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id #812
categorized under art in culture* & written by 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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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간의 비행 끝에 마침내 뉴욕 JFK공항에 도착했다. 로비 천정에 거대한 알렉산더 칼더 모빌이 걸려 있는 이 공항은 원래 1948년 개항 당시에는 뉴욕국제공항이라고 명명되었으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암살 당한 1963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공항 밖으로 나와 택시를 타고 맨해튼으로 들어서는 길목에서, 차창 밖으로 영화 <Once upon a time in America>에서 본 듯한 대형 공동묘지가 드넓게 펼쳐져 있었다.
잠시 후 휴대폰을 켜보니, 비행 동안 확인하지 못한 트위터의 타임라인은 바로 전날인 1월 18일자 《빌리지 보이스》지에 실린 데미언 허스트의 부고 기사로 떠들썩했다. <Damien Hirst (1965~ 2012): In Memoriam>이라는 제목으로 게재된 이 기사에서는 허스트가 1월 12일 뉴욕에서 사망했다는 소식을 알리며, 적지 않은 분량으로 그의 업적을 서술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의심스러운 점이 많았다. 온라인 상에서는 사망의 진위 여부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올라왔다. 무라카미 다카시 역시 이 기사에 “가고시안갤러리에서의 지나친 상업적 전시에 대한 페이크 기사일 것”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기실 가고시안갤러리에서는 세계 11개 지점에서 1월 12일부터 일제히 데미언 허스트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던 터다. 물론 믿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특종 욕심에 내심 정말로 그가 죽었기를 바라며 첼시에 있는 가고시안갤러리를 가 보았다. 역시 너무나도 평온하게 전시가 열리고 있었고, 사망 기사는 가짜로 판명났다.
구겐하임미술관에서는 지난해 11월부터 시작된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회고전이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었다. <All>이라는 제목의 이번 전시에서 카텔란은 지난 28년 동안 제작했던 작품 128점 모두를 미술관 중앙의 로툰다 홀에 줄로 매달아 놓았다. 마치 ‘천국’과 ‘지옥’으로 갈리기 직전의 사후 세계를 표현한 미켈란젤로의 <최후의 심판> 도상을 떠올리게 했다. 이러한 충격적 디스플레이는 엄청난 시각적 스펙터클을 선사했다.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건축 양식을 따라 빙글빙글 돌아 올라가는 동안, 마치 교수형에 처한 것처럼 걸려 있는 작품들을 하나하나 바라보게 된다. 그 중에는 관 속에 누워 있는 케네디 대통령도 있고, 바위에 맞아 죽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흰 천으로 덮인 시체, 박제된 각종 동물들(말, 당나귀, 비둘기 등)이 있으며, 심지어 작가 자신의 얼굴을 닮은 인형도 매달아 자살을 암시하는 듯 보였다. 카텔란은 이번 전시를 마지막으로 은퇴를 선언했다. 그런데 올해로 51세 밖에 되지 않은 그의 은퇴설은 진짜일까? 그동안 온갖 거짓말과 사기성 짙은 작업들로 악명 높은 그가 아니던가.
전시가 끝나기 하루 전인 1월 21일에는 일종의 ‘은퇴식’으로 저녁 6시부터 새벽 1시까지 총 7시간에 걸쳐 마라톤 심포지엄 <The Last Word>가 진행됐다. 심포지엄 관련 인쇄물의 표지에는 카텔란이 ‘The End’라고 적힌 묘비를 팔에 끼고 걷는 사진이 실렸다. 카텔란이 작가로서 어떤 ‘마지막 말’을 남길지 궁금해 하던 관객들은 미술관 바깥까지 길게 줄을 서 있었다. 이 심포지엄에는 예술의 ‘종말’을 이야기한 아서 단토부터, 작가 트레이시 에민, 이론가 브라이언 오도허티, 가수 코트니 러브 등 30명이 넘는 화려한 출연진이 등장했다. 말 많은 장례식 같았다. 그러나 정작 카텔란은 일을 핑계로 행사장에 오지 않았고, 이 전시를 담당한 큐레이터 낸시 스펙터의 입을 통해 카텔란의 거취가 알려졌다. 그는 곧 뉴욕에서 ‘가업(Family Business)’이라는 새 화랑을 운영할 것이고, 이 사업에는 과거 롱갤러리를 함께 했던 뉴뮤지엄의 마시밀리아노 지오니도 참여한다는 소식이었다.
2012년 뉴욕, 그곳에서는 예술가의 죽음 혹은 예술가의 은퇴조차 한낱 ‘쇼’로 이용하는 해프닝들로 새해의 첫 포문을 열고 있었다. 한편 9.11테러가 일어났던 세계무역센터에서 몇 블럭 떨어지지 않은 주코티공원에서는 지난해 가을부터 월가 점령 시위(Occ upy Wall Street)가 시작되어 그 여파가 전세계로 확장되고 있다. 시위대가 피켓에 쓰는 핵심 단어는 ‘1%와 99%’이다. 온갖 경제적 혜택이 집중된 상위 1%를 탐욕과 부패의 집단으로 상정하고, 나머지 99%는 철저히 소외당하고 있음을 주장하는 것이다. 이는 미술계도 마찬가지다. 《미술수첩》에 의하면 뉴욕과 런던에 살고 있는 예술가는 8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러나 이 중에서 연간 작품매매가 10억 원 이상의 작가는 단 75명에 지나지 않는다. 0.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뉴욕 작가들 대부분은 생업을 따로 둔 채, 주말이나 자투리 시간을 쪼개어 작업하며, 제2의 데미언 허스트나 마우리치오 카텔란을 꿈꾼다. 그러나 1%의 성공한 예술가들은 세습 기업주나 갱단 두목과 다를 바 없이, 젊은 작가에게 자신의 명예와 부를 나눠 줄 아량 따위는 없다. 심지어 그들은 죽었고, 은퇴했지만 망령으로 떠돌며 99%의 예술가들을 괴롭힐 뿐이다. 그야말로 ‘예술 지옥’이다.
-2012년 2월호 <프리즘>
(이 기사를 탈고한 이틀 뒤, 한 작가가 "진짜로" 자살했다. RIP, Mike Kell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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