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1월호, 24회를 마지막으로 이규일 대표님의 연재가 끝났다.
작년 11월부터 시작해서 끝날때까지 내가 편집을 맡았었다.
아르바이트 시절에 대표님께서 손으로 직접 쓴 원고를 타이핑 하던 때부터치면 대표님과 함께한 시간이 꽤 오래된 셈이다.
처음에는 한자에는 까막눈인 나로서는 단순한 타이핑 작업도 버거웠었다. 그리고 편집 할 때에는 대부분 내가 잘 모르는 세계(?)의 이야기여서 어려운 부분이 많았다. 하지만 덕분에 원로미술인들을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숨겨진 "뒷담화"듣는 재미도 쏠쏠했다.

오늘 아침에도 대표님께서는 나를 부르셔서 꺼리가 될만한 신문기사들을 추려서 전해 주셨다.
"토토왈 할아버지"로 불리는 이규일(圭日) 대표님. 왕왕거리는 목소리를 들으며 일하는 것도 이젠 얼마 안남은 듯하다.







'한남백작' 삼성 이건희 회장의 미술 지수
삼성미술관 리움은 서울 도심에서 전통미술과 현대미술을 함께 감상할 수 있는 문화공간이다. 삼성문화재단이 1995년 2월, 서울 한남동 일대 총 5,482평을 사회 공익 시설과 문화예술 공간으로 개발하는 ‘한남동 공익·문화타운’ 구상을 실천에 옮긴 지 10년만에 일궈낸 금자탑이다. 리움은 고미술관(M1)과 현대미술관(M2) 등 2개동으로 구성돼 있다. 고미술 전시동은 지하3층, 지상4층 세라믹 건물. 세계적인 건축가 스위스의 거장 마리오 보타가 설계했다. 현대미술 전시동은 지하 3층, 지상 2층 블랙 스테인리스 건물로 프랑스의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이 설계, 이들 건물은 그 자체가 기념비적 명물로 꼽히고 있다. 이와는 별도로 네덜란드 건축가 렘 쿨하스가 설계한 삼성 아동교육 문화센터도 지상 2층, 지하 3층의 아름다운 건물이다. 한강을 바라보는 남산 자락 한남동에 자리잡은 삼성미술관 리움은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남산 국립극장을 잇는 미술 작품의 보고(寶庫)와 문화예술의 명소로 자리잡았다. 당초에는 준비를 철저히 해 2005년에 문을 열 예정이었으나, 마침 〈2004 세계박물관대회(ICOM)〉가 서울에서 열려 이 대회에 참석하는 세계의 미술인들을 위해 서둘러 개관하는 것이다.

이건희 회장의 미술을 사랑하는 관심법
그럼, 삼성미술관 리움의 오늘을 만들어낸 이건희 회장(사진)은 어떤 분인가, 미술여행을 떠나보자.
1993년 1월, 호암미술관 소장 〈분청사기 명품전〉을 준비하고 있는 호암갤러리에 갑자기 이 회장이 왔다. 이종선(李鐘宣) 호암미술관 부관장(현 경기도립박물관장)을 위시한 미술관 직원들이 열심히 디스플레이를 하고 있었다. 큐레이터들이 쇼케이스 속으로 기어 들어가 분청사기를 놓고 있었다. 위험하기 짝이 없다. 자칫 잘못하면 먼저 놓은 도자기가 넘어져 깨질 수도 있는 국면이었다. 이때 준비한 진열장은 중앙일보가 신사옥을 짓고 창간 20주년을 한 해 앞둔 1984년에 호암갤러리(당시는 중앙갤러리) 개관 기념전으로 기획한 〈아르누보전〉 때 마련한 문이 옆에 달린 것이어서 분청사기를 놓기에는 부적절했다. 이 회장에게서 불호령이 떨어졌다. 이 기가 막힌 작품을 내주었는데 허접쓰레기 취급을 한다는 얘기였다. 호암미술관이 가지고 있는 분청사기는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없는 명품인데 이렇게 애정 없이 함부로 대하는 것에 화가 치민다고 일갈했다. 작품 다루는 자세도 문제지만 디스플레이도 부자연스럽다는 지적이었다. 미술관 직원들은 고개를 떨구고 이 회장 얘기를 듣고 있었고, 부인인 홍라희(洪羅喜) 관장도 차려 자세로 경청하고 있었다. 이 일로 호암미술관은 감사를 받았고, 뒤끝에 “좋은 물건은 좋은 그릇에 담아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거액을 들여 독일 글라스 바우 한(GBH)에서 제대로 된 쇼케이스를 주문, 그 다음 전시 때부터 사용할 수 있었다.
필자가 케케묵은 얘기로 말문을 연 것은 이 회장의 미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강조하기 위해서 내세운 것이다. 이 회장은 선대인 삼성 창업주 호암(湖巖) 이병철(李秉喆) 회장에게 학창시절부터 컬렉터로서 철저한 훈련을 받았다. 필자가 1970년대 문화재와 고미술을 취재하면서 호암미술관 컬렉션에 참여했던 여러 사람에게 이 회장의 훈련담을 들을 수 있었다. 호암이 고미술 작품을 사들일 때 이 회장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이다. 화상의 출입까지를 이 회장이 직접 응대하고, 아버지 옆에 무릎꿇고 앉아서 작품도 보았다는 증언이다. 삼성이 미술품을 사 모을 때, 서울 장안의 내노라하는 상인들은 그 댁 문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그러나 이들은 하나같이 “한번도 장사꾼이라고 홀대 받은 적이 없다”고 입을 모은다. 더러는 과분한 대접을 받을 일도 있다고 털어놓았다.

(중략)

삼성미술관 리움에게 바란다
이 회장은 다양한 취미를 가지고 있다. 오디오 매니아다. 한동안 음악 감상(클래식)에 심취해 있었다. 진돗개·비단 잉어를 기르는 일에 빠져 있었던 때도 있었다. 건강을 위해 승마를 즐겨했고, 탁구도 열심히 쳤다. 골프 매너는 물론, 이론도 정연하다. 이 회장의 자동차 수집벽이 삼성자동차를 만들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비디오를 열 몇 번씩 보았다는 사람이다. 그만큼 인내력과 집착력이 있다는 말이다.
‘인생은 참고 기다리는 것’이라고 했다. 삼성의 오늘을 만든 것은 이 회장의 앞을 내다보는 혜안과 끈기+인내력과 무관하지 않다는 사람이 많다. 이 회장 이야기를 쓰는 김에 지금까지 알려지지 않은 비화 하나를 소개한다. 삼성이 용인에 호암미술관을 지을 때 간송미술관에 호암미술관과 나란히 미술관 건물을 지어주겠다고 제안한 일이 있다. 간송 쪽에서 거절, 실행되지 않았지만 이때 이 회장이 사람을 내세워 “자연농원(현 에버랜드) 안이 싫으면 현재 있는 성북동에 세우면 어떻겠느냐”고 수정 제안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제 삼성미술관 리움에 남은 과제는 운영 방법이다. 벌써부터 멤버십 제도니, 관람 예약제니 말로써 말이 많다. 이런 일들은 시행하면서 좋은 쪽으로 보완하면 될 것이다.
하지만, 초심 대로 리움은 국민 앞에 어떻게 하면 편안하게 다가설 것인가를 연구해야 할 일이다. 조선시대는 이른바 ‘양반과 상놈’ 사이에 중인(中人)이 있었음을 명심할 필요가 있다. 독립선언서를 쓴 육당(六堂) 최남선(崔南善), 소설 《무정》(無情)을 쓴 춘원(春園) 이광수(李光洙), 시 〈청자부〉와 〈백자부〉를 쓴 월탄(月灘) 박종화(朴鐘和)는 모두 중인이다.
조직의 메커니즘이 애호가의 눈을 막아서는 안된다. 근본적으로 미술관은 전시기획 못지 않게 교육에 더 큰 비중을 두어야 한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후손들이 우리 문화재를, 우리 미술품을, 세계의 미술 작품을 어떻게 볼 것인가 가르쳐 주는 데도 길잡이 노릇을 해야할 것이다.
이 회장의 생각처럼 전문 인력을 우대하고, 한국의 작가가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도록 삼성미술관 리움의 절대적인 후원이 요청되고 있다.

아트인컬처 2004년 10월호 중
2004/12/02 11:29 2004/12/02 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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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준 
wrote at 2009/02/08 19:31
내가 월간미술서 일하던 1년간 부장으로 계셨는데 빈소에 가뵙지도 못해서 죄송합니다. 여기서 이렇게라도 고인께 인사를 올려야 겠네요. 이규일 선생님 호가 의석인데, 의로울 의자에 돌 석자. 4.19때 경찰에 돌 좀 던졌다고 합니다. 고향이 전북 함열인데, 당시 경상도판이던 중앙일보에서 버티기 힘들었다고 합니다.
Say Ho 
wrote at 2009/02/09 14:42
전라도/경상도 이야기는 또 첨 듣네요. 4가지 없던 art 사무실 분위기 속에서 어르신으로 버티던 시기도 힘드셨을 거에요. 겨우 1주기 때였던 지난 11월에도 그냥 모르고 지나쳐서 좀 그랬는데, 저도 여기서 인사 한 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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