정이다. 아직 정확한 프로그램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2011년의 국립극단과 서강대 메리홀 등에서 작가 케런 시터, 서현석, 김남수, 현시원 등이 새로운 작품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된다. 
아직은 대다수의 미술기관들이 2012년의 전시 일정은 ‘협의 중’으로 전체 윤곽이 확연하게 드러나지는 않은 상태다. 그래도 이 정도만으로도 괜찮지 않은가? 적어도 2011년보다는 발품 팔 곳이 많을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국립현대미술관 웹진 2012년 1월호
http://artmu.moca.go.kr/201107/view.jsp ··· bnum%3D1

2012/02/06 11:47 2012/02/06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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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은 예술이 될 수 있는가? 물론이다. 일본을 대표하는 아티스트 무라카미 다카시가 게임 캐릭터를 작품화한 것처럼 게임의 비주얼 이미지가 발산하는 예술적 상상력은 대단하다. 또한 상호소통성과 가상성이라는 게임에 내재된 주요 속성을 감안하면 ‘게임=예술’이라는 등식은 더욱 확고해진다. 미디어아트 분야에서는 비디오게임이나 증강현실을 이용한 작품이 등장한 지 오래다. 게임은 확실히 예술이다. 그렇다면, 게임을 만드는 사람은 아티스트인가?

예술과 게임,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무너뜨리다
오는 1월 20일부터 313아트프로젝트에서 열리는 <Borderless>전의 참여 작가들은 온라인 게임 제작팀에서 아트디렉터, 일러스트레이터, 애니메이터 등을 맡고 있는 게임아트 전문가들이다. 그동안 컴퓨터그래픽 기술로만 작업해 온 이들이 이번 전시를 통해 붓과 조각도를 손에 들고, ‘우리는 아티스트다!’라는 선전포고를 한다. 전시 제목 <Borderless>는 예술과 게임의 경계는 물론, 가상과 현실, 디지털과 아날로그,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영역을 넘나든다는 의미를 함축하고 있다. <Borderlss>전에 참여한 6명의 아티스트 이은석 이근우 이진훈 김호용 김범 한아름은 데브캣스튜디오(devCAT Studio)의 주요 멤버다. 개발자(Developer)와 고양이(Cat)의 영어 단어를 합성한 데브캣은 온라인 게임 산업에서 선두를 달리는 (주)넥슨에 소속된 개발 전문 스튜디오 중 하나다.
데브캣스튜디오는 2001년 처음 설립되어, ‘생활형 MMORPG(다중 사용자 온라인 롤플레잉 게임)’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마비노기>를 제작했다. 처음엔 데브캣팀으로 시작되었으나 2004년 데브캣스튜디오로 승격, 넥슨에서 독립성 강한 스튜디오 체제를 구축했다. 그 이후 이들은 2010년 대한민국게임대상에서 대상을 포함한 6개 부문을 석권한 <마비노기 영웅전>을 제작했으며, 최근에는 <마비노기2>를 비롯한 신규 프로젝트를 개발 중이다. 상업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마비노기> 시리즈는 웨일스 음유시인의 노래를 통해 전해 내려 온 켈트 신화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물로서, 탄탄한 스토리에 화려하고 역동적인 3D 영상으로 게임 유저들의 뜨거운 사랑을 받고 있다. 데브캣스튜디오의 총책임을 맡고 있는 이은석 실장은 KAIST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인재로서, 2002년 넥슨에 입사한 이래 <마비노기><마비노기 영웅전> 등에서 특유의 예술적 감성과 앞선 기술력을 접목한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이러한 활약을 통해 그는 차세대 온라인 게임 산업을 이끌 주요 개발자로 꼽히며,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그 외에 다른 팀원들도 마찬가지다. 게임 개발로 승승장구하던 이들이 작가로 새로운 도전장을 낸 이유는 무엇일까?
넥슨은 1994년 설립 이후, 세계 최초의 그래픽 온라인 게임 <바람의 나라>를 선보인 이래,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일본 태국 싱가포르 미국 캐나다 등 전세계 104개국에 <마비노기영웅전> <카트라이더> <메이플스토리> <던전앤파이터> 등 57종에 이르는 게임을 진출시켜, 현재 약 12억 명이 넘는 엄청난 회원수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사업 규모가 확대되어 제작 시스템이 분업화될수록, 점차 개인이 갖고 있는 개성을 반영할 수 있는 범위가 약화되었다. 거대한 톱니바퀴의 한 부품처럼 반복적인 업무 속에서 한 곳에 매몰되는 듯한 느낌도 들었다. 이 분야에서 10년 넘게 활동하며 전문가로 인정받은 이들은 자신이 경험해 보지 않았던 또 다른 영역을 체험해 봄으로써, 예술적 감수성으로 충전하는 계기가 필요했다. 각자 표현해 보고 싶은 창작욕을 맘껏 표출해 보고 싶었다. 왜냐하면 이들도 ‘게임’이라는 매체를 사용할 뿐, 결국은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는 창작자이기에….
<Borderless>전에는 기존의 게임을 모티프 삼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 낸 작품 20여점이 전시된다. 가장 최신의 미디어 테크놀로지를 사용하던 주특기를 살려 새로운 예술의 형식을  제시한 작품들이 눈에 띈다. 먼저 데브캣스튜디오에서 원화를 담당해 온 이근우는 이번 전시에 아크릴화와 함께 <마비노기>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픽셀로 색분할을 한 뒤, 컴퓨터에 랜선을 꼽는 부품을 이용해 퍼즐 맞추기 식으로 픽셀아트를 구현했다. 또한 비주얼파트에서 이펙트, 사운드, 멀티미디어를 주로 맡아 온 이진훈은 게임에 등장하는 유저들의 캠프파이어 모습을 미디어 인스톨레이션 작품으로 재해석했다. 이은석의 인터랙티브 아트 작품 <아바타 거울>은 관객의 몸동작을 인식해 곧바로 모니터 위에 디지털화된 아바타의 모습으로 재현한다. 자신의 모습이 디지털화된 것을 즉각적으로 확인하는 과정에서 관객은 가상과 실제의 경계를 다시 한 번 환기하게 된다.
반면, 페인팅과 조각 등 순수미술의 방식에 도전한 작가들도 있다. 이번 전시 참여 작가 중에서 홍일점인 한아름은 평소 게임 포스터 작업을 많이 맡았다. 그동안 그녀가 제작해 온 포스터는 붓터치와 빛의 효과가 살아 있어 전통적 서양화 같은 느낌을 물씬 풍긴다. 그러나 느낌만 그럴 뿐 컴퓨터로 그린 것이다. 이번 전시에서 한아름은 자신이 과거에 제작했던 포스터 그림을 대형 캔버스로 옮겨 극사실적인 유화를 그렸다. 미루어 보건데 그 과정이 쉽지 않았을 터. 컴퓨터 그래픽툴로 표현할 수 있는 극적인 비주얼은 아무리 유화를 많이 그려 본 사람이라도 표현해 내기 힘들기 때문이다. 대학에서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그녀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거의 처음으로 유화를 다뤄 봤다고 한다. 그럼에도 굳이 유화를 고집한 이유를 물었더니 “게임하는 사람들조차 게임을 하위문화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순수미술 매체를 통해 그러한 인식을 바꾸고 싶었다”고 답했다. 한아름과 함께 페인팅에 도전한 김범은 게임에 등장하는 여주인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아크릴화로 표현했다.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여성들은 인기 여배우의 이목구비와 닮아 있고, 핸드백과 하이힐 등 명품패션으로 치장하고 있다. 또한 평소 게임 캐릭터를 소형 피규어로 만드는 작업을 해 온 김호용은 게임에서 신으로 등장하는 주인공을 거대한 조각상으로 만들었다. 근엄하고 육중한 외형은 마치 고대 그리스 로마 유적에서 출토된 대리석 조각상을 떠올리게 한다.

예술보다 파급력 강한 ‘예술’을 꿈꾸며
물론 이들이 단 한 번의 전시로 전업 작가가 되는 건 아니지만, 자신의 이름 석 자를 걸고 독립된 작품을 제작해 그것을 관객에게 발표하는 행위는 분명 색다른 경험으로 남을 것이다. 참여 작가 김범은 “모니터와 태블릿, 마우스만 사용하다보면, 기법은 물론 생각까지도 얽매어 있게 된다. 그림을 직접 그리면서 의식이 많이 깨어졌다. 작품의 발상과 그것을 표현하는 방법의 폭이 넓어졌고, 기존 작품의 변화에도 자신감이 생겼다. 전시가 끝난 뒤에도 틈틈이 개인 작업을 더 해보고 싶다”며 이번 전시의 의의를 강조했다. 사실 이 전시는 지난해 초부터 장기간 준비해 온 것으로, 참여 작가들은 몇 달 전부터 사옥 부근에 작업실을 얻어 일과 작업을 병행해 왔다. ‘낮에는 직장인, 밤에는 예술가’로 벅찬 일정을 소화하느라 그들의 얼굴은 피곤함이 역력했지만, 눈빛만은 전시를 앞둔 여느 작가들처럼 설렘으로 가득 차 보였다.
넥슨에서는 이번 전시를 시작으로 향후 데브캣스튜디오 외에 다른 팀들의 예술 프로젝트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순히 ‘보여 주기’ 위한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하위문화로 치부되는 게임에 대한 인식 저변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해 다양한 문화예술 접근 방식을 모색 중이다. 일찍이 네덜란드 문화사학자 요한 호이징아는 그의 저서 《호모 루덴스》에서 ‘문화란 원초(原初)부터 유희되는 것이며, 인간의 본성은 유희에서 비롯된다’고 역설한 바 있다.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분야인 만큼 게임이 가진 파급력은 전시장에 걸린 작품과 비교할 수 없이 강하다. 보다 예술적인 게임, 그리고 게임처럼 재밌는 예술. 미래의 예술은 분명 이 둘의 간극이 좁혀진 모습일 것이다.
-2012년 1월호 <핫피플>

2012/02/06 11:42 2012/02/06 1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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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올해에는 국내 비엔날레에 대해 새로운 이야기를 할 만한 것이 없다. 왜냐하면 광주비엔날레를 비롯한, 국내 주요 비엔날레로 꼽히는 부산비엔날레와 미디어시티서울은 짝수 해에 모두 열리기 때문이다. 그 밖에도 타이페이비엔날레, 싱가폴비엔날레, 상하이비엔날레, 시드니비엔날레까지 아시아 지역의 비엔날레 대부분이 짝수 해에 열린다. 반대로 홀수 해에는 베니스비엔날레를 위시하여 이스탄불비엔날레, 리옹비엔날레 등 유럽을 중심으로 비엔날레가 전개된다. 쉽게 말해 올해는 유럽 쪽이 영업 중이고, 아시아 쪽은 휴업 중인 시기다. (어쩌면, 이러한 ‘몰림 현상’은 비엔날레 정치학이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이 글에서는 국내 사례보다는 비엔날레를 둘러싸고 전 세계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이슈들에 대하여 가장 최근 개막한 리옹비엔날레(2011. 9. 15~12. 31)를 중심으로 풀어 나가고자 한다.

“비엔날레는 실험적인 예술가들을 모아 창작과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교류하는 기회를 제공하는 거의 유일한 장이다”라는 작가 수퍼플랙스의 말처럼, 비엔날레는 미술 분야에서 가장 큰 ‘축제’다. 비엔날레는 국내 작가 중심으로 전개되던 아트씬에 신선하고 역동적인 에너지를 불어 넣는다. 비엔날레의 큰 특징 중 하나는 설치미술의 형식으로 새로운 작품을 선뵈는 것이라서, 참여 작가들은 전시가 열리기 전부터 들어와서 장기간 체류하는 것이 보통이다. 또한 전시 개막일에는 해외 저명 평론가와 큐레이터, 언론까지 대거 방문해 그야말로 ‘지구촌 축제’를 벌이게 된다.
비엔날레는 기본적으로 2년에 한 번 열리는 것을 일컬으며, 주기에 따라 3년마다 열리는 것은 트리엔날레라고 칭한다. 하지만 트리엔날레 역시 해외 작가들의 작품이 예술감독/큐레이터가 결정한 단일한 주제나 제목 아래 자신의 예술적 기량을 맘껏 펼쳐 보인다는 비엔날레의 주된 형식과 다르지 않기에 대부분 ‘비엔날레’로 통칭하는 경향이 있다. 특히 비엔날레는 수도보다는 제2의 도시에서 열리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그 이유는 지방자치제 이후 각 도시별 지역 문화 마케팅의 한 방편으로 설립되기 때문이다. 이것을 도시가 아닌 국가 단위로 확대시켜 살펴보면, 비슷한 이유로 최근 20년간 설립된 비엔날레의 대다수는 아시아 등 개발도상국이 차지한다. 한국만 하더라도 동시대 순수 미술을 다루는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와 미디어아트를 전문으로 다루는 미디어시티서울 외에 청주공예비엔날레, 경기도자비엔날레, 인천여성비엔날레 등이 열린다.
해외로 눈을 돌리면, 전세계 180여개의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과유불급이지 않겠는가. 최근 비엔날레를 둘러싼 회의론과 무용론도 서서히 고개를 들고 있다. 미술평론가 심상용은 “비엔날레야말로 서로의 경력을 부풀리고, 그 부풀린 경력을 존중하면서 제조되고 축조되는 권위와 명성의 각축장이다. 비엔날레의 소통은 그 확산을 위해 끝없이 내부로 열리지만 밖으로는 닫혀 있다”고 강한 부정적 견해를 펼친 바 있다. 신생 비엔날레는 저마다 차별화 전략을 짜내기 위해 골머리를 앓고 있고, 실제로 비엔날레 규모의 대형 전시에 적합한 스타 큐레이터를 영입하기 위해 각축전을 벌인다. ‘제트족’에 비유되는 스타 큐레이터 몇몇 만이 미주에서 유럽으로, 아시아에서 중동으로 옮겨 다니며 비엔날레를 생산해 내고 있다.
비엔날레를 통해 국제적 큐레이터들의 역할에 대해 논의하는 것은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이다. 큐레이터 역사상 가장 뛰어난 큐레이터로 꼽히는 하랄트 제만을 위시해 그 뒤로 카스퍼 쾨니히, 로자 마르티네즈, 카트린 다비드, 바시프 코르툰 등의 스타 큐레이터들을 통해 직업으로서의 큐레이터 개념이 자리 잡을 수 있었다. 비엔날레 큐레이터들은 자신들을 전통적인 미술관에서 가급적 멀어지고자 했다. 그들은 한 곳에 속하기 보다는, 전 세계 비엔날레로부터 초청 받으면서 적극적으로 동시대 미술계를 확장시키며, 다원화와 동질화에 결정적 역할을 미쳤다. 한국에서도 그러한 사례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광주비엔날레가 1997년 하랄트 제만을 객원 큐레이터로 초청했으며, 2009년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를 예술감독으로 영입했다. 또한 내년 부산비엔날레의 예술감독은 바로 지난해 카셀도큐멘타(독일 카셀에서 5년마다 열리는 비엔날레형 전시)를 기획했던 로저 M.브뤼겔로 정해졌다. 그런가 하면 전세계 비엔날레가 몇몇의 스타 큐레이터와 작가가 돌고 도는 ‘스탠다드’화에 대한 반성적 시도로서 신예 큐레이터를 영입하거나 공동 큐레이터제를 채택하기도 한다. 2012년 광주비엔날레에서 한국의 김선정을 비롯한 일본의 마미 카타오카, 중국의 캐롤 잉화 루, 인도의 낸시 아다자냐, 카타르의 와싼 알-쿠다이리 등과 함께 공동 큐레이터제로 운영된다는 점에서 이러한 징후를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얼마 전 개막한 리옹비엔날레의 역사를 살펴봐도 이러한 고민의 흔적이 역력하다. 과거 리옹비엔날레도 스카 큐레이터를 영입하는 전략을 세우곤 했다. 대표적인 예로는 1997년 하랄트 제만의 <타자>, 2000년 장 위베르 마르탱의 <이그조티즘 나누기> 등을 들 수 있다. 그런가 하면 큐레이터의 이름이 간판이 되고 중심과 주변이 이분되는 현상을 문제시하며 역발상의 전략을 세우기도 했다. 2001년에는 신세대 큐레이터와 평론가 등 다전공의 비전형 기획자 7명을 커미셔너로 초청, 미술뿐 아니라 영화 사진 무용 음악 연극 문학 게임 등을 아울렀다. 2003년에 큐레이터 개인이 아니라, 팀으로서 디종의 현대미술센터 르콩소르시움의 기획단을 초청한 것도 비슷한 맥락에서다. 그 다음 회인 2007년에는 더욱 급진적인 형태의 공동 큐레이터 제도를 시도했다. 먼저 프랑스와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스테파니 무아동과 한스 울리히 오브리스트를 큐레이터로 영입했고, 이들은 다시 ‘플레이어’ 개념으로 전 세계의 미술 현장에서 뛰는 49명의 큐레이터를 초청해, 작가와 큐레이터를 1:1로 매칭해서 전시를 진행했다.
그런데 바로 지난 회부터 리옹비엔날레는 다시 단독 큐레이터제로 되돌렸다. 독립 큐레이터 후 한루를 큐레이터로 선정해 2009년 <일상의 스펙터클>을 발표한 것이다. 얼핏 프랑스에서 중국 큐레이터를 선정했다는 것이 뜻밖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후 한루는 중국 출신이지만, 파리를 근거지로 삼아 활동해 온 인물로, 이미 1999년 베니스비엔날레 프랑스관의 커미셔너를 맡은 바 있다. 그러나 올해 리옹비엔날레에서 남미 큐레이터를 채용한 것은 확실히 ‘의외의 선택’이었다. 큐레이터 빅토리아 누트론은 현재에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살면서 그동안 남미에 기반을 두고 활동해 온 인물이 때문이다. 또한 누트론의 경력을 살펴봐도 2009년 브라질의 포르토알레그레에서 개최된 메르코술비엔날레 외에는 비엔날레 기획 경험이 많지 않은 큐레이터이다.
리옹비엔날레에서 빅토리아 누트론을 큐레이터로 영입한 것은 전 세계에 편재한 비엔날레의 상투성에 균열을 내려하는 의지로 해석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사진이나 비디오 같은 매체적 접근이나 중국이나 인도 같은 지역적 접근에 초점을 맞추며, 비슷한 작가들과 작품들을 반복적으로 전시하는 일종의 클리세를 없애려는 것이다. 누트론 역시 이러한 리옹비엔날레의 의지에 화답하는 의미로 비엔날레 개최에 앞서 19개의 항목으로 이루어진 선언문을 발표했다. 그 선언문 중에서 인상적인 내용은 “예술과 커뮤니케이션은 구분되어야 한다”면서, 대규모 축제라면 필수적으로 생산되는 보도자료와 도록을 만들지 않겠다는 것이다. 정형적인 톤과 어휘로 작성된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단순한 정보로 확산되는 방식의 얄팍한 커뮤니케이션은 예술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또한 비엔날레 도록은 작품 도판을 담는 일반적인 형태가 일종의 텍스트로 이뤄진 독립적 예술 작품을 목표로 하고 있다.
빅토리아 누트론이 제안하는 리옹비엔날레의 새로운 목표는 마치 관광 상품 같은 이벤트가 아닌, 가장 순수한 예술의 모습을 보여 주는 데 있는 듯하다. “동물이나 야수 혹은 전쟁 상태처럼 보이는 살아 있는 전시를 만들겠다”는 그녀의 말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또한 그녀의 전시 곳곳에서는 문학적 접근이 묻어난다. 우선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로 사용된 <치명적인 아름다움이 나타났다(A Terrible Beauty is Born)>이라는 말은 시인 예이츠가 1916년 발표한 시 <부활절>에서 차용한 것이다. 누트론은 미술 외에 문학이나 퍼포먼스 등 다양한 예술 작품을 적재적소에 배치함으로써 비엔날레 전시를 하나의 아상블라주 작품처럼 꾸몄다.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은 로버트 쿠스미로스키의 <Stronghold>다. 아래층에서 보면 침투가 불가능한 원형 요새처럼 보이지만, 위층으로 올라가서 내려다 보면 불타고 흐트러진 채들로 가득찬 커다란 실내 도서관의 모습이다. 바로 옆 부드러운 조명이 비치는 무대에는 1969년 경 쓰여진 사무엘 베케트의 35초짜리 희곡 <레스>가 상연되고 있다. 이는 삶에 대한 냉소적 시선으로 유명한 다니엘라 토마스 감독이 베케트의 간결한 지시문에 따라 충실하게 재현한 것이다. 이쯤에서 라틴 문학을 대표하는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와 아돌포 비오이 카사레스가 떠오른다. 보르헤스가 유난히 좋아했던 백과사전식 접근법은 비엔날레 참여작가 중 에릭 벨트란의 작업에서 발견할 수 있다. 그는 하나의 검은 천체를 제작하고, 그 위에 현대 사회를 이루는 구성 요소들을 그래픽 이미지로 나열해 놓았다. 거대한 우주의 면면을 바라보다 보면 불현 듯 날아다니는 종이비행기를 발견하게 된다.
작가 명단을 살펴보면, 60명(팀)의 참여 작가 중에서 절반 이상이 중남미 출신이다. 큐레이터 누트론은 참여작가 선정에 대해 “개인으로서 참가하는 것이지, 국가나 지역의 대표로 참가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모든 큐레이터가 자신의 지역적 특색을 애써 감출 필요는 없다. 대다수의 비엔날레나 축제가 이국적인 볼거리로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 전략을 내세우기 때문이다. 그러나 누트론의 경우, 비엔날레의 상투성을 거부할 것이라는 의지를 애초부터 강하게 표명했었기에 스스로의 모순에 빠지는 상황이 되어버린다. 그밖에도 누트론의 결연한 의지와 상관없이, 리옹비엔날레에 대해 날짜, 장소, 주제, 참여 작가, 부대 프로그램 등의 정형적인 보도자료 내용으로 ‘얄팍하지만 넓게’ 확산되고 있다. 심지어 리옹까지 가지 않아도, 동영상 서비스로 마치 비엔날레 전시장을 본 것처럼 ‘행세’할 수도 있다.
사실 이렇게 비엔날레의 상투성을 경계하는 것은 리옹의 빅토리아 누트론보다, 스타 큐레이터들이 더욱 첨예하게 고민하는 부분이다. 왜냐하면 비엔날레가 열리는 도시/국가는 여기저기 분산되어 있지만, 비엔날레급의 국제적 행사라면 전 세계 모든 이가 관객이 되는 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큐레이터들은 동일한 관객이라는 점을 의식하면서 주제나 전시방법론의 변화를 통해 자신의 폭넓은 예술관을 보여 줘야 한다는 압박감에 사로잡힌다. 국내의 경우를 떠올려 봐도 2008년 광주비엔날레의 예술감독을 맡았던 오쿠이 웬위저의 경우 전시 제목을 ‘연례 보고’라고 정하고, 새로운 작품이 아닌 이전 해에 전세계 주요 미술기관에서 선보였던 평판 좋은 작품들을 한 자리에 끌어 모으는 시도를 했다. 심지어 올해 열린 이스탄불비엔날레의 예술감독 옌스 호프만은 전시 제목을 ‘무제(Untitled)’라 정했다.
이처럼 수많은 모순과 한계, 그것에 대한 대안과 실천을 동시에 안고 가는 것이 오늘날 비엔날레의 현실이다. 또한 큐레이터들이 아무리 완벽하고 획기적인 전시 주제와 방법론을 개발한다 하더라도, 관객들은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또한 관객들이 비엔날레의 상투성 운운하면서도 결국은 비엔날레의 큐레이터 리스트나 참여작가 리스트부터 확인하고 전시를 평가하려 든다. 더욱이 ‘축제’라는 형식이 태생적으로 안고 있는 ‘대중성’이라는 과제 때문에 비엔날레의 성패는 예술성보다는 관객수와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로 환원되곤 한다. 광주비엔날레재단의 대표를 맡고 있는 이용우는 “이제 예술은 정신적 가치라기보다는 물질적 가치가 점유하는 거래 중심의 질서가 완성되어 가고 있으며, 시장이 문화적 재미를 첨가시킨 새로운 프로그램까지 등장시킴으로써 예술의 공공성이나 공동체적 가치 등을 제어하는 슬로건들을 만들어 낸다”는 다소 현실적인 진단을 내리고 있다.
심지어 가장 오래된 전통으로 세계 최고의 비엔날레로 군림하고 있는 베니스비엔날레는 여전히 ‘국가관’ 제도와 시상제도를 운영하면서 (미술 전문지가 아닌 일간지 중심으로) ‘미술 올림픽’과 같은 선정적인 수사를 언급하며, 국가주의를 대중으로 하여금 호도하고 있다. 실험적 예술을 국경 없이 품으려 했던 비엔날레의 본질이 흔들리는 것이다. 전세계의 비엔날레는 이렇듯 엘리트주의와 대중주의, 예술성과 상업성 등이 교차하는 곳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벌이고 있다.
-CULTURA 2011년 겨울호 <특집: 축제의 지형학> 中

(Special Thanks to S.N. Kim)
2012/02/06 11:39 2012/02/0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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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 한복판, 태평로에 위치한 유리로 지어진 아름다운 미술관이 있다. 얼마 전 로댕갤러리에서 ‘삼성미술관 플라토’라는 이름으로 바꾸어 재개관한 이곳에서 프랑스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전시장 입구에 들어서면 자연 채광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글래스 파빌리온 속에서 눈부시게 반짝이는 유리구슬들이 관객의 눈을 사로잡는다. 특히 거울 소재로 된 푸른색과 보라색의 거대한 유리구슬들은 상설작품인 로댕의 <지옥의 문>, <깔레의 시민> 같이 어둡고 장엄한 조각과 대비를 이루며 화려한 빛을 내뿜는다.

프랑스 생테티엔에서 1964년 태어난 장-미셸 오토니엘은 20대에 작가로 데뷔하자마자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요셉 보이스 등 현대미술의 거장들을 중심으로 5년 마다 독일에서 열리는 대규모 전시인 카셀도큐멘타에 초청을 받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퐁피두센터와 루브르박물관 등 프랑스의 대표적 미술관에서도 일찍이 전시를 연 바 있다. 이후 미국 예르바부에나예술센터, 이탈리아 빌라 메디치, 프랑스 까르띠에현대예술재단 등에서 개인전을 개최하며 지금까지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장-미셸 오토니엘이 한국에서 여는 첫 번째 전시다. <My Way>라는 전시 제목이 시사하듯 1980년대에 제작된 초기 작업부터 최근작까지 아우르며 오토니엘의 예술 인생을 잘 보여 준다.
오토니엘의 작품은 대개 ‘어렵다’고 느껴지는 현대미술의 형식성이나 개념주의를 내세우기보다는 한눈에 봤을 때 예쁘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조형미가 강조되어 있다. 그래서 일부의 예술 평단에서는 오토니엘을 두고 종종 상업적 작가로 폄하하기도 하지만, 그의 작품 속에는 인간의 고통과 상처를 보듬는 진지한 주제의식이 내포되어 있다. 오토니엘은 그가 구축한 마법과 환상의 세계를 통해 “예술가로서 나는 세상에 다시 마법을 걸고 싶다. 비극적인 순간에서 자연의 아름다움, 재료의 경이로움 혹은 감정의 진실함 같은 기본적인 것들을 발견하게 하고 싶다”고 말한다.
글래스 파빌리온을 지나 본격적으로 전시가 열리는 공간으로 향하면 입구에는 널따란 갈색 벽면이 가로막고 있다. 얼핏 갈색 페인트로 칠한 벽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성냥을 켤 때 사용하는 인 성분으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바닥에는 타고난 성냥개비들이 널려 있다. 이 작품의 제목은 <소원을 비는 벽>이다. 1995년 베를린에서 처음 소개된 것으로, 관객들이 직접 벽면에 성냥을 그어 불을 붙이고 마음속으로 소원을 비는 작품이다. 전시 기간동안 관객들의 참여로 벽면에 남겨진 성냥을 그은 흔적들은 추상화나 드로잉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는 작가와 관객 사이의 친밀한 교감을 유도하며 예술의 치유력을 직접적으로 증명하고 있다. 특히 이 작품은 작가의 예술 인생에 있어, 은밀하고 사적이었던 초기 작품과 보다 폭넓고 초현실적인 최근 경향을 시기적으로 구분 짓는 전환점으로 평가되고 있다.
<소원을 비는 벽>을 지나면 오토니엘의 초기 작업 중심으로 전시된 방이 나온다. 특히 이번 전시에 출품된 작업 중에서 가장 오래된, 즉 오토니엘의 첫 작품으로 꼽히는 것은 1986년에 제작된 사진 <사제복을 입은 자화상>이다. 다시 말해 오토니엘이 작가가 되기로 결심하게 된 직접적인 동기가 된, 그의 삶에서 가장 극적인 사건이 담긴 작업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어린 시절 오토니엘이 사랑했던 상대는 사제의 길을 꿈꾸었던 남성이었다. 하지만 그 연인은 비극적인 죽음을 맞게 되었고, 작가는 남겨진 자의 슬픔을 작업으로 승화시켰다. 일종의 자화상에 가까운 이 흑백 사진은 상실의 고통과 상처, 그리고 부재하는 신체에 대한 갈망과 집착 등 작가의 전작을 아우르는 주제들을 모두 담고 있다.
자칫 무거워 보이는 주제를 다루면서도 작가는 유머와 재치를 잃지 않는다. 전시장 한 켠에는 커다란 흰 천이 걸려 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면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구멍 뚫린 천을 가지고 벌인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도 볼 수 있다. 구멍 사이로 눈을 갖다 대기도 하고, 배꼽이나 다른 신체 부위를 드러내기도 한다. 관객들은 창호지에 구멍을 뚫어 훔쳐보던 한국의 전통적 풍경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작품의 제목인 <쾌락의 구멍>이라는 말은 프랑스에서 공공화장실의 칸막이에 뚫린 구멍을 의미하는 성적 은어로, 주로 남성 동성애자 포르노그래피에 자주 등장한다. 하지만 오토니엘은 흰색 실크 위에 화려한 색으로 정교하게 수를 놓음으로써 퇴폐와 쾌락주의의 상징이 아닌 순수한 소통의 통로로 재탄생시켰다. 또 다른 작품 <장식용 천 위에 그린 프랑스 지도> 역시 “프랑스의 지도를 그린다”의 표현은 프랑스어로 ‘몽정’을 뜻하는 언어유희다.
그 밖에도 오토니엘의 여러 작업에서 성적 코드가 드러나는 경우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유두 회화>와 <고리와 유두> 등에서는 여성의 가슴과 닮은 붉은 원형들을 이용해 에로틱하면서도 추상적인 형태를 만들었다. 또한 <녹색 항문>과 <시빌의 구멍> <매우 긴 고통의 시작> 등은 초록색, 노랑색, 핑크색 등의 왁스를 이용해 부조를 만들고 그 가운데에 구멍이나 손가락을 떠올리게 하는 모호한 형상을 만들어 놓았다. <두음전환>이라는 작품  역시 그 중앙에 입, 눈, 항문 등과 유사한 형태의 분화구가 만들어져 있다. 특히 이 작품의 재료는 작가가 1990년에 에올리에 제도의 화산을 방문하던 중, 화산 용암이 식으면서 생성되는 ‘흑요석’이라는 것이다. 마치 거울처럼 빛나는 검은 표면과 용암처럼 흐르는 듯한 물성은 보는 이의 시각뿐 아니라 촉각을 자극하며, 작가의 예민한 감수성과 보다 직접적으로 교감하게끔 한다. 
눈치 빠른 독자들은 이미 알아차렸겠지만, 작가는 동성애자다. 그리고 장-미셸 오토니엘은 자신의 성정체성을 작품을 통해 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특히 1990년대 문화예술 전분야에 걸쳐 젠더 및 퀴어 담론이 큰 이슈로 대두됐던 상황을 고려해 본다면 오토니엘의 예술 세계를 좀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1997년 게이프라이드(동성애자 권리운동)를 기해 제작된 <상처-목걸이>는 그 전 해에 에이즈로 사망한 게이 작가 펠릭스 곤잘레스-토레스를 추모하기 위한 작품이기도 하다. 오토니엘은 작은 붉은 구슬로 엮어 1000개의 목걸이를 만들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그것을 착용한 모습을 촬영했다. 지금도 작가는 이 목걸이를 착용하고 있다고 한다.
오토니엘은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유리를 사용하는 작품들을 제작했다. 작가는 로마에 위치한 빌라메디치에 입주해 작업한 것을 계기로, 유리공예로 유명한 베니스의 무라노섬을 오가며 이탈리아의 유리 장인들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사실 유리라는 소재는 공예 분야에서는 흔히 사용되지만, 순수미술에서는 소외 받아 왔다. 그러나 작가는 유리를 이용해 자신의 예술 세계를 초현실적 차원으로 확장시켰다. 주로 장신구로 사용되는 유리를 거대한 설치미술로 만든 것처럼 말이다. 여성이 착용할 법한 목걸이나 귀걸이를 크게 블로우업(Blow-up)시켜서 줄에 매단 <매달린 연인들>, <묵주>, <검은색은 아름답다>, <백금의 후광> 등도 있다. 하지만 아름다운 형태 뒤에는 심오한 이야기가 숨어 있기도 하다.
맨 처음 글래스 파빌리온에서 관객을 맞이했던 작품들의 <스스로 서 있는 커다란 매듭> <라캉의 매듭> <커다란 두 개의 라캉의 매듭>이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오토니엘은 프랑스의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영향을 받았다. 즉 작가는 매듭의 구조를 통해 인간의 욕망 깊이 잠재하고 있는 상상계, 상징계, 실재계의 상호의존성을 설명하고자 했다. 전시장에는 그 밖에도 색색깔의 무라노 유리로 만든 조각들이 여러 군데 매달려 있다. 뜨거운 온도에서 녹아내리는 속성을 이용해 다양한 형태를 연출한 <무제> 시리즈들은 남성의 성기나 혹은 해파리 같은 형체가 불분명한 유기체를 떠올리게 한다. 특히 필자가 가장 마음에 든 작품이기도 한 <눈물들>은 물이 가득 채워진 60개의 유리병 속에 갈고리, 하트, 별, 해마 모양 등의 유리 조각 2000여 개가 들어 있다. 이전 작품들의 모티프가 함축되어 있는 듯 눈물 위에 떠도는 화려한 색채의 오브제들을 통해 대형 설치작품과는 변별되는 ‘환상의 소우주’가 펼쳐져 있다.
마지막 방에 당도하면 관객들은 마치 ‘유리 궁전’에 온 듯한 기분이 들게 된다. 본래 유리 벽으로 지어진 미술관의 한쪽 벽면은 비즈가 달린 하늘색 망사 커튼이 쳐져 있고, 알록달록한 유리로 된 침대가 놓여 있다. <나의 침대>는 2003년 프랑스 까르띠에재단에서 열렸던 개인전 때 제작된 작품으로, 그로부터 2년 전 파리 지하철 프로젝트 <야행자들의 키오스크>를 극적으로 확장시킨 것이다. 전작에서 공공을 위한 안락한 쉼터를 제안했다면, <나의 침대>는 개인만의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으로서, 관객을 몽환적인 환상의 세계로 초대한다.  이번 전시는 올해 3월 퐁피두센터에서 처음 열려 관객의 뜨거운 반응에 의해 세계 순회전을 돌고 있다. 서울이 그 첫 번째 순회지이며, 이후 도쿄의 하라현대미술관과 뉴욕 브루클린미술관으로 향할 예정이다.
-매거진S 2011년 10월호

2012/02/06 11:33 2012/02/06 1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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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술 관련 뉴스로 작가들의 수상 소식이 부쩍 많이 올라온다. 지난 10월에만 두산연강예술상, 양현미술상, 이인성미술상이 새로운 수상자를 냈다. 어떤 상이건, 작가가 ‘상을 받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영예로운 일이다. 사회적으로 자신의 예술적 능력을 인정 받고, 또 그러한 사실이 널리 알려지는 기회가 아닌가. 거기에 상금이나 부상도 받게 되니 더욱 즐거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상을 ‘받는 쪽’이 있다면, 당연히 상을 ‘주는 쪽’이 있다. 요컨대 상을 제정하고 운영하는 주체다. 미술상의 주체를 살펴보면 시대에 따라 하나의 ‘트렌드’가 감지된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의 조선미술전람회와 해방 이후의 대한민국미술전람회로 대표되는 관전(官展), 즉 국가에서 시행하는 공모전의 수상제도를 꼽을 수 있다. 1970년대에는 한국미술대상전을 시작으로 중앙미술대전과 동아미술제 등 민전(民展)이 생겨났고, 1980년대에 들어서는 미술 관련 단체나 잡지사, 화랑 등이 새로운 상을 잇달아 제정했다. 한편 1987년 김세중조각상을 시작으로 작고작가의 유족이나 원로작가가 제정한 상이 급증했다. 김종영 문신 석주(윤영자) 월전(장우성) 이동훈 이중섭 하종현 등의 이름을 내건 상들이 여기에 속한다.
근자에는 기업에서 주는 미술상이 ‘대세’다. 다음작가상 송암미술상 송은미술대상 양현미술상 에르메스코리아미술상 연강예술상 일우사진상 일현트래블그랜트 파라다이스예술상 등은 모두 2000년 이후 기업에서 제정한 상이다. 이 상들은 모두 예술 분야의 지원을 목표로 출발했지만, 점차 그 수가 늘어나면서 각기 상의 성격과 목표를 달리해 차별적인 운영 전략을 짜고 있다. 미디어아트나 사진 등 특정 장르로 특화하기도 하고, 해외 작가로 수상 대상을 확대하기도 한다. 또한 수상 작가의 연령을 달리해 신진 작가에게는 개인전을 지원해 주고, 중진 작가에게는 거액의 상금을 주곤 한다. 상금은 대개 천만원대 이상으로 최고 1억 원에 달하는 곳도 있는가 하면, 해외여행이나 국제 레지던시 같은 부상을 제공하는 곳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이 생성되었다. 그러나 기업 미술상의 위상과 인기가 올라갈수록 그에 따른 문제점도 고개를 들고 있다.
첫째, ‘배타성’의 문제다. 대부분의 기업 미술상은 추천제를 통해 수상자를 선정하고 있다. 주최측이 상의 성격이나 수상작가의 퀄리티, 공정성 등을 유지하기 위해 내부적으로 다양한 검증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그 시스템이 너무나 폐쇄적으로 가동되어 외부에는 마치 ‘그들만의 리그’    처럼 비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수상 대상을 해외로 넓혀 시행하는 경우, 국내 작가에게는 상대적 소외감만 안길 뿐 국제적 효과를 얻었는지 아직 알 수 없다.
둘째, ‘연속성’의 문제를 들 수 있다. 과거 기업의 메세나 활동은 미술관을 짓고 작품을 소장하는 등, 지속적 지원의 성격을 띠었다. 그러나 요즘은 1년에 단 한 번, 번듯한 시상식을 여는 것으로 압축시키면서 고효율의 아트 마케팅을 노린다. 수상 제도가 자칫 기업의 ‘보여주기’ ‘생색내기’의 방편으로 전락하기 쉬운 대목이다. 심지어 영국의 터너프라이즈나 미국의 휴고보스 같은 상을 들먹이며 “제2의 백남준을 만들겠다”고 거창하게 떠들었지만, 첫 수상자만 내고 용두사미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셋째, ‘정치성’의 문제다. 기업 미술상은 운영위원 및 심사위원으로 영입된 미술계 인사들이 이해관계에 얽혀 완력 다툼을 벌이는 또 다른 ‘미술 정치’의 현장이 되곤 한다. 더불어 ‘상’이라는 형식이 태생적으로 갖는 역학 관계에 따라 순수한 창작 활동이 서바이벌 게임처럼 변질되거나, 불필요한 사행심까지 부추기기도 한다. 그 밖에도 들리는 후문에 따르면, 미술상이 화려한 겉보기와 달리 ‘속빈 강정’에 지나지 않는 사례가 있다. 공식적으로 내건 상금에 수상 기념전 경비는 물론, 심지어 재단의 연간 운영경비까지 포함시켜 실제로 작가가 수령하는 액수는 얼마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또한 상금과 함께 부상으로 해외 레지던시를 보내 주지만, 항공료나 현지 체류비로 상금을 쓰고 나면 결과적으로 남는 게 없기는 마찬가지. 이때는 일일 경비(Per Diem)가 추가적으로 지급되어야 마땅하다.
문화예술 지원에 좋은 뜻을 가진 기업이 어떤 형태로든 미술상을 운영하는 것은 두 팔 벌려 환영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장기적 계획과 구체적 미션이 없는 상은 오히려 작가들의 창작 활동에 혼란을 주고 우리 미술계를 황폐하게 만들 우려가 있다. 미술의 생태계를 피라미드 형태로 그려 본다면, ‘상’은 가장 상위에 위치할 것이다. 기업의 미술상은 막강한 자본력으로 단번에 미술계 최고의 ‘게이트키퍼(Gate Keeper)’의 자리를 차지한다. 기업이 동시대 예술의 가치를 평가하고 인준하는 ‘상’의 주체가 된다는 사실은 이미 확고한 미술 제도의 울타리에 들어섰음을 증명한다. 그 막중한 책임감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 모두 미술상의 공익성과 효용성을 신중히 자문해 봐야 할 시점이다.
-2011년 11월호 <프리즘>
2012/02/06 11:18 2012/02/06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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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요괴들’이 출범한 지 3년째다. 미술저널의 사회교육적 사명 의식으로 신진작가의 발굴과 더불어 ‘육성’에 초점을 맞춘 ‘동방의 요괴들’, 이 프로그램의 공익성과 잠재력에 뜻을 모으는 기관들이 늘어나고 있다. 전시장이나 레지던스 등의 공간 후원부터 아트페어나 국제전 특별전 초청까지, 그 종류와 형태가 점점 다양해지고 있다. 특히 작년 하이서울페스티벌의 부대행사로 개최됐던 <하이서울아트페어>는 ‘동방의 요괴들’과 서울문화재단 소속 서울시창작공간이 힘을 합쳐 진행한 ‘공동 주최’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사례였다.
이번에 샘표식품과 함께 완성한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는 미술과 기업 메세나의 ‘건강한 만남’이라는 또 하나의 의미가 더해졌다. 최근 아트 메세나에 관심을 갖는 기업이 부쩍 늘고 있지만, 대개 사옥에 조형물을 세우거나 혹은 창작 활동에 일정 부분의 예산을 지원해 주는 등 일차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다. 그러나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는 예술과 기업이 긴밀한 파트너십을 이뤄, 보다 생산적이고 창의적인 예술 프로젝트를 함께 만들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더 크다.

샘표식품, 신진작가에 꾸준한 관심
샘표식품은 지난 65년 간 간장과 된장 등 장류를 중심으로 한국 전통식품을 꾸준히 생산해 오고 있다. 특히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가 진행된 이천 간장공장은 샘표의 원천이자 발상지 같은 곳이다. 또한 이천공장은 단일 품목을 생산하는 설비 시설로는 국내에서 가장 큰 규모(23,150㎡)를 자랑할 뿐 아니라, 임직원은 물론 월 1,000여 명의 주부와 아이들이 찾아오는 ‘견학장’이다. 이천공장은 1987년 준공된 이후 벽면의 결로와 부식을 막기 위해 3~4년마다 페인트를 칠한다. 여느 공장과 다름없이 관리하기 편한 회색으로 칠해 오던 중, 어느 날 문득 샘표식품 박진선 사장은 획기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공장 도색 작업을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특화시키는 큰 그림을 그린 것이다. 기왕이면 신진작가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좋겠다고 어렴풋이 생각했다.
샘표식품은 이번 프로젝트 이전에도 ‘젊은 미술’을 후원하는 데 관심이 높았다. 2004년 이천공장 내에 공장 직원들과 주민들을 위해 ‘샘표스페이스’를 개관, 지금까지 신진작가를 중심으로 전시를 열고 있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 미술계에 ‘젊은 바람’을 일으켰던 1999년, 2000년의 <공장미술제>의 전시 장소 역시 샘표식품 창동공장이었다. <공장미술제>는 이영철, 유진상 등이 기획을 맡아 만 30세 미만의 신진작가를 200여 명을 소개하는 동시대미술의 ‘난장’이었다. 특히 화이트큐브가 아니라 투박한 공장에서 자유로운 형식으로 개최함으로써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뉴밀레니엄의 미술 흐름에 새로운 물꼬를 열었다.
박진선 사장이 품고 있던 도색 작업의 예술 프로젝트는 ‘동방의 요괴들’을 만나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2010년 6월, 샘표식품과 art in culture의 관계자가 만나 첫 기획회의를 했다. 그 이후 여러 번의 미팅을 거쳐 프로젝트의 전체적인 윤곽이 나왔다. 초대형 공공미술 프로젝트인 만큼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는 장기전을 치를 수밖에 없었다. 프로젝트 완성까지 소요 시간을 대략 1년으로 잡았다. 또한 단순히 작가를 지명해서 진행하는 방식보다는 2009년부터 2011년까지 누적 인원 총 1,073명의 ‘젊은 작가 군단’으로 성장한 ‘동방의 요괴들’ 모두를 대상으로 공모전을 열어 참여작가를 선정하기로 했다. 이번 프로젝트의 공공성과 교육적 의미를 전면에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따라서 ‘결과’보다는 ‘과정’에 큰 의의를 두고자 했다. 벽화를 담당하는 작가뿐 아니라 프로젝트의 과정을 기록하는 사진, 영상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도 참여시키기로 했다. 
작년 10월 16일, 이천공장에서 개최한 작가 설명회를 시작으로 프로젝트가 본격적으로 가동됐다. 약 70여 명의 작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의 기본 개념과 공모전 지원 방법에 대해 안내했다. 또한 국내외 공공미술과 벽화를 연구해 온 이태호 경희대 교수의 특별 강연도 마련됐다. 공모전은 크게 벽화, 사진, 영상 영역으로 선택 지원할 수 있도록 했으며, 심사는 예심과 본심으로 11월부터 약 2달 간 나누어 진행됐다.
먼저 예심에서는 포트폴리오와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의 기본 컨셉트인 ‘전통의 현대화’를 주제로 작성한 지원서를 중심으로 심사했다. 권선 권순민 그리마 김남웅 김태윤 나광호 노경영 박미혜 신동근 이국현 이미희 이우리 임창욱 정영구 정지윤 정해민 조주연 최영 최유정 한석경 등 총 20명이 통과했다. 예심 통과자에게는 소정의 제작비를 지급,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를 위한 공모작을 새롭게 만들어 제출하도록 했다. 심사에는 샘표식품과 art in culture 관계자 외에 외부 심사위원으로 금천예술공장 김희영 총괄매니저를 초대했다. 또한 심사에 앞서 공모작을 이천공장에 전시, 직원들의 선호도를 반영했다.

‘샘표 아트 팩토리’가 탄생하기까지
올해 1월, 드디어 최종 참여작가 6인이 결정됐다. 벽화 부문에 그리마(2009동방의 요괴들) 나광호(2 010) 이우리(2009) 정지윤(2010), 사진에 정영구(2010), 영상에 김태윤(2010)이 바로 그 주인공. 참여작가들은 선정 소식을 듣고 기뻐할 여유도 없이, 곧바로 1박 2일 워크숍에 들어갔다. 다시 한 번 이천공장을 방문해 좀 더 꼼꼼하게 현장을 답사했다. 그리고 근처 리조트로 장소를 옮겨 새벽까지 머리를 맞대고 회의를 했다. 다 같이 공유할 수 있는 주제를 정하려 했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참여작가 6인 모두가 동의하고, 샘표식품 측에서 만족할 만한 주제를 찾기가 만만치 않았다. 참여작가들은 이천공장의 도면부터 샘표식품의 역사까지 면밀히 조사했으며, 다른 공공미술의 사례도 연구했다. 심지어 공장 직원들을 상대로 여론조사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 이후로 수 십 번의 미팅과 회의가 온오프라인으로 진행되고 나서 ‘Dream Factory’라는 주제가 채택되었다. 작품 표현 방식에서는 공장 면적이 워낙 넓다 보니, 방문객의 견학 동선을 따라 건물 네 곳의 앞쪽 벽면을 중심으로 구상하기로 했다. 특히 공장 벽면에 규칙적으로 세로 방향의 요철이 나 있는 점에 착안, 전체를 하나의 병풍 형식으로 보고 <신 몽유도원도>를 제작하기로 합의했다. 그리고 구체적인 시안을 만들기 위해 각자 역할을 분담해 진행했다.
어느덧 3월, 샘표식품과 art in culture의 대표 및 임직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작가들이 주제 및 시안을 프리젠테이션했다. 참여작가들은 3D로 프리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고, 리허설도 하는 등 철저한 준비를 했으나 현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요지는 애초에 샘표식품에서 제시한 기본 컨셉트인 ‘전통의 현대화’에서 아직 전통에만 머물고 있을 뿐, ‘현대화’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점이다. 모든 것을 전면 수정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기존 시안에서 <몽유도원도>를 직접적으로 참조하는 데 갇혀 있었다면, 이번에는 ‘꿈’의 개념을 과거와 현재, 미래 그리고 동양과 서양을 아우를 수 있도록 폭넓게 열어 두기로 했다. 과거 4명의 작가가 통합된 하나의 작업을 내는 방식과 달리 각각 한 건물씩 맡아 개별적으로 진행하면서 속도가 붙었다. 이윽고 다음 달에 다시 열린 프리젠테이션에서 최종 시안이 통과될 수 있었다. 게다가 각 건물마다 작가 본래의 작품과 연결 짓는 디자인이 나와서, 참여작가 입장에서도 전보다 잘 된 일이었다. 확정된 도안을 바탕으로 공장 건물에 좀더 세밀하게  3D 모델링을 입히는 작업과 페인트 컬러 넘버링 등 마무리 과정을 거쳐 5월부터는 공장 도색이 시작됐다. 기본 바탕색을 칠하는 업체와 그림만 그려 주는 전문 업체를 달리 선정, 보다 경제적이고 효과적으로 진행할 수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과정은 작가 김태윤과 정영구가 각각 영상과 사진으로 기록했다. 단순한 다큐멘테이션이 아니라, 그 자체가 또 다른 예술 작품으로 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영구는 현장 사진 촬영 외에 흥미로운 작업을 제안했다. 프로젝트 초기에 리서치 차원에서 들춰보게 된 샘표식품의 사보 등 과거 시각자료들을 모아 아트북을 출간하자는 아이디어였다. 정영구 역시 프리젠테이션을 거쳐 이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해서 《2 Time 2 Place》이라는 사진집이 출간됐다. 샘표식품의 65년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으면서도, 작가의 독특한 시선이 가미된 새로운 형태의 사진집이다.

간장공장이 곧 예술이다!
여름의 길목에 들어설 무렵, 마침내 벽화 도색 작업이 완성되었다. 그동안 박제처럼 온통 회색이었던 간장공장이 예쁜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 공장에 들어서면 가장 처음 관객을 맞이하는 포장동에는 큰 소나무 한 그루가 그려져 있다. 건물을 맡은 작가 정지윤은 우리 전통 민화로 익숙한 <십장생도>에 착안, 나뭇가지 끝을 사슴 학 돌 물 등으로 연결시켰다. 이는 세밀화를 통해 전통적인 요소와 현대적인 상징성을 그려왔던 작가의 개인 작품과도 맥락을 같이한다. 샘표식품의 전통성과 역사성을 표현하는 동시에, 인간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건강과 장수를 표현한 것이다. 동력동을 맡은 나광호는 샘표 직원과 견학 온 어린이들의 낙서를 이용해 사람들의 가장 ‘순수한 꿈’을 표현하고자 했다.
생산동 및 연구소를 맡은 이우리는 동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에서 등장하는 귀여운 동물을 통해 ‘환상적인 꿈’을 들려 준다. 샘표식품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기업으로 재미와 유머러스함을 간직한 기업이 되기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특히 직원들이 가장 많이 왕래하는 문에는 행운의 열쇠, 네잎클로버 등을 그려 넣음으로써 문을 통과할 때마다 행운이 올 것이라는 애정 어린 메시지도 담았다. 그리마는 곡물보관탱크부터 굴뚝과 문에 이르기까지 재미있는 표정의 아이콘과 생물체를 그려 넣어 상상력을 자극하고, 각각 독립된 공장들을 하나의 작품으로 연결시키는 아이디어를 냈다.
참여작가 6인은 자신의 도안이 전문 도색 업체의 손을 빌려 실제로 공장에 그려진 모습을 보고 감동과 보람을 동시에 맛보았다. 작가 나광호는 완성된 벽화를 보면서 “젊은 예술가들의 재기발랄한 상상력과 꿈, 땀과 고민, 노력과 시간이 샘표 아트팩토리에 고스란히 기록되었다. 대중성과 예술성 간의 격차를 줄이는 것이 공공미술의 예술적인 질을 높이는 과정이라면, 이번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는 좋은 사례가 되어 줄 것이다”는 소감을 남겼다. 또한 작가 김태윤은 “다같이 한발 한발 조심히 나아갔던 과정 자체가 더욱 훌륭한 작업이었던 것 같다. 차가운 콘크리트 벽만큼이나 닫혔던 마음을 조금씩 허물어 가며 이뤄 낸 꿈…. 공장 벽면만 밝아진 것이 아니라 진행하는 작가들의 마음도 밝아진 듯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의 진짜 주인공은 공장 벽화의 ‘실사용자’라고 할 수 있는 샘표 임직원들이다. 그들의 반응은 예상보다 훨씬 뜨거웠다. 벽화가 완성되자마자 직원들이 핸드폰 카메라로 사진을 찍어 친구에게 전송하는가 하면, 휴일에 가족들을 데리고 나와서 구경시켜 주는 이들도 있었다. 또한 견학 오는 방문객들 역시 버스를 내리자마자 감탄사를 연발했다. 멀리서 보면 작품 속을 넘나드는 관객들도 작품의 일부이다. 공공미술이 진정으로 완성되는 순간이다.

기업과 예술의 즐거운 만남
샘표식품은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의 성공적인 완성을 기념하며, 지난 8월 19일 이천공장에서 샘표식품 임직원과 퇴직자는 물론, 작가들의 지인, 미술관계자와 언론인 등을 초대해 한바탕 잔치를 벌였다. 젊은 작가들이 주축으로 된 프로젝트인 만큼 젊은 감성으로 꾸몄다. 기획전 <D-Factory>를 마련, 참여작가 6인의 개인 작업들을 소개했다. 축제 분위기를 돋우는 밴드 우쿨렐레피크닉과 유자살롱의 공연, 특수 제작된 간장 솜사탕과 팔레트에 직접 덜어 먹는 ‘맛 퍼포먼스’가 제공되어 관객들의 귀와 입을 즐겁게 해 주었다. 또한 행사가 끝나고 돌아갈 때에는 참여작가 6인의 작품을 특별 패키지로 만든 선물세트를 증정했다.
프로젝트 진행 기간 동안 수없이 부딪혔던 갈등과 걸림돌들이 한 순간에 사그라들 만큼, 참여작가와 주최측 모두 흡족한 행사로 마무리했다. 농경지와 공장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이천이 젊은 활기로 가득 찼다. 행사에 참석한 조병돈 이천시장은 “이천에 700여 개 공장이 있는데 다른 공장에도 이런 프로젝트가 퍼져나가 이천이 미술로 유명한 도시가 되면 참 좋겠다”는 말을 남겼다. 그야말로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는 이천의 ‘랜드마크’가 되기에 충분했다. 행사가 끝나자마자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의 눈부신 성과는 각종 일간지와 공중파 뉴스에도 대대적으로 보도되면서 널리 알려지게 됐다.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는 ‘동방의 요괴들’ 입장에서도 매우 긍정적인 사업으로 평가할 수 있다. 자신의 작품을 선보인 경험이 적은 신진작가들이 기업과 일반 대중을 상대로 작업해 보는 경험은 흔치 않다. 또한 팀을 이뤄 다른 작가들과 적극적으로 의사소통을 하면서 작업을 진행하는 협업 방식은 더더욱 소중한 경험이다. 1년 이상 장기 프로젝트를 이끌어 가면서 참여작가뿐 아니라 샘표식품과 art in culture 임직원의 노고도 컸다. 두 회사 간의 긴밀한 협조와 협업으로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완성될 수 있었다. 특히 샘표식품의 실무진이었던 이윤아 홍보과장은 과거 ‘쌈지’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프로젝트 진행 내내 젊은 작가의 입장에 서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었다. 덕분에 ‘여러 사공이 이끌던 배’는 목적지까지 잘 도착할 수 있었다.
21세기는 문화의 시대다. 사람들은 더 이상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보다 행복한 삶, 즐거운 삶을 추구한다. 이제 사회는 물질적 가치의 소비에서 정신적 가치를 향유하는 것으로 변해가고 있다. 기업도 사람들이 모여 사는 작은 사회다. 따라서 최근 기업의 경영 철학에도 문화예술이 깊숙이 파고들고 있다. 역시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문화 CEO’ 박진선 사장은 <샘표 아트팩토리 프로젝트>가 완성되자마자 “공장 외벽은 완성되었으니, 이제 공장 내부를 할 차례”라며 또 다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다. ‘동방의 요괴들’ 역시 문화적 마인드를 가진 기업과 또 다른 형태의 즐거운 ‘만남’을 기다린다. 기업과 예술의 만나, 함께 꿈을 펼치는 것, 바로 거기서부터 건강한 문화 강대국으로 가는 길은 시작된다.
-2011년 9월호

2012/02/06 11:16 2012/02/06 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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